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로 한 나의 고백
내가 초등학생이 되던 해, 엄마는 마을 앞 공장에 취직했다. 그곳에서는 매일 초코파이 두 개와 요구르트 하나가 간식으로 나왔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챙기지 않은 초코파이도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나와 남동생은 엄마가 가져온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었다. 그때는, 그 맛이 참 좋았다.
하지만 이제, 초코파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자가 되었다.
엄마가 초코파이를 계속 가져오다 보니 냉장고에는 초코파이가 하나 둘 점점 쌓여갔다. 하지만 초코파이는 따듯해도 맛있고, 얼려먹어도 맛있었다. 동생이랑 나는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먹었다. 매일 챙겨 오던 엄마도 이제 초코파이가 물린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맛있게 먹었다.
그날도 초코파이를 하나 먹으려는데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엄마랑 아빠 생각은 안 하냐며 그만 먹으라고 혼냈다. 옆에서 이미 먹고 있는 동생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때는 '아 맞아. 엄마 아빠도 먹어야지.' 하고 손에 들었던 초코파이를 냉장고에 다시 넣었다.
어느 날 점심이었다. 엄마 아빠는 출근하고 나랑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넷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메뉴는 라면이었다. 할머니는 매 라면을 두 봉지만 끓이고 거기에 국수를 한 움큼 넣어 끓였다. 그리고 다 끓은 라면은 할머니가 그릇에 나눠줬다. 라면은 할아버지, 동생, 나, 할머니 순서로 담는다. 할아버지랑 동생그릇엔 라면이 담겼고, 나랑 할머니 그릇에는 국수가 담겼다.
할아버지가 내 그릇에 라면을 덜어 주려하면 할머니는 나를 보면서 "국수 먹으면 되니깐 괜찮지? 할머니랑 국수 먹자."라고 말하며 국수가 담긴 그릇을 내쪽으로 바짝 밀었고 나는 라면국물 향만 입혀진 하얀 국수면을 입에 넣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쉬는 날 늦잠을 자고 있을 때면 동네 할머니, 아줌마들이 하나 둘 우리 집 거실에 모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면 할머니는 나를 크게 부르며 커피를 타오도록 시켰다. 다들 마시고 왔다고 한사코 거절해도 자고 있는 나를 기어코 깨워 커피를 타오게 했다. 커피를 한잔씩 받아 든 동네 사람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고맙다며 잘 컸네~ 하고 칭찬을 했다.
그때는 바보같이 그 칭찬들이 진짜인 줄 알았다. 시집 잘 가겠네, 아가씨 다 됐네 그런 말을 듣는 게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시키니깐 했다. 아니, 내가 나올 때까지 계속 내 이름을 불러서 어쩔 수 없이 나갔다.
엄마가 퇴근할 때쯤이면 할머니가 "엄마 퇴근하고 오면 피곤하니깐 네가 경설여라(전라도 사투리. 설거지해라)."라고 했다. 그러다 밥 물 맞추는 방법을 배웠고, 어느 날부터는 전기밥솥에 밥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후 다섯 시 반이 되면 퇴근시간에 맞춰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쳤다.
일을 해야 할 때도 동생은 집에 있게 했고 나만 데려가서 일을 했다. 동생은 애기니까.
가을이 되어 벼 말리기(수확한 벼를 마당에 널어 말리는 것.)를 할 때도 동네 아저씨랑 할아버지, 나 셋이 했다. 벼에서 나오는 부스러기 먼지는 온몸을 따갑고 가렵게 했다. 겨울 김장철에는 절여둔 배추를 씻어야 한다면서 추운 그 겨울날 나만 마당으로 불러냈고 할머니랑 둘이서 그 많은 배추를 다 씻고 건져냈다. 결국 다음날 몸살감기로 학교에 못 갔다.
"선희야, 나와봐라." 이 말이 제일 무서웠다. 나 좀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애기라고 불리는 동생이랑 나는 한 살 차이 연년생 남매. 밥상을 차릴 때도, 식사 후 상을 치울 때도 동생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질까 방에 들어가게 했고 나는 떨어질 고추가 없으니 그릇을 모아 부엌으로 향했다. 그 또한 할머니의 지침이었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착한 딸이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할머니가 말머리마다 붙이는 "엄마 아빠 일 갔다 오면 피곤하니까."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에 막 접어들 무렵.
