걱정시키는 자식의 유복함에 대해

by 윤이

다행히도, 나는 유복하다. 단출한 가정 아래에서 모나지 않은 삶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나지 않게 된 것은 아니지만, 모난 가운데 무엇이 실수이고 왜 부끄러운 것인지는 알게 되었다. 그렇게 유복한 나머지 가끔 이 평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곤 한다.


평안을 물려주고 있는 어느 부모님이 계시다. 한결같이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몸 둘 바 없다. 자식의 행보 하나하나에 울고 웃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복이 아닐 수 없다.


공부는 잘 하고 있니,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 몸은 건강하니, 이는 잘 닦니, 마주하면 언제나 길게 이어지는 걱정 어린 물음들이 내게 닿는다. 아, 그럼요, 그런 것 좀 그만 물어보세요, 잘 하고 있는데 왜 만날 때마다 자꾸 물으세요,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아휴, 이제 제가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걱정을 하세요.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대답에 말문이 막힌 그는, 그래,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 항상 믿고 있어, 잘 해내리라 생각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대화, 자리에는 한숨만이 감돌고 이내 흩어진다.


찬 바람과 함께 방에 들어와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못 미덥게 생각하시는 건가, 내 삶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내가 잘 헤쳐나가리라는 것을 온전히 믿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애끓는 아쉬움이 방 안에 가득하다.


아니, 한편으로 이미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의 걱정과 내 퉁명스러움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빚어진 것, 다만 어색한 표현 속에 우리의 마음은 밀려나 힘 없이 떨고 있다.


0.5평 연구실에 돌아와 홀로 앉아 생각한다, 남들이 인정하는 삶을 살든 한심하게 바라보는 삶을 살든, 유복한 누군가에게는 그를 항상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응원의 마음이 끊이지 않는 만큼, 수많은 형태의 걱정이 유복한 자식 앞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잊었던 마음을 되살린다. 걱정과 반항이 평생에 걸쳐 뒤엉키는 이 전쟁 같은 평안. 그 안에 깃든 따뜻함을 오래 간직하면서 살 수 있길, 그 기억을 되살리며 살아가는 유복한 자식으로 기억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