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닦다가 문명을 생각했다

by 윤이

난 어렸을 때 이 닦는 일이 귀찮았다. 그래서 종종 이를 안 닦고 잤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잔소리 듣는 일은 이를 닦는 일보다 귀찮은 일이라, 자기 전에는 꼭 이를 닦고 잔다.


이를 닦으러 가는 일은 참 번거로운데, 정작 닦고 나오면 상쾌하기 그지없다. 이 상쾌한 기분을 아는데도 왜 항상 이를 닦으러 갈 때마다 힘이 빠졌던 걸까. 이를 닦으며 생각했다. 이건 무언가 현대문명의 음모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이 거대한 부정을 파헤치기 위해 머릿속으로 이 닦기의 기원을 찾아 나선다. 양치의 어원은 대개 양지(楊枝)라는 말에서 찾곤 한다. 양지, 즉 버드나무 가지를 이를 닦는 데 썼다는 것 같다. 아니, 버드나무 가지가 다른 나무에 비해 탄성이 제법 있기로서니, 어떻게 그걸 입 속에 넣고 뭘 닦는단 말인가?


여기에 생각이 미친 나는, 이를 닦다가 말고 물끄러미 칫솔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이건 전동칫솔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프로토타입인 기본형 손가락 칫솔과 비교해 보았을 때, 대체 이 전동칫솔은 몇 세대라 칭할 수 있을 것인가.


다윈의 진화론이 새삼 생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느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비생물도 진화시키는 동력이었던 것이다. 손가락 칫솔로 이 사이를 파내던 것에서, 버튼 하나 누르고 이에 갖다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파주는 것까지.


그럼 나는 왜 이를 닦는 일을 싫어했을까. 내가 어렸을 때 이를 빡빡 닦기 위한 최상위 기술이자 최상위 문명은, 플라스틱 칫솔과 딸기맛 치약이었다. 나는 딸기맛 치약은 사랑했으나 플라스틱 칫솔이 싫었다. 딱딱했고, 뾰족했고, 팔을 아프게 하는 나쁜 녀석이었다. 사실 어떻게 해야 잘 닦이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로봇이 내 이를 좀 닦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팔도 덜 아프고 뾰족한 칫솔모에 잇몸이 찔려 피가 나는 일도 덜하겠지. 플라스틱 칫솔은 나의 문명이었고, 로봇은 내가 지향하는 문명이었다. 문명은 점차 진화했고, 칫솔도 진화하여 결국 로봇이 되었다. 나는 로봇 칫솔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면서 플라스틱 칫솔을 사랑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문명의 발전을 함께 한 베타테스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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