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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돈 코치 Mar 08. 2024

이상하게 슬픈 파랑이라니 임수경 시인동네 시집추천

커리어코치

오늘 서울역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떠돌이 나그네이지만 시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살면서 시심을 잃는다. 그것은 직장 생활로 겉치레로 가면을 쓰고 산다.

 처음 시집을 들고 깜짝  놀랐다. 파랑색 시집이 아닌데 이상하게 슬픈 파랑이라니 표제시를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파란 하늘은 붉은 노을보다 파장이 짧다. 이 지상의 모든 짧은 것들은 다 가볍게 잊혀진다.

임수경에게 ‘죽음’이란 그 점에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라는 양자택일의 판단을 넘어선다.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미제의 시간 영역을 횡단하면서 ‘당신’의 기억과 목소리의 흔적을 간직하고자 펼치는 사유와 상상력이 놀랍도록 균형적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죽음의 사유는 “사실 지상의 모든 생물은/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죽음을 미루고 있는 중일지도/무심한 듯/아주 치열하게”(「슬픈 진화 2」) 여겨진다. 이 같은 태도는 삶의 무게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으며 과거 전체와 현재, 미래의 것들로 총체성을 이루고 있음을 믿는 ‘해방된 시선’을 반영한다. 시인에게 죽음이란 시작과 끝을 동시에 형성하면서 전체적 윤곽을 드러내는 존재의 한 양식이다. 정작 시인에게 문제는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 ‘당신’의 부재와 그로 인한 고독이다. 당신의 부재는 ‘나’의 존재 증명의 불가능성이며 존재성이 부인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부재의 흔적을 애써 봉합하려 하거나 죽음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완전한 소멸”(「시인의 말」)을 꿈꾸면서 오히려 죽음과의 결합을 수용함으로써 ‘나’를 구성해 갈 ‘미제’의 삶을 어떻게 결정지어야 하는지를 사유할 뿐이다.

추상적 죽음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이 스쳐 간 모든 자리가 술렁”(「이상하게 슬픈 파랑」)대는 구체적 사건이다. 임수경의 시는 죽음 이전 ‘당신’이라는 존재와의 관계를 사유하고 그 기억을 구체적 이미지로 조형한 결과물이다. 화자는 광휘를 뽑아내는 과거 속 ‘당신’이 존재와 부재 사이를 왕래하며 실존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배태시킨다. 인디언들이 거대한 우주에서 거미 한 마리가 죽자 거미줄 전체가 요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존재자의 삶이 기실 ‘당신’과의 관계 속에 화석화된 역동적 궤적임을 파악한 것처럼, 임수경에게 ‘당신’의 죽음과 부재는 “우주 일부분이, 때론 전체가”(「잔존기억」) 뒤척이는 일이다.


당신이 좀 더 머물길 바라며

내 뜨거운 숨을 두 번 더 참았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더 길어졌을까

날개를 내주고 다리를 얻었듯

어떤 직립은 꿈을 버리는 거다

그러니 인사는 생략한다

- 「슬픈 진화 1-연옥에서의 하루」 부분


‘당신’의 무거운 궤적과 부재 사이에서 화자는 ‘슬픈 진화’를 맞이한다. “어떤 직립은 꿈을 버리는” 일이며 “날개를 내주고 다리를” 얻는 일, 당신에게 “인사는 생략”하고 비로소 ‘당신’과의 관계에서 화자는 실존의 의미를 되찾는다. 그동안의 임수경 시집이 ‘당신’과의 사랑과 체험이 언표를 통해 지속되고 확장되어 시인의 의식을 가득 채워왔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당신’을 멀리 떠나보낸 뒤 현재의 삶이 비록 “그쪽과 저쪽 사이” 어디쯤 놓이더라도 “완전한 소멸을 꿈꾸”며 남은 생의 목적을 향해 “날개를 내주고” 얻은 다리로 “직립”해 보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화자에게 ‘당신’은 파장처럼 “다가올 때보다 멀어질 때 더/낮고 깊게 폐부를 찌르는 소리 현상”으로 존재한다. “멀어지는 너, 는 더 집요하게 공명”하여 화자의 현재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방으로 젖어 들어가는 종이,/번졌음에도 제 뜻을 쥐고 있는 문장”(「낙화주의-도플러 효과」)과도 같은데, 자연스럽게 화자는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당신’에게서 직립을 선언한다. “당신이 스쳐 간 모든 자리가 술렁”대지만, 그리고 “여전히 모를 일이지만”, “당신 말대로/오래 기억된다는 건 피곤한 일일지도” 몰라서 이제 “당신, 이쯤에서 저물어도 된다”(「이상하게 슬픈 파랑」)라고 말하는 것이다.

- 염선옥(문학평론가)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임수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이상하게 슬픈 파랑』이 시인동네 시인선 225로 출간되었다.

임수경의 시는 ‘죽음에 관한 세계’라고 해도 지난 친 말이 아니다. 죽음에 관한 사유는 현재를 검토하여 미제의 영역을 살펴 ‘삶’을 희구한다는 점에서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임수경은 회피 불가능한 죽음에 기투하여 현재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그 위치에서 미제의 영역을 어떻게 채워야 할 것인지 결단을 내린다. 그럼으로써 죽음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이다.오로지 아름답게 지금 저물어도 된다. 당신은 어떻게 저물 것인가?


#임수경

#시인동네

#이상하게슬픈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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