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합시다.

그러니 우리 일단 샤워를 합시다.

by 윤코지

무기력할 때는 샤워를 합시다.


온몸을 구석구석 공들여 열심히 씻으며, 우울한 감정을 거품과 함께 물에 흘려보냅시다.


대부분의 질척함은 물에 씻겨 금세 사라지지만, 가끔은 배수구에 걸린 머리카락처럼 쌓이고 쌓여 결국 유일한 통로마저 막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손대기 싫지만(내 몸에서 나온 것들이지만)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제거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보이는 머리카락을 다 치웠음에도 물이 여전히 시원찮게 내려간다면, 아마 내가 보지 못하는 어느 곳에 정체 모를 것들이 쌓여 있는 것이겠지요.


그럴 때는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락스를 조금 부어두고, 대신 잠시 기다려줍시다. 분해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동안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좋고, 잠깐 책을 읽거나 얼굴에 팩을 얹어도 좋습니다 그러다 “아차, 맞다!” 하고 가서 물을 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여 있던 물도, 새로 흐르는 물도 시원하게 내려갈 겁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막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한 번 해봤으니까요. 화장실 구석엔 아직 락스도 남아 있고, 어쩌면 다음엔 내가 먼저 낌새를 알아차려 머리카락을 치울지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쌓이는 것이니, 가끔 생각날 때마다 청소해 주면 됩니다.

완벽하게 뚫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일단 우리 샤워를 합시다.


물기를 잘 닦고 문을 열고 나오니, 왜인지 몸이 가벼워진 기분입니다.
발아래를 보니 강아지가 저를 기다리고 있네요.


아, 강아지 밥도 주고, 제 배도 채워야겠습니다.

밥을 먹고, 강아지와 함께 밖에 나가볼까요.

왠지 그러고 싶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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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집 강아지입니다. 참 귀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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