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여름 속 대나무 숲 _ 담양

by 윤창인

오랜만에 꺼내는 2011년의 여름 이야기. 광주 다음으로 간 곳은 담양이다. 광주가 원래 내려야 할 곳이 아니었듯, 담양도 원래 예정에는 없던 곳. 광주에서 가까워 들러보기로 했다. 누차 말하지만 이래서 여행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 어쨌든 담양 하면 생각나는 것은 단연 죽녹원, 그리고 떡갈비다.


떡갈비는 2인분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고 해서 먹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이런 게 참 서럽다지. 이 때부터 혼자 여행할 때 식당에 가면 항상 이렇게 물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 먹으러 왔는데 괜찮나요?


개인적으로 담양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태껏 혼자 들어가 식사하지 못한 건 담양 떡갈비가 유일하다. 1인분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별 이상한 질문을 다 하시네.


하동을 여행할 때 찾은 한 식당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했다가 들은 대답이다. 그러게요. 별 이상한 질문이 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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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은 이름 그대로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대나무 정원이다. 이리 봐도 대나무, 저리 봐도 대나무다. 대나무는 뭔가 친근한 듯하면서도 막상 주변에서 찾아보자면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죽녹원을 거닐고 있노라면 제법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대나무 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군자다. 매난국죽, 매화와 난 그리고 국화와 대나무. 군자가 지녀야 하는 덕을 상징하는 식묵들이라나. 대나무는 그중에서 한 겨울에도 싱싱하고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어 강직성과 절개를 뜻한다고. 그렇다 한들, 내가 간 건 여름이었으니까.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죽녹원의 여름은 시원하다. 빽빽하게 차있는 대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과 대나무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고 있자면 어느새 여름이라는 계절을 잊은 듯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거짓말을 보탠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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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죽녹원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 최근 죽녹원에 다녀온 사람들은 꼭 이 판다와 사진을 한 장씩 찍어오더라. 사진을 보고 "죽녹원 갔다 왔네?"라고 하면 놀라더라. 어떻게 알았냐고. 언제나 범인은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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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초록하기만 하던 죽녹원에 예쁜 봉숭아 물이 들었다. 역시 꽃은 초록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띤다. 꽃다발의 빛이 쉬이 가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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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 안에 있던 조그마한 정자 죽향정. 이름이 참 그럴 듯하다. 기와지붕 위에 살짝 눌러앉은 대나무 잎들이 묘한 풍취를 자아낸다. 이런 데 무림 고수가 자주 출몰하는 법인데.


죽녹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더운 날씨에, 뜨거운 아스팔트에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른 빛깔이다. 그 빛깔은 어느새 대나무의 싱싱한 초록과 많이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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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죽녹원은 어떤 모습일까. 사군자의 위용을 뽐내며 여전히 싱그러운 초록을 빛내고 있겠지. 눈 내리는 오늘 같은 날, 고요한 죽녹원 안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까. 그리고 그 위를 사뿐히 걷노라면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힐지도. 이런 아리따운 상상을 하며 추억해보는 담양의 죽녹원이다.


죽녹원 앞 관방제림이나 메타세콰이어길도 분명 둘러보고 왔을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왜지. 진정 떡갈비에 한을 품었던가.


담양은 역시 죽녹원과 떡갈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