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면 항상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와 같은 말들을 통칭하는 단어다. 즉 시간을 편의상 나눈 표현들을 일컫는 말인데, 시간을 나누는 기준은 역사가들마다 다르다. 왜 그럴까?
공부 관심사가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서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난 공부를 이어가면서, 그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이건 논문 한두 편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걸고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난제다. 삶을 바라보는 내 시야를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납득시키는 일이다. 참 곤란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작고하신 역사 연구자는 말씀하셨다, 역사 연구의 본질은 시대 구분에 있노라고. 생각도 많고 말도 많은 나는, 열심히 시대 구분이 역사 연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떠들고 다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미처 깊이 닿지 못하고 흩어져버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한다. 책 바깥의 세상에서 시대 구분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다만 몇 사람에 불과하다.
1년에 논문을 몇 편 썼는지가 중요해진 세상, 시대 구분이라는 손에 잘 닿지 않는 주제는 다소 허황된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일까. 이 허황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지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논문 쓰는 방법도 이제 겨우 깨우쳐가는 초학 주제에 말이 많았다. 하여튼 난 아직 어린 마음에 현실보다는 이상을 좇고 있다라는 한심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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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에 들어와서는 매년 논문을 한 편씩 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글들의 공통점은, 소외된 것들에 대한 공백을 메우는 일에 있다. 저 변방의 함경도, 감자와 옥수수 나라의 수도 춘천, 죽은 단어가 되고 있는 사범. 이럴진대 누가 내 글에 관심을 가져줄까.
관심이 중요한가, 반골 기질로 질문만 쏟아내며 살아왔던 시공간이 응축된 게 나다. 정답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시험 문제에도 동의를 못 했으니.
아니, 관심은 중요하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나가며 절실히 깨달은 것. 역사 연구란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것, 그러므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소외된 것들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내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전해야 한다.
역사 연구자들은 그렇게 대학원생 1평, 강사 2평, 교수급 3평 남짓의 골방에 앉아 삶을 걸고 글을 쓴다. 물론 특권이다. 나는 이 지식인층의 특권을 누리면서, 무대 뒤편에서 반쯤 가려진 모습으로 제 역할을 해내는 그 모든 삼류 조연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