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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캔디 Jun 02. 2023

파리 출장, 너는 자주색 루이비통 가방을 사러온거니?

[윤캔디의 성장에세이] PART 1. 상처데리고 살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신기한 일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꿈많던 소녀가 꿈으로만 간직했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베트남에서 혼자 고군분투 했던 시간들에 대해 달콤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대기업 취직, 그리고 원했던 직무로의 배치, 가고 싶었던 부서. 특히, 파리 출장은 정말 ‘꿈은 이루어진다’ 그 자체였다.


  동남아에서 꽤 긴 시간 유학생활을 한 나는, 선진국에 대한 어떤 동경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쓰던 작은 다이어리 앞에는 ‘에펠탑’ 사진이 늘 붙어 있었는데, 나는 그 어떤 나라보다 ‘파리’가 가고 싶었다.

 왜 파리였는지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나 내 감정은 그 곳으로 강력히 끌렸는데. 나는 아마도 ‘파리지앵 여자’들만이 가진 프렌치 감성을, 또 고등학교 시절 재밌게 읽은 홍세화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 덕분에 생긴, 내가 세워놓은 기준에 멋져보이는 파리 사람들의 어떤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동경했던 것 같다.

 내게도 언젠가는 에펠탑에서 예쁜 피크닉 매트를 깔아놓고, 와인 한 잔 해보고, 야외 테라스 카페에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에스프레소 한 잔 즐기는 날이 올거라고 상상했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속 한구석에 파리를 늘 품고 다녔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돈을 모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보자, 그 때 파리를 제일 먼저 가봐야지!’ 하던 나는, 안타깝게도(?) 취직이 바로 되는 덕에 마음 속 동경의 나라를 실제로 밟아보진 못했다.

 

 회사에 취직해서는, 배낭여행이고 , 파리고 낭만을 논할 시간이 없었다. 회사에 갖 입사한 병아리 신입사원은 똘망똘망 눈으로, 열정으로 무장해 업무를 배우고, 조직생활에 적응해내고, 동기들과 친목을 다지며 ‘진짜 사회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내 MD 동기들끼리 상품소싱 경연대회가 열렸다. 갑작스럽게 열린 대회는 아니었으며, 신입MD들이 가고 싶은 부서들이 워낙 겹치다 보니 (주로 인센티브가 세다고 소문난 부서), 인사팀에서는 이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MD에게 원하는 부서로의 배치와 함께 해외출장을 보내주겠다는 미션을 걸어 우리의 열정을 불지폈고, 또 앞으로 회사생활에서 늘 함께 하게될 '경쟁 구도 체험판'을 신입사원들에게 맛보기로 보여준 것이다.


 나는 경쟁에 익숙하지 않고, 또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베트남에서도 혼자만의 목표를 두고 하루하루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나갔지, 다른 사람을 이겨야하는 약육강식의 이 세계는 낯설기만 했다.

 그런 내가 사실, 이 경연에서 1등을 했다는 게 조금은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나는 아무 생각없이 최선을 다했고, 1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원하는 TV채널 부서에, 회사에서 인센티브가 가장 높다는 생활팀에 배정을 받고, 사수님과 함께하는 해외출장 티켓을 얻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좋은 일이, 바쁜 일상가운데 한 번에 일어나다 보니, 또 나의 이런 선택받음(?)으로 다른 누군가는 아쉬워해야만 했기에. 좋은 기분을 마음껏 누리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난 하늘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보상의 해외출장으로 처음 논의된 곳은 중국 상하이였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첫 해외출장 자체로 굉장히 들떠있었기 때문에. 또 무엇이든 너무나 감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혀 불평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 사수님께서, “선애야 우리 파리 간다고 팀장님한테 말해보자!, 선배가 인테리어 MD잖니. 거기서 인테리어 박람회가 크게 열리니까, 시기 맞춰서 가보자” 하는게 아닌가. 그리고 나는 믿기지 않아, 다시 한 번 선배님께 되물었다.


