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연해주라 불리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다녀온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 등 책에서나 보던 이름의 도시에 가서 한인의 흔적을 찾고 한인의 후손분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목도한 것은, 러시아라는 나라였다. 도시의 길거리를 걸어도, 광활하게 뻗은 항구를 보아도, 한인이 집단으로 거주했다던 곳에 가도, 한인의 후손이 발행하고 있는 신문을 읽어도, 허허벌판을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의 비석을 가만히 보아도, 러시아구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가이드로 오신 분은 한인의 후손이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셨다. 그분과 함께 온 손녀, 몇몇 답사지를 함께 했고, 식사를 같이 했다. 영어는 조금 하지만 한국어는 하지 못했다. 그들과 동행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묘한 두근거림이 계속 이어졌다.
한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이곳으로 향했을까. 그들은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려갔을까. 가정을 꾸리고 삶을 이어가는 속에서 그들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자녀들을 가르쳤을까. 그들은 어떤 풍파를 겪은 끝에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까. 왕과 신하의 이야기만 잔뜩 공부해왔던 나는, 평야에 앉아 나무만 쳐다보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대학원의 길로 들어섰다. 잊혀지고 있는 땅과 사람들. 피상적으로만 감각하는 우리의 뿌리. 이해득실의 문제를 떠나 그저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공부를 이어가며 주변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여전한 떨림.
시간이 흘러 기회가 닿아 사할린 땅을 밟았다. 한인의 후손 분이 가이드로 오셨고, 비극이 일어난 곳을 둘러보았다. 신문사에서 한글 신문을 발행해서 소통하는 모습을 접했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당이 있는 한인회관에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 웃으며 인사했다. 부채춤과 국악 공연을 하는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연해주에서 내가 느꼈던 두근거림이 다시금 올라왔다. 하지만 선선한 날씨 만큼이나 마음은 차분했다. 이 묘한 감정은 슬픔이나 동정심, 기쁨, 안타까움, 즐거움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감사함. 선생님들께서 쉽지 않은 삶을 강인한 의지로 견뎌오고 계셨군요. 저도 용기를 내어 제 삶을 잘 다듬어 글을 쓰겠습니다.
고리타분한 단어가 되어 버린 ‘희망’. 사람이 살아온 족적에서는 언제나 그 희망이 보인다. 비극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도 희망은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삶에 담긴 희망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