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다시 떠올랐다.
복이 많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옛날의 꼬맹이가 복주머니에 세뱃돈을 넣고 그 부풀어오른 모습을 일러 복이 많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즐거움이 넘쳐 행복함을 느끼는 감정이 많을 때 복이 많다고 하는 걸까?
어느 날, 0.5평 내 쪼그만 책상 자리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온갖 책과 종이쪼가리들을 보며 실소가 나왔다. 이걸 내가 다 볼 수나 있나. 언제 다 정리하나. 아 저 책은 진짜 보기 싫은데. 난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종이의 산에 둘러싸여 감감히 내 처지를 돌아보니,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사실 공부를 핑계로 넘기려던 어버이날 즈음에 훌쩍 춘천으로 내려갔다. 부모님을 뵈었다. 친구를 만났다. 아끼는 사람들을 만났다. 선생님도 뵈었다. 따뜻했다.
나름의 요양을 마치고 다시금 나의 책상이 있는 산 언저리에 오르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새삼 눈에 아른거렸다.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에는 편한 사람이 많은 한편으로 불편한 사람도 꽤 있다. 그런데 오늘 그 외나무다리를 건나는 날인가 보다, 그를 이렇게 마주치다니. 더구나 그 사람과는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불편한 마음. 누군가 그랬지, 인간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니 정리해야 한다고.
불현듯, 사람을 정리한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 얼마나 이질적인 말인지를 깨달았다. 좋든 나쁘든 모두의 삶이 나와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인데, 감히 정리한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걸까?
복잡했다. 흔히 자기계발서 같은 걸 보면 뭔가 선호라는 기준으로 사람이나 물건이나 따지면서 정리하라던데. 감정도 정리하고 사람도 정리하면서 살아야 마음 편히 살 수 있다던데, 난 왜 이리 정리가 더 불편하고 어려운지.
나는 단독자이다. 혼자 치킨이나 시켜 먹고 책상 위에 놓인 튀김 뿌스러기들을 치울 수는 있다. 그런데 수많은 나의 주변인들과 수많은 생각이 담긴 종이쪼가리들을 휙 '정리'한다? 세계 정복과 세계 평화를 실현하려 하는 것 마냥 오만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털레털레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았다. 한심. 내가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삶은 똑같이 흘러간다. 하염없이 망상과 아집에 빠져 온갖 생각에 헤매었다. 살면서 하는 걱정 중 8할이 쓰잘데기 없는 거라던데.
나는 그래서 복이 많다. 이렇게 아직 철 없는 나는 복이 많다. 살가운 여유를 부릴 시간이 있다는 것도 복이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 아니면 에라이 불편한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것도 또 복이다. 복이 많아 이런 메모를 남길 수 있다.
복이 참 많은 이여. 능력이 작아 보답까지는 모르겠으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선별하지 않는 예의에서 나온다. 감사함을 예의로 바꾸자. 후회를 예의로 바꾸자. 종종 예의 없게 굴더라도 다시, 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