할머니가 저녁에 먹을 호박잎을 따왔다. 다 씻은 호박잎을 나에게 건네주며 '저녁에 엄마 아빠랑 같이 먹을' 호박잎을 데치라고 시켰다. 그날따라 방에 누 워쉬는 동생이 너무 얄밉고 나에게만 일을 시키는 할머니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호박잎을 비닐봉지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콱 던져 집어넣었다.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었는지 왜 그렇게 하냐고 혼내더니 그날 저녁밥 먹는데 이 이야기를 기어코 온 가족들 앞에서 또 꺼냈다. 나는 할머니에게 예의 없이 굴어버린 손녀가 되었다. 엄마 아빠한테 혼났다.
이런 날이 계속 반복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맞은 첫 중간고사 전 날이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또 할머니가 설거지랑 밥을 하라고 시켰고 나는 못 들은 척 계속 공부를 했다. "엄마 아빠 오면 편하게 밥 먹게 경설어두고 밥 좀 해두지 뭐 하고 있냐"라고 하는 순간에 일찍 퇴근한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빠가 할머니에게 화를 냈다. 애 공부하게 가만히 두지 계속 이랬냐고. 나는 이제야 알아준 아빠가 서운했고, 혼나는 할머니 모습에 조금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팍 터져 나왔다. '아 내가 꼭 밥을 해야 하는 게 아니었구나.' 아빠 뒤에서 찔찔 울면서 생각했다.
그 일 이후로는 며칠 동안 집안일에서 벗어났지만 뭐 얼마 안 가서 또 똑같이 돌아왔다. 그놈의 "엄마 아빠 피곤하니까" 이 말 때문에.
할머니는 시집살이가 힘들었다면서 이야기하며 종종 눈물을 흘렸다. 근데 나에게 하는 게 할머니가 말하는 시어머니랑 비슷했다. 책에서 봤던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본인은 저렇게 힘들었다면서 나한테는 왜 그러지?
할머니는 늘 엄마를 위하는 듯 이야기하며, 동네 사람들 앞에서는 며느리를 지극히 아끼는 시어머니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정작 엄마에게는 그다지 다정한 시어머니는 아니었다. 할머니의 고집이 워낙 셌고, 아빠도 할머니만큼 고집이 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진다는 속담처럼, 그 새우는 언제나 엄마였고, 가끔은 나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라고 하던데 할머니는 절대 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엄마, 맨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거 힘들지 않아?" 내가 물어봤다.
엄마는 "집에 있는 것보다 출근하는 것이 훨씬 속편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표정에서 진심이 보였다. 매일 하는 출근에 실에 손이 베여 벌어지고 손톱 끝이 기름에 물들어 까매진 손이 너무 안쓰러웠지만 출근하는 엄마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당뇨 판정을 받았다. 엄마는 잠시 일을 그만뒀다. 엄마는 할머니 병간호를 위해 퇴사를 했다. 6개월 정도 병간호를 하다가 할머니 상태가 많이 나아지자 다시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 이후 할머니는 집안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빨간 음식은 먹어보지도 않고 맵다며 밀어냈고, 고기반찬에 뼈라도 있으면 이가 아파 못 먹는다고 밀어냈다. 할머니의 편식 아닌 편식이 시작되었고 할머니 입맛에 맞춰 반찬도 국도 두 가지씩 해야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는 내가 저녁을 차려놓으면 미안한 얼굴로 고맙다고 했다. 어린 내 눈에도 다 보였다. 그래도 이제는 할머니가 시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하는 일이라 괜찮았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진심으로 기분이 좋고 뿌듯했으니까.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격주로 집에 가게 되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할머니는 남자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며 동생에게 밥상 닦기, 그릇 싱크대에 넣기 같은 일들을 시키기 시작했다. “장가가면 이런 것도 해야지, 안 그러면 누구네 집 아들처럼 쫓겨난다”라고 덧붙이면서. 갑자기 이 시대에 열린 할머니가 된 건가 싶었지만, 사실 그냥 동네에서 남의 집 이야기를 잔뜩 듣고 온 것 같았다. 아니면, 만만히 시킬 내가 집에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 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혼자 남은 할머니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할아버지에게 애교 있는 손녀가 아니었기에 이제부터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학교를 다니고부터는 시골집에서 나와 지내게 되었고, 스물다섯 살이 되던 때 첫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아빠는 내가 다니는 직장과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마련했다. 직장 때문에 동생과 나 둘이 먼저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남은 가족들도 곧 올라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본인은 두고 가라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엄마랑 아빠도 시골집에 남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평생 살아온 곳을 떠나려는 게 무섭기도 하겠구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보려 했다.
