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처럼 수업을 듣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생님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역사 공부는 생사에 관련된 일처럼 해야 한다. 그저 읽고 쓰고 외우는 것을 넘어 우리가 당면한 위기가 무엇인지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참내, 선생님의 선생님이 사시던 때는 지금과 다르잖아! 요즘 세상에 생사까지 염두에 둔 역사 공부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이 엄청난 해체의 시대에, 끝 없는 소비의 시대에. 요즘과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멋 없는 말.
그래, 역사에 대한 사명이 사라진 어두운 밤. 더구나 서울은 도처에 빛이 많아 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별도 스스로 자취를 감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누가 별을 보겠는가. 고대의 아이돌이었던 달과 별은 빛을 잃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빛을 찾아 밤거리를 떠돈다. 나도 밤거리의 빛에 실컷 취해, 모든 것이 정답이며 모든 것이 거짓이라 공공연히 떠들어댄다. "그래, 그런가?", "그렇다니까."
찬란한 빛의 무리에 그만 눈이 아득해져, 잠시 공터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캄캄한 하늘에 작게 빛나는 북극성. 예전에는 저 북극성을 보면서 동서남북을 알고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알았다고 했던가. 요즘 누가 북극성을 보면서 동서남북을 찾나. 휴대폰만 꺼내들면 단박에 GPS가 쏟아지는데.
고리타분과 구태의연, 낡아빠진 구습의 상징처럼 남아 있는 저 북극성, 이 빛이 넘치는 시대에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다. 모든 별이 사라지는 때에 저 북극성은 언제나 사라질까. 마지막 잎새인양 참으로 끈질기고 부끄럽고 한심하고 애타고 안쓰럽다.
그렇다, 안쓰럽다. 땅에서만 떠돌며 지상 최고의 빛을 찾으려 애쓰는 나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밤하늘 어느 구석에서 홀로 빛을 내는 별이 안타깝고 안쓰럽다. 땅 위의 어디에 있든 언제나 길을 잃으면 기댈 수 있는 빛. 잘 봐, 네가 나중에 땅에서 벗어나 하늘로 향할 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여기일 거야. 더 이상 아무 말도 않는 그는 그저 고요히 기다린다.
사실 난 그 멋 없는 말이 좋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적막 속에서 선생님의 선생님은 여전히 북극성으로 계신다. 그래서 난 여전히 깡통이지만 별을 찾을 수 있다. 빛이 가득한 땅을 딛고 서서 별을 잡는 꿈을 꿀 수도 있다. 언젠가의 나의 끝이 오기 전에, 하늘의 별이 되진 못하더라도 별을 향하는 이정표 정도는 땅에 내려놓고 가야지. 그러면 누군가는 또다시 나처럼, 그리고 나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