 “한OO님, 어디요? 파리요? 에펠탑있는 파리요?” 순간 나는 다이어리 앞에 에펠탑이 오버랩되며, 지금 잠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바로 책에서만 읽었던 ‘상상하면 이루어진다’의 현실판 아닌가. 그렇게 나는 동경하던 파리를, 해외출장으로 가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내가 상상하던, 따스한 햇볕이 비추는 어느 멋진 날은 아니었지만. 비록 비가 스산하게 오는 바람부는 어느 겨울날의 파리였지만, ‘파리’라는 곳에 내 발을 딯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완벽한 여행길 아, 아니 출장길이었다.

 그러나, 스산한 날씨탓인지, 여행이 아닌 출장길이기 때문인지, 혹은 내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는지는 혹은 이 모두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상상했던 파리의 낭만은 느끼지 못했다.


 아니면, ‘내’가 낭만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낭만이 가득한 파리에서, 파리지앵처럼 멋진 감수성을 남겨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출장길이 끝나고 귀국하는 내 손에는 명품백 하나만이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그렇다. 다이어리에 에펠탑을 붙이며 설레여하던 낭만걸은 이제 럭셔리 잡지에 나오는 명품백을 선망하는 시티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명품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명품을 잘 몰랐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어떠한 값비싼 브랜드의 종류가 있으며, 그 브랜드가 어느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지,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포지셔닝’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관심을 가질 계기도, 이유도 베트남에서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가, 수많은 브랜드를 다루고 이야기하는 쇼핑회사라는 곳에 발을 디디며 내게 ‘미개척’ 영역이었던 명품 세계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줄줄이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어떤 신발을 신는지 상표를 보고도 전혀 몰랐던 예전의 나는 이제 상표만 보고도 ‘얼마짜리군’ 이라고 평가를 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잘나가는 회사에는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듯이, 회사에는 잘나가는 상표를 입고 걸친, 잘나가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잘나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명품앓이가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엽다 못해 어이없기 그지 없지만 난 그때 왜 그렇게 명품이 사고 싶었는지, 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상대적인 박탈감을 크게 느끼고 좌절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직은 완전히 갖추지 못한, 작은 원룸에서 갖 서울 살이를 시작한 사회초년생의 있어보이고 싶은 객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신입사원이였던 내 월급을 생각해보면, 명품백 하나를 산다는 것이, 그 월급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한 번에 훅 사기에는 굉장히 큰 지출이라는 것은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아도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사람처럼, 계산기로 열심히 카드 할부 개월수를 나누며, 내 작은 서울 원룸방에 그렇게 부조화스러울 없는 명품백을 하나씩 모아나갔다.

                                                                                                                                                                                                                                                                                                                                                                                                                                                                                                                                                                                                                                                                                                                                                                                              그렇다. 나는 잘나가는 쇼핑회사에 다니는 잘나가는 대기업 회사원이다. 또 그렇게 보여야만 한다.

 내게 파리는, 동경하던 에펠탑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의 고향이 아니던가. 그리고, 한국보다 훨씬 더 합리적인 가격에, 명품을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그렇게 동경하던 낭만의 파리에서 나는, 루이비통 매장에 들었갔다. 사실, 파리하면 샤넬이였지만 내 월급이 아니 내 카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나서야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꽤나 튀는 색깔의, 데일리백으로 절대 들 수 없을 것같은 ‘자주색’ 가방을 골라서 데려왔다. ‘이건 지금 내 나이에만 맬 수 있는 색이야!’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200%맞는 생각이었다. 그 때 모셔온 가방은 20대 시절 열심히 매고 다니다, 지금은 드레스룸 한 구석에 보관되어 있다.


 ‘자주색’이라는 색도 색이지만, 그 가방을 보노라면 그 때 내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어떤 허영심과 젊은날의 객기를 상징하는 것 같아 꺼내어 매기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파리에서 사온 진짜 명품백은 그렇게 허세로 가득찼던 가짜의 나와 함께 드레스룸에 고요히 잠들어 있는 중이다.  ..


 ‘쉿!’ 절대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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