우리 엄마의 소원은 병원이랑 마트가 가까운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었다. 마 아빠가 산 아파트가 딱이었다. 맞은편에는 큰 마트가 두 개나 있고 조금 올라가면 병원이 많았다. 엄마는 무릎이 안 좋았는데 시골집에서 가까운 의원에 가려고 해도 걸어서 30분은 걸렸고, 버스는 한 시간에 한대뿐이었다. 그러니 이 아파트가 얼마나 엄마에게 딱 맞고 좋은 곳인가. 엄마가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주말이 되면 엄마아빠한테 와서 자고 가라고 졸라댔다. 내가 내려가도 되지만 사실 좋은 아파트에 동생이랑 둘이 사는 게 엄마아빠한테 미안했다. 아파트는 따듯하고, 깨끗하고, 주변에 맛있는 식당도 많고 배달도 많아서 좋은걸 동생이랑 둘만 누리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게 먼 곳도 아니었다 아빠가 운전하면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 그런데도 할머니가 안 간다고 버티면 결국 엄마도 아빠도 못 왔다. 가끔씩 와서 자고 가는 날이면 퇴근하고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생각에 근무하는 시간 내내 기분이 좋았다. 문을 열면 엄마랑 아빠가 퇴근하는 나를 맞아주는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아파트에는 엄마 아빠가 오면 지낼 수 있는 안방이 있었고, 안방에는 차곡차곡 살림이 조금씩 자리 잡아갔다. 화장대와 옷장이 들어왔다. 옷장에 옷이 야금야금 채워졌다. 엄마가 정리해 주는 것처럼 집에 온기가 채워져 갔다. 내 꿈이 점점 이루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엄마가 떠나자, 나는 너무 허탈했다. 언젠가는 이 아파트에서 엄마, 아빠, 나, 동생 넷이서 함께 살 날을 꿈꿔왔는데, 결국 엄마는 영정사진으로만 이 집에 오게 되었다.
장례지도사가 장례식이 끝난 후 장지에 가기 전에 어디를 들렀다 갈 거냐고 물어봤는데 시골집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주변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내가 "징글징글한 시골집에 죽어서도 가는 거 엄마가 싫어할 거예요. 바로 아파트로 가요."라고 하자 아빠도 동생도 내 말에 조용히 동의했다.
엄마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엄마가 생전에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집에, 엄마는 사진으로만 존재했다.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같이 있게 되었지만 하나도 안 행복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시골집을 정리했다. 현관문을 열면 엄마가 왔냐고 반겨줄 것 같고, 부엌문을 열면 엄마가 밥을 하고 있을 것 같고 안방을 열면 엄마냄새가 가득했다. 도저히 그 집에 있을 수 없었다. 27년을 살았던 그 집에는 시간과 추억이 가득 차 있었다. 아파트와 시골집을 오가며 짐을 정리하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렇게 고집부리던 할머니도 아파트로 들어왔다.
아 이렇게 올 거였으면 엄마 살아있을 때 고집 좀 한번 꺾고 엄마말 좀 들어주지.
엄마아빠를 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이사 한 번을 같이 안 가줘서 결국 우리 엄마만 불쌍하게 되었구나.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머니가 미웠고 화가 났고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더 이상 할머니를 이해하려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지난날, 나는 그래도 할머니를 사랑하려 애썼다. 가족이니까. 할머니도 가족들을 위해 그랬겠지. 그렇게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랑하기를 그만두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말로, 가족이라는 말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던 할머니를 나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지 않겠노라 고백한다.
이 글은 내 마음속에 오래 박혀있어, 곪아 버린 염증 같은 것이다. 터져버리기 전에, 나는 그것을 떼어내고 싶었다. 가족이라고 해서 꼭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껴안고, 억지로 참아내며 나를 갉아먹을 필요도 없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를 감싸고 품을 수는 없다. 냉정해 보이는 말 일지라도. 이 말을 누군가에게는 고백하고 싶었다.
앞으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온전한 정성과 마음을 더 쏟으려 한다.
이게 나의 진심이다.
이 글은 장황하고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읽는 동안 불편함을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진심을 꺼내 담은 고백이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작은 용기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제 마음속을 잠시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