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흡족하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는 것, 또 그걸 확신에 차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퍽 마음에 든다.
평소에는 특별히 뭐가 좋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고 내 호불호를 의식하고 검열하면서, 여름에 관해서만큼은 내 입장은 확고하다. 누가 뭐래도 여름이 최고다. 왜 좋은지 설명하라면 “더워서 좋아”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도 있고, “여름의 덕목은 자고로…”라고 줄줄댈 수도 있을 것 같다. 뜨거운 햇볕, 그을은 피부, 가벼운 옷, 이마와 등에 흐르는 땀, 창문을 활짝 열고 하는 환기, 바짝바짝 마르는 빨래…. 생각만 해도 좋다.
그런데 나의 친오빠는 여름을 싫어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가 오빠에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다. 여름에 만나는 오빠는 언제나 ‘털린’ 모습이다.
지난주엔 오빠가 날 보러 우리 동네에 왔다. 푹푹 찌는 8월의 낮 3시,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오빠를 기다리며 약간 초조했다. ‘거의 다 왔다, 지하철역에 내려서 걸어가고 있다'는 오빠의 전화에 “여기 에어컨 되게 빵빵해!”라고, 여름 극혐러를 불러낸 게 송구해 급히 덧붙이기도 했다. 역에서 못해도 십 분은 걸어야 하는데 오빠가 속으로 욕하지 않을까? 날 만나러 오겠다고 한 걸 후회하진 않을까? 아침까지만 해도 오빠가 오늘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니까.
드디어, 땀에 절어 나타난 오빠에게 손수건을 강요하듯 쥐여주며 오빠 가지라고, 여름에 손수건은 필수라고, 땀만 잘 닦아도 훨씬 쾌적하다고, 눈을 부릅뜨고 권해 안 받을 수 없게 만들었다. 막상 오빠는 하필 제일 더운 날 만나자고 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오빠, 뭐 그런 걱정을 다 했대? 나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는걸?
오빠가 여름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나쁘지만은 않게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이 좋음을 오빠와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오빠가 항상 내세우는 건 땀이다. 자기는 땀이 너무 많아서 옷이 다 젖는데, 그렇게 되면 불쾌한 건 둘째치고 땀 냄새가 너무 신경 쓰여서 아예 외출을 포기하게 된다는 거다. 어쩌다 나오는 날이면 오빠는 땀에 전 머리를 가린다고 젖은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젖어도 표 안 나는 검은색 옷만 입는다. 결론은 그래서 더 더워 보인다. 여름에 땀이 나는 건 당연하고, 땀 냄새도 당연하고, 오빠에게 체질적으로 냄새가 유독 지독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오빠는 여름의 자신이 싫은 거다. 땀에 절어 냄새를 풍기는 스스로가.
반대로 내가 여름을 사랑하는 건 여름의 내가 좋기 때문이다. 여름에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더 시원시원하고, 더 대담하다. 나 역시 더위를 많이 타고 땀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뜨거운 햇볕이 정수리를 내리쬐면 후련하다. 카타르시스가 이런 걸까? 그 펄펄 끓는 에너지 아래서 내가 익어갈 때 뭔가 정화되고 해소되는 느낌, 내 속에 꽉 막힌 무엇인가가 땀과 함께 배출되는 느낌, 비로소 가볍고 자유로워진 느낌이 든다.
여름은 내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나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싫어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름을 이토록 사랑하다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나는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
반면 오빠에겐 여름의 모든 것이 가혹하기만 하다. 그게 겉으론 땀이지만, 손수건으로도 해결 못 하는 건 자기에 대한 구속이다. 오빠 스스로 좋아할 수 없는 자기만의 어떤 부분, 그래서 더 작고 못나 보이는 제 모습, 그 알맹이가 여름과 만나 증폭될 뿐이다. 나는 알 수 있다. 오빠는 사실 두려워하고 있다. 마음 저 깊숙이 숨겨둔 작고 부끄러운 마음을 들킬까 봐. 여름이 싫은 건 단지 땀이 아니라, 실은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다른 사람이 볼 까봐, 그게 무서워서 조심조심 숨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에 붙들리면 자괴감이 따라온다.
오빠에겐 땀이지만, 내게도 나만의 알맹이가 있고 겨울이 되면 나 또한 움츠러든다. 누군가 겨울 한파의 아름다움을 설파하면 나 역시 뚱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 이상적인 날, 오빠가 스스로를 놔주는 순간을 경험하길 꿈꾼다. ‘땀’으로 대변되는 관념에서 오빠가 해방되길. 창피해하지도, 위축되지도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길. 그 순간이 오빠를 다르게 만들 거라 믿는다.
벌써 8월의 마지막 주다. 9월이 되어 더위가 한풀 꺾이면 오빠는 좀 살 만하다고 느낄까? 그랬으면 좋겠다. *대신 내 기분은 가라앉겠지만.
2024.08.26
*김신회 작가님 첨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