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가르치는 역사란

by 윤이

어느 날 0.5평에 우두커니 앉아 역사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과서를 보고, 자료를 찾고, PPT를 만들면서, 내가 가르치는 역사가 과연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했다. 결국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를 테고,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하겠지, 열심히 살면서 어쩌면 결혼도 할 테고, 어쩌면 아이도 갖고, 천수를 다해 세상과 이별하는 일, 대체 역사는 그 어느 틈바구니에 있는 걸까.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한 나는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국가는 자신 체제의 유지를 위해 결코 교육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역할 아래 학생을 '보호'해야 하고, 그 속에서 학생은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식받는다.


그 속에서 역사교육은 학생들에게 한 국가와 민족에 속한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부여하고 있다.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정체성의 형성에 있어 권위자에 가까운 역사교육. 그런 만큼 국가나 민족과 분리된 형태의 개인이 학교 교육을 통해 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제 '국민'이 된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국가 시스템을 지탱한다.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나, 귀천은 대개 급여나 노동강도 및 시간으로 결정되곤 한다. 모두가 '귀한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니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천한 직업'을 가져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 학생들을 굳이 애써 '구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이 드러난다. '국가 발전'과 '자기 실현'을 모두 요구받는 우리. 학교에서는 시험 성적으로 학생들의 순위를 매기고, 그 숫자에 따라 대개 학생들의 진학이 결정된다. 이때 학생들의 순위를 매기는 일은 정해진 과목의 시험 성적에 따르는데, 그 과목은 학생들의 관심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국민으로서 맡을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능력을 배양하는 차원에 입각한 것이다.


이로써 엘리트를 선발하고 그 엘리트에게 '귀한 직업'이 주어지는 보상 체계가 구성된다. 이는 엘리트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동시에 엘리트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재생산한다.


역사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하게 엘리트 육성 시스템의 재생산을 위한 학교 교육의 한 과목으로 남지 않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유'라는 비판의 날을 세워주는 역할을 담당할 수는 없을까?


역사는 수학과 같은 추상학문이 아니다. 소위 '공통원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므로 현행 초-중-고교의 역사교육에서 단계별 학습을 추구한다는 테제는 애초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그렇다고 역사 사실들을 유형화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으로 기능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그도 아니면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정답' 존재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의 '논쟁적 수업'을 계열화하여 학생들의 엘리트 지향을 방해할 것인가? 그건 역사의 원리도 아니며 역사의 효용조차 되기 어렵다.


차라리 인간성의 탐구라는 차원에서 역사교육의 목적을 설정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역사는 국가/국민/민족이라는 틀 바깥에서 한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그에 알맞게 자기 실현을 시도하게 하는 과목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교육의 목적은, 개천에서 용 나게 한다는 것에 있지 않고 홍익인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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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재품(才稟)은 본래 귀와 천의 한계가 없다. 국가가 사람을 쓰는 데 있어, 일을 완성시키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으로 주장을 삼는다면, 어찌 반드시 귀천(貴賤)에 구애될 필요가 있겠는가. ... 선거가 편협하게 됨에 따라 아전들만을 천시해 버릴 뿐이 아니고 선비에 이르러서도 그중에서 문호(門戶)의 한계와 색목(色目)의 분별을 두어서, 문호와 색목에 들지 못한 자는 원망이 깊어 오히려 불우의 탄식을 머물러 두게 된다. 만약 덕망(德望)과 재기(才器)를 따라 순서대로 배치하고 등용한다면, 이미 등용된 자는 그 경험해 쌓은 바를 펴게 될 것이요, 등용되지 못한 자는 스스로 자신의 부족을 탄식하게 될 것이니, 어찌 인사 문제에 있어 한계를 두어 끊어버림에 따른 원망이 있겠는가."

최한기, 『인정(人政)』 권16, 선인문 3(選人門三), 귀천(貴賤)에 한계를 두지 말아야 한다(勿限貴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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