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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lbi Apr 25. 2021

2061년 4월 중순. 나. 71세.

주말의 아침

   주말의 아침은 대게 이렇다. 이른 아침, 6시나 7시쯤 방에 들어온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다. 나는 누운 자리 그대로 눈만 뜨고 철수가 다리를 절룩이며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한 줌 덜어 넣는 것을 지켜본다. 작은 도자기 그릇에 사료가 담기는 소리, 나는 그 소리가 좋다. 철수가 툴툴대면서도 고양이 등을 쓸어주고 잘 잤냐고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있다. 나는 아직 잠결이다. 다시 까무룩 잠이 든다.


   오전 아홉 시가 다 돼 다시 눈이 떠졌을 땐 고양이가 나를 보고 있다. 늘 그렇다. 고양이는 내가 이제 일어날 거라는 걸 어떻게 나보다 먼저 아는 걸까. 어떻게 내 기척을 알아차리고 귀신같이 옆에 와 있는지. 난 이 동물의 세심함을 조금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동물이 나와 함께 산다. 그럼에도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빨리 지겨워하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다.


   이상적인 아침이라면 나는 그즈음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올 것이다. 아침잠이 없는 철수는 늘 먼저 일어나 있다. 그는 정원에 누워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거나, 공기가 안 좋으면 발코니 문을 닫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작은 전자 부품을 만지작대고 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의 공기다. 공기 오염 수치가 높은 날 그는 정원에 나가 눕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공기 정화 시스템에 표시되는 집 내부 공기 질을 유심히 체크한다.


    집은 내가 젊은  그토록 바라던 집이다. 본채와 별채로 분리된 단층의  구조물이 정원을 사이에 두고 ‘자로 이어져 있다. 본채는 주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고, 별채는 나와 철수가 생활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나는 본채와 별채를 오가며 친구들과 있다가 나만의 공간으로 빠져나왔다가 하며  집이 얼마나 완벽한 가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라도 친구와 손님을 맞이할  있도록 신경 써서 먹을거리와 마실 것들을 채워 둔다. 우리가 없어도 친구들은 본채에서 저들끼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내키지 않으면 그냥 별채에 머문다. 나는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1쓴다. 나이 칠십이 되어 비로소 그런 균형을 가질  있게 되었다.  부분에 있어서는 언덕 꼭대기에 사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우리 집은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집에 오려면 비탈진 언덕을 올라야 한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열이면  집이 너무 가파른 곳에 있다고 불평한다. 나는 그들이 언덕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내쉬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사람들은 언덕을 조금만 올라도 과장되게 숨을 헉헉댄다. 우스운 꼴이다. 이곳 벨기에는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오르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니 이해할 만도 하지만 내가 한국에  적에도 사람들은 똑같았다. 나는 열일곱  때부터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에 살았다. 처음엔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언덕을 그렇게 힘들어하고 불평한다는 것에 놀랐다. 나도 숨이 차긴 하지만, 나에겐 그저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의 언덕길은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좁고 비루한 오르막이었다면 지금은 그때와 비교가 안되게  닦인 길이다. 나는 이렇게 쾌적한 언덕길이 우리 집을 경유한다는  무척 만족스럽다. 그러나 비루하든 쾌적하든 사람들은 언덕길을 힘들어하고 불평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 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오르막이 내가 혼자 있는 시간과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 사이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나는 매일 언덕을 오르내리며 근육이 단련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다리로 걸을  있는 거라고 믿고 있다. 노인들 중에는 무릎에 인공 관절을 이식한 이들이 많다. 걸을  있지만 관절이 약한 철수는 다리를 자르는 대신 전기 휠체어를 택했다.


   커피를 내리며 채소를 손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밥을 지어먹고 싶다. 집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채소는 대파, 마늘, 양파, 버섯, 가지, 청양고추다. 파프리카나 당근도 있으면 좋다. 맛있는 음식2은 나에게 위안이 되어준다.


