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출신인 나도, 춘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유명한 관광지가 많은 것도 아니고, 알려진 맛집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산세가 험준하다던지, 춘천만의 특색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 누가 춘천을 소개해달라고 하기라도 하면, 가뜩이나 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대답이 궁색하다. 그저 포근한 도시 정도일까.
아니다. 그래도 전국에 내세울 만한 두 가지 유명한 먹거리가 있다. 닭갈비와 막국수. 전국에 닭갈비와 막국수의 상호명을 달고 음식을 하는 집은 숱하게 많다. 닭갈비와 막국수 드셔보셨어요? 네, 먹어봤어요. 정말요? 춘천에서, 닭갈비와 막국수를 드셔보셨어요? 앗, 아뇨. 이런 식이다.
춘천닭갈비와 춘천막국수는 신기루와 같다. 저 멀리 가물가물 보인다. 그냥 양념닭구이에 양념국수 아닌가. 춘천에 가서 먹어도 맛은 그냥저냥 비슷하겠지. 요새는 공장제 춘천닭갈비 양념과 춘천막국수 면이 쏟아지는 판국에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어.
그럴 수 있다. 함안, 고창 수박이 유명하다지만 그냥 다른 지역 수박들도 다 맛있지 않나. 전주의 비빔밥은 우리 집에서도 뚝딱 만들 수 있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다만 남에게 말할 때 고창 수박을 먹었다거나 전주 비빔밥을 먹었다고 말하기가 곤란할 뿐.
전국에 널린 닭갈비, 막국수집은, 춘천 안에는 당연하게도 무수히 많다. 춘천닭갈비 골목이 번화가 한복판에 있고, 춘천 외곽 소양댐 가는 길 옆으로도 음식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김치막국수 철판닭갈비 숯불닭갈비 하다못해 돌에 구워 먹는 닭갈비까지. 닭과 메밀의 지옥이 따로 없다.
음식을 만드는 데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데, 춘천닭갈비나 춘천막국수의 여러 버전들이 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생각해 보시라. 춘천을 알고 싶은 다른 지역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뭘 알겠는가?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닭갈비와 막국수의 세계에서 자란 나는 얼마나 많은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어본 사람이었겠는가? 그래서 내게 묻는다. 어딜 가야 하냐고.
애석하게도, 수십 가지는 먹어봤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에게 있어 닭갈비집은 1.5닭갈비이고 막국수집은 부안막국수이다. 춘천에서는 그래도 이름 있는 집들인데, 사람들과 함께 가서 음식을 먹으면 돌아오는 이야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이를테면 맛이 조금 심심하다거나, 그냥 뭐 먹을 만했다 정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자주 먹는 저 유명한 춘천닭갈비와 춘천막국수가 그냥 그런 음식인가 싶어 마음이 조금 쓸쓸해진다.
맛집이 무엇인가. 음식의 재료가 신선한 것도 좋고, 간을 잘 맞추는 것도 좋고, 맛을 내는 온갖 요소를 고려하여 음식을 잘 만드는 집. 굶고 살 수는 없으니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딜 가나 맛집을 찾게 된다. 그러다가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점을 찾으면 뛸 듯이 기뻐한다.
즉, 그 사람들에게는 입맛에 별로 안 맞는 거겠지. 수많은 닭갈비집과 수많은 막국수집의 향연이 앞에 있으니 그중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르기 바쁘리라. 흥, 진짜배기를 모르다니!
그런데 나는 뭐가 좋다고 그곳만 자주 찾는 걸까. 맛도 솔직히 어딜 가나 비슷한데. 모양도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다른 집의 닭갈비나 막국수를 많이 먹어보지 않았는데 궁금하지도 않나. 1.5닭갈비와 부안막국수는 춘천의 제일 오래된 집도 아니거니와 제일 맛집이라고 하기도 어려운데...
그저 내가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갔던 집이었을 뿐이다. 춘천에 닭갈비와 막국수가 유명한 건지 아닌지 상관없이,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가서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맛집인지 아닌지는 사실 상관없었다. 깜빡이는 기억들 사이에서 여전히 밝은 빛을 내뿜는 강렬한 인상이 그곳에 있다. 잠시 외도를 해서 다른 음식점의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더라도, 어김없이 떠오른다.
어릴 때 집밥을 지겹도록 먹다가 투정도 부리고 시위도 했지만, 결국 집밥을 내가 만들어야 할 때가 오면 그 옛날의 기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지. 주위 모든 것들은 그렇게 익숙해지고, 끝내 마음에 담긴다. 그렇게 어느 순간 스며들어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 생긴다.
서울의 닭갈비를 먹든 해남의 막국수를 먹든, 따뜻했던 맛의 기억을 동력 삼아 지치지 않고 귀향을 거듭하는 나의 마음. 산속 작은 방 안에서 산신령 노릇을 해도, 감자나라에서의 부단한 어리석음을 잊지 않아야지. 미래에 살고 있더라도 지금을 아끼는 마음을, 과거와 이어진 나를 잊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