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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 Oct 19. 2024

토론토 이삿날 4

아빠라면 안 그랬을 거야

  윤조와 유진은 망연히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정말이지 눈 깜박할 사이였다. 어깨끈에서 몸뚱이가 해방되자마자 튀어 나간 것이다. 윤조와 유진이 바로 자동차를 돌아 나왔는데 없어지다니.

  

  "아니, 그새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엄마! 어떡하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황망했던 순간이 그들 인생에 또 있었을까.

  

  "일단 저기 한번 찾아보자. 뭐, 멀리야 갔겠어."

  

  윤조가 턱을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그들은 도로 경계선을 따라 서 있는 나무 밑 잔디밭을 헤집었다. 혹시나 잔뜩 겁먹은 트리가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런 밋밋한 잔디밭에 설령 트리가 몸을 숨겼다 하더라도 쉽게 드러났을 터였다. 그들은 동시에 주유소 진입로 건너편에 있는 좀 더 넓은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갈 데라곤 이제 거기뿐인데, 윤조와 유진이 둘이 찾기에는 잔디밭이 너무 컸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윤조를 향해 유진이 다그쳤다.

  

  "어떡해. 엄마? 응? 혹시라도 겁먹어서 차도로 뛰어들면 어떡해? 그러기 전에 찾아야 한단 말이야."


  "트리가 그렇게 무모한 애는 아니야."

  

  황량한 벌판에 어디에선가 떨고 있을 겁쟁이를 생각하니 윤조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일단 경찰에 신고하자."

  

  느려터진 캐나다 경찰들의 대응을 생각하니 속이 터졌지만, 게다가 고양이를 찾아주겠다고 나설 것 같지도 않았지만, 윤조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신고하면 경찰이 바로 오기나 할까? 경찰 믿다가 어두워 지기라도 하면 야생동물한테 잡아먹힐 수도 있어."


  유진의 낯빛은 창백해져 있었다.

  

  "유진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일단 가서 찾아보자. 혹시 아니? 벌벌 떨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렇게 멀리 가진 않았을 거야. 자, 가보자."

  

  윤조는 절망에 빠진 유진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유진을 안심시키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트리가 반대편 잔디밭 어딘가에서 얌전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 제발 차도에 뛰어들지만 않았기를.  

  

  "트리야! 트리! 엄마야. 어디 있어? 이젠 괜찮아. 나와도 돼. 트리?"


  "트리야, 제발 나와봐. 언니야. 이제 안심해도 돼."

  

  트리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보기와는 달리 이곳도 트리가 몸을 숨기기에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찾아봤던 곳과 마찬가지로 다람쥐라도 있다면 한눈에 들어올 판이었다. 어디선가 트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야옹 하며 나타날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려다 핸드폰도 지갑도 모두 차 안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 문은 잠갔는지 기억도 없다. 윤조도 유진도 여기도 이미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유진아, 여기는 더 찾아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 일단 돌아가자. 가서 경찰에게 신고라도 해보자. 그리고 혹시 아니? 지금쯤 트리가 우리 차 주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유진은 한마디 말도 없이 윤조를 따라나섰다.


  주차된 차로 돌아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1시 20분이었다. 아니 2시 20분이었다. 온타리오주가 한 시간 더 빠르니까. 썬데베이까지는 아직도 4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윤조는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한 사람은 여기 있을 걸 그랬나 봐. 혹시 트리가 왔다가 그냥 갔으면 어떡하지?"

  

  유진이 조마조마하며 트리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나 싶어 두리번거렸다.

  

  "유진아, 일단 경찰에 실종신고 해놓고 기다려보자. 찾으면 다시 오면 되니까."


  "무슨 말이야. 엄마? 신고하고 그냥 가자는 거야?"

  

  놀란 유진이 윤조를 쏘아보았다.

 

  "그러면 마냥 여기서 기다리자고? 5일엔 토론토에 도착해야 하고 그다음 날 아침에 이삿짐 트럭 오는 거 너도 알잖니. 방법이 없잖아."

  

  유진의 싸늘한 눈초리에 윤조 언성이 높아졌다.

  

  "그럼, 엄마 혼자 가."


  "혼자 가면? 뭐 그러면 넌 여기 남아서 계속 찾겠다는 거야 뭐야? 초등학생처럼 떼쓰는 것밖에 더 돼? 너 지금?"


  "싫어 난! 절대로 트리 없이는 안 갈 거야."

  

  입을 꾹 다물고 등을 돌려 버리는 유진에게서 윤조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대화하기 싫다는 표현을 그런 식으로 했던 그 사람.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렸다는 신호를 그런 식으로 보냈던 사람.

  

  "아빠라면 안 그랬을 거야."

  

  오랫동안 꾹 눌러온 울음이 터져 나오며 목멘 소리로 유진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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