   밥을 생각하니 젊었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날도 오늘처럼 밥이 먹고 싶었다. 쌀을 씻고, 냄비에 밥을 안치고, 채소를 다듬어 기름을 두른 팬에 밥과 함께 볶아 먹곤 했다. 그날 밥을 막 한두 숟갈 떠먹기 시작했을 때 철수가 무슨 더러운 얘기를 했다. 나는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그를 최대한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정색하고 면박을 줬다. 그때 난 자주 굳은 얼굴을 했다. 그러면 철수는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난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땐 비좁은 주방에서 두 사람 몫의 밥상을 차려 내고 나면 하얗게 소진된 기분이 들어서 밥을 더 많이 먹었다. 철수가 다 먹고 먼저 일어나면 나는 남아서 내 그릇에 새로 음식을 덜어 두 번째 식사를 했다. 그제야 밥다운 밥을 먹은 것 같았다.


   나는 종종 버거웠고, 속에서 검은 눈송이가 울컥울컥3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집안에는 그의 긴 머리카락이 바닥에 뒹굴었고, 전자 기계를 만든답시고 고양이가 삼키면 큰일 날 가는 전선들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길에서 더러운 물건을 주워 오고, 그는 그렇게 날 힘들게 했다. 하지만 이건 진실이 아니다. 정말 힘들었던 건 그런 게 아니다. 그의 긴 머리,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나에겐 쓰레기로밖에 안 보이는 것들에 호기심을 갖는 모습, 그런 것들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라, 난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를 떠나거나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마음먹지 못한 채 늙게 될 것이 두려웠다.


   난 우리를 지키고 싶었는데, 내가 우리를 지키려 할수록 그것이 되려 우리를 잃게 만들까 두려웠다. 너무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면 점점 내가 지키고 싶은 건지 포기하고 싶은 건지 불분명해졌다. 가진 것 없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나 취약했다. 난 이렇게 피상적인 나 자신에게 질려 있었다. 나에게 분명 진실된 마음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선택을 유보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갔다. 나는 겁쟁이를 경멸하면서도 실패하기 싫었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삶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틀렸을까 봐 걱정했고, 그게 나를 더욱 열등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탓하며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는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돈이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를 지켜준 것은 내 섬약한 용기도, 돈도 아닌 굴비였다. 굴비는 그 무렵 우리가 함께 살게 된 고양이다. 굴비의 이름은 철수가 지었다.  


   “굴비, 너무 귀여운 단어 아니야?” 그는 말했다.


   그는 ‘굴비’, ‘가오리’, ‘봉투’ 같은 단어들이 발음할 때 너무 귀엽다고 했다. 그래서 ‘가오리’는 고양이 이름으로, ‘봉투’는 개 이름으로 미리 지어 놓았다. 우리는 개와 고양이를 사랑함으로써 오직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라는 믿음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다. 지금은 굴비, 가오리, 봉투 모두 우리 곁을 떠난 지 오래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 정신이 들어 철수가 있는 거실 쪽을 보니 그는 어느새 소파에 기대 다시 잠들어 있다. 그는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스르르 잠이 든다. 우리는 백신을 꼬박꼬박 맞고 있다. 의사 말대로라면 우리가 당장 병에 걸려 죽을 확률은 낮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우리 중 하나가 아침이 밝고 고양이가 울어도 잠에서 깨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살그머니 다가가 잠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제멋대로 엉긴 머리칼, 가늘게 감은 두 눈, 볼과 소파 사이에 기도하듯 포갠 두 손. 그의 손은 언제나 모아져 있다.


   거실은 커튼을 쳐 놔 어둑하지만, 창 틈새로 약간의 빛줄기만 들어와도 금세 밝아진다. 밖에서는 이따금씩 소음이 들려온다. 나는 채소를 다듬어 아침을 차릴 것이고, 이제 그가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잠이 얕은 그는 곧 일어날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면 살아온 고단함도, 쇠약한 육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뒷전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한 아침이다.







1 캐럴라인 냅, 김명남 역, 『명랑한 은둔자』, 바다출판사, 2020, 48쪽

2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알마, 2017, 73쪽

3 백은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문학동네, 2021,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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