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3시 11분. 낮잠을 잔 것도 아닌데 잠이 오지 않는다. 게임을 하라는 계시일까 싶어서 슬며시 게임을 켰다. 재미가 없다. 음악을 들어볼까, 금세 흥미를 잃는다. 묘하게 설레는 기분이 이어진다. 곧 나에게 올 어마어마한 택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의 작업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도 아니다, 그런데도 다가오는 이 불면의 설렘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이 떨리고 애틋하기까지 한 긴장은 어디서 왔을까. 우선 숨을 쉬어야겠다. 방 안의 창문을 반쯤 열고 가을밤의 서늘한 공기를 들이쉰다. 몸이 조금 떨린다. 검은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으니 당연하다.
얼른 이불을 온몸에 둘둘 감아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장착한다. 난 어렸을 때부터 이불을 둘둘 감는 걸 좋아했다. 그 촉감과 무게감과 온기를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가족들은 나에게 누에고치라고 불렀다. 그 누에고치는 내게 언제나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방아쇠와 같다.
찬 공기를 막으려 두른 이불에 불면의 설렘도 멎겠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희끗희끗한 잔상이 어린다. 그 잔상은 여러 형상으로 변한다. 누군가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한다. 어지럽다.
눈을 뜬다. 어지러움은 사라지고 초점이 또렷해진다. 세상의 어지러움에 눈을 감고 초야에 묻혔다는 이야기는 거짓임이 분명하다. 눈을 감아 보이는 상상의 나래는 붕새처럼 십만팔천 리를 날아 어디든 뻗친다. 차라리 눈을 뜨고 마주하는 게 낫다.
온갖 생각이 엉키는 동안, 설렘은 조금 잦아들고 그동안의 메모가 남았다. 혼자 소설을 썼네. 두서도 없이 휘갈긴 글이다. 그래도 내가 나의 생각들을 문장으로 바꿔보려고 했네. 번뜩, 글을 쓰고 싶다,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 나의 생각을 문장으로 바꿔보자. 낮의 치열한 삶을 불면의 설렘을 갖고 써보자. 언젠가 나라는 사람도 한 귀퉁이에서 잠자코 잘 살고 있었다는 것을 남기는, 삶의 시작과 끝에 작게나마 의미를 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남기는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