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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돈 코치 Nov 05. 2020

나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헛되이 살고 싶지 않다

질문스토리카드

인생은 사막이다.
1막은 배우는 시기이고
2막은 경험하는 순간이고
3막은 챙기는 시간이고
4막은 나누는 기간이다.
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을 만나고
마치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10년 동안 떠도는 문장의 패턴이
어찌 하나 같이 똑같은가?
가끔 보석 같은 내 문장을 만날 때
오아시스 기쁨이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사막을 걷고 있는가?

나의 1막은 유년시절 꿈만 있고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다.

비행기 소리가 크게 들리는 김포공항에 방구석에서 늘 방콕만 했던 아이였다.

심심해서 낙서를 시작했는데, 학교 갔다 와서 낙서를 어머니가 모아주셨다.

"엄마! 이것, 낙서인데 왜 버리지 않았어?"

"네가 쓴 것인데 어떻게 버리니?"

말씀이 내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형과 누나가 보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밤새 읽고 다음 이야기를 꿈에 꾼 적도 있다.

누나는 늘 그림과 노래를 좋아했고, 형은 싸움을 잘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보호 속에서 삶의 의미 없이 왜 살아야 하지? 늘 의문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 중학교 때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햇살이 좋은 어느 날 마포중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마종하 선생님이 우리에게 과제를 주었다.

"애들아! 돌멩이라는 소재를 줄 때니 다음 주까지 시를 써와야 한다."

"선생님! 시를 저희가 어떻게 써요?"

"애들아! 우리 안에는 시가 숨어 있단다. 단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지."

우리들은 다음 주에 시를 갖고 왔다.

마종하 선생님은 그 시를 하나하나 읽어서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고치면 더욱더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셨다.

그때 내가 썼던 글을 처음 칭찬이라는 것을 받아보았다. 그리고 한 친구가 그 글을 교지에 내었다.

난생처럼 내 글이 활자화가 된 것이다. 나는 열다섯에 뜻을 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무조건 두려워하면 헐뜯기고 고용당하면 감정의 노예가 된다.

두려움은 우리 안에 어려움을 피해가기 위한 내비게이션이다.

글은 글뿐이다. 글이 길이 되는 것은 용기를 내어서 한 발을 떼었을 때다.

무수히 내 글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단지 지나가는 관객일 뿐이다. 절대로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처음 대학 강의를 했는데, 어느 날 기업에서 강의 의뢰가 왔다.

가보니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 기업에서 교육담당자가 되어있었다.

내가 쓴 문장이 나를 만든다.  

모든 사람에게 잘할 필요가 없다. 그럴 에너지면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단 한 명을 위해서 진심을 담아라.

그 뜻이 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큰 뜻이기를 바란다.


좋은 글이 아니라 위대한 글을 쓰는 방법 5가지


1. 내가 쓰려는 글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콘셉트인가?

2.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인가?

3. 내가 갖고 있는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4. 계속해서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분야인가?

5. 10년 안에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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