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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인 Dec 03. 2015

2011년 여름

여름 속 대나무 숲 _ 담양

  오랜만에 꺼내는 2011년의 여름 이야기. 광주 다음으로 간 곳은 담양이다. 광주가 원래 내려야 할 곳이 아니었듯, 담양도 원래 예정에는 없던 곳. 광주에서 가까워 들러보기로 했다. 누차 말하지만 이래서 여행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 어쨌든 담양 하면 생각나는 것은 단연 죽녹원, 그리고 떡갈비다.


  떡갈비는 2인분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고 해서 먹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이런 게 참 서럽다지. 이 때부터 혼자  여행할 때 식당에 가면 항상 이렇게 물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 먹으러 왔는데 괜찮나요?


  개인적으로 담양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태껏 혼자 들어가  식사하지 못한 건 담양 떡갈비가 유일하다. 1인분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하시네.


  하동을 여행할 때 찾은 한 식당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했다가 들은 대답이다. 그러게요. 별 이상한 질문이 다 있네요.



  죽녹원은 이름 그대로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대나무 정원이다. 이리 봐도 대나무, 저리 봐도 대나무다. 대나무는 뭔가 친근한 듯하면서도 막상 주변에서 찾아보자면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죽녹원을 거닐고 있노라면 제법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대나무 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군자다. 매난국죽, 매화와 난 그리고 국화와 대나무. 군자가 지녀야 하는 덕을 상징하는 식묵들이라나. 대나무는 그중에서 한 겨울에도 싱싱하고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어 강직성과 절개를 뜻한다고. 그렇다 한들, 내가 간 건 여름이었으니까.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죽녹원의 여름은 시원하다. 빽빽하게 차있는 대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과 대나무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고 있자면 어느새 여름이라는 계절을 잊은 듯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거짓말을 보탠 말이지만.



  담양 죽녹원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 최근 죽녹원에 다녀온 사람들은 꼭 이 판다와 사진을 한 장씩 찍어오더라. 사진을 보고 "죽녹원 갔다 왔네?"라고 하면 놀라더라. 어떻게 알았냐고. 언제나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초록초록하기만 하던 죽녹원에 예쁜 봉숭아 물이 들었다. 역시 꽃은 초록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띤다. 꽃다발의 빛이 쉬이 가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죽녹원 안에 있던 조그마한 정자 죽향정. 이름이 참 그럴  듯하다. 기와지붕 위에 살짝 눌러앉은 대나무 잎들이 묘한 풍취를 자아낸다. 이런 데 무림 고수가 자주 출몰하는 법인데.


  죽녹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더운 날씨에, 뜨거운 아스팔트에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른 빛깔이다. 그 빛깔은 어느새 대나무의 싱싱한 초록과 많이 닮아 있었다.



  지금쯤 죽녹원은 어떤 모습일까. 사군자의 위용을 뽐내며 여전히 싱그러운 초록을 빛내고 있겠지. 눈 내리는 오늘 같은 날, 고요한 죽녹원 안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까. 그리고 그 위를 사뿐히 걷노라면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힐지도. 이런 아리따운 상상을 하며 추억해보는 담양의 죽녹원이다.


  죽녹원 앞 관방제림이나 메타세콰이어길도 분명 둘러보고 왔을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왜지. 진정 떡갈비에 한을 품었던가.


  담양은 역시 죽녹원과 떡갈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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