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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lbi Apr 14. 2021

파테껑에게

추도사

파테껑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그는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용기 있고, 분노하고, 저항하고,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었어요.


언젠가 뒷산에  진달래를 보며 행복하다 말했던 그가 이제는, 남아있는 추위를 찢고 진달래꽃이 만개하는 계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Partir quand,  이름 의미처럼 언제 떠날 것이냐는 물음을 그는 항상 품고 있었어요. 이제 그가 떠났으니 보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겠습니다. 앞으로 봄이 오고 골목 모퉁이가 진분홍으로 덮이기 시작하면  아이를 생각할 거예요. 해마다 피고 지는 진달래처럼, 우리가 사는 동안  아이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반복해서 피고 지겠지요.    


저와 파테껑은 우리가 아주 젊었던 시절, 어느 시인이 하는 낭독 강의에서 만났어요. 스스로를 잘 다스리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어요. 여러분도 알겠지만, 저도 그를 처음 봤을 때 알았어요. 똑똑한 사람이네. 그는 먼저 입을 떼는 애였거든요. 다 가만히 있을 때 기꺼이 나서는 사람이었어요. 강의에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담당자를 찾아 상황을 알아보고 강의실에 공지하던 애가 파테껑이었어요. 반장처럼요. 그렇게 어디에 있던지 자기의 쓸모를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파테껑 또한 누구보다 자신을 잘 다스리고 싶어 했어요. 그 아이는 자기 안의 화를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한 번은 파테껑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 현관문이 잠금장치가 없는 자동 출입문으로 바뀌게 되자 무척 분노했던 게 생각납니다. 아파트 안으로 아무나, 아무렇게나 들어올 수 있게 되어서 그 아이는 무척 화를 냈어요. 자신의 공간이 침범당할 것이란 사실이 그 아이를 화나게 했어요. 그는 감지하는 사람이었어요. 예민하게, 먼저 알아채는 사람. 그는 매 순간 자신의 작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과 싸우고 버티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의 바람은 지금 여기 계시는 분들이 파테껑이 기꺼이 환영할 만한 분들이었으면 해요. 제 친구를 오늘마저 싸우게 할 순 없으니까요. 오늘만은 그 아이를 위한 이 자리가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원수였던 분들은 최대한 조용히 사라지셔야 해요. 제 예민한 친구를 함부로 침범하지 마시고요.


섬세한 인간이 꼭 그렇듯, 그 아이는 자긍심이 넘치거나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어요. 언제나 스스로를 조금은 혐오하고, 경계했어요. 칭찬을 들어도 의심했어요. 대신 그는 약한 존재들에 연민을 가졌어요. 개를 사랑했고요. 아무도 없는 빈집에 묶여있는 개를 데려다 산책을 시키곤 했어요. 그때 파테껑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빈집에 묶인 개의 목줄을 풀고 함께 걸었을 때 그는 조금 덜 외로웠을까요.


그와 함께 같은 것에 분노한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요. 파테껑이 자신과 연대하는 이들과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저항해야 할 것 같아요.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침범하는 세상과 나 자신의 속박으로부터 계속해서 저항하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사는 동안 잘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그는 고요한 한낮에 이불을 펴고 누웠을 때 행복하다고 했거든요, 파테껑이 이제는 그렇게 고요 속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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