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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 Oct 17. 2024

토론토 이삿날 3

다 엄마 때문이야

  이삿날이 다가왔다. 위니펙에서 토론토까지는 2,100킬로미터 거리로 시속 100킬로로 달린다면 21시간이 걸린다. 미국 고속도로를 타면 거리도 100여 킬로미터 더 짧고 시간도 좀 더 단축되지만 로드 트립하는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약 700킬로씩 운전해서 썬더베이와 수생마리를 경유하는 2박 3일 루트인 캐나다 국도를 선호한다. 물론 윤조도 볼 게 많은 캐나다 1번 국도를 탈 예정이다.

  오늘은 8월 3일이니 토론토에는 5일 저녁에 도착할 수 있다. 이삿짐은 전날 트럭이 와서 다 실은 뒤였고 윤조와 유진은 가구 하나 없는 빈집에서 침낭을 펴고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밥은 길을 떠나면서 맥도널드에서 드라이브 스루해서 차 안에서 먹기로 했다. 아무리 여름 해가 길다지만 운전은 윤조 혼자 몫이었으므로 중간중간 쉬면서 가려면, 게다가 트리를 위해서는 더 자주 쉬어야 하므로 무조건 일찍 나서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트리가 이렇게 안 따라주다니. 결국 사료에 가바펜틴을 섞어 먹이는 방법도 실패로 끝났고 윤조와 유진은 일단 발버둥 치는 트리를 켄널에 넣고 뒷자리에 태웠다. 유진은 트리 옆자리에서 보호자 역할을 맡기로 했다.

  

  "엄마, 졸리면 안 돼. 난 트리 때문에 엄마 신경 못써."

  

  유진이 트리 옆에 앉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알지. 엄마 신경 쓰지 마. 유진이 넌 트리만 잘 봐주면 돼."

  "트리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 유진 언니가 옆에 있을 거야. 중간중간 쉬면서 갈 거니까 정 힘들면 언니한테 사인 보내고. 아이 장하다, 우리 트리."

  

  윤조는 켄넬 망사 부분에 코를 바짝 댄 트리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이번 여정은 너한테 달려있어. 우리 잘해보자, 트리야!"


  윤조는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서자 속도를 늦췄다. 한 손으로 홀짝이던 맥도널드 커피를 컵홀더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핸들을 다 잡아 우측으로 돌렸다. 한 달 동안 이사 준비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연신 흔들며 두 번 다시는 못 할 짓이라고, 특히 캐나다에서는 웬만하면 이동하지 말자고 혀를 내두를 일이었다. 하지만 길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트리만 잘 따라준다면 토론토 이삿길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길 수 있겠다 싶었다.

  시속 100 킬로미터로 크루즈 컨트롤을 맞춰놓고 두 시간여 달리니 위니펙이 있는 매니토바주에서 온타리오주로 들어섰다. 언덕이라곤 한 뼘 때기도 없는, 그래서 주차브레이크 기능이 전혀 필요 없는 위니펙에서는 볼 수 없는 경사진 길을 시작으로 호수와 가로수가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풍성한 초록 잎들이 불과 세 달 후면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 있을 모습이 벌써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온타리오주 보다 기온이 낮은 매니토바주에서는 고작 노란색만 볼 수 있는데 말이다. 때로는 구불구불한 길이 등장해 하루 7-8시간 운전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여름 아침 햇살이 가로수와 호수 표면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트리는 좀 어떠니? 아직도 겁에 질려있는 거야?"

  

  윤조가 룸미러로 유진을 보았다.

  

  "혀 내밀고 헉헉거리더니 이젠 입만 벌리고 있어. 꼭 우는 것처럼. 아마 체념한 것 같아."

  

  룸미러를 통해서도 유진의 걱정과 안쓰러움이 가득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시간만 더 가면 쇼핑몰인데, 잠깐 들를까? 뭐라도 마실 겸?"

  "아니, 괜찮아 난. 그리고 쇼핑몰은 사람이 많아서 트리가 겁먹을 수도 있잖아. 트리가 정 힘들어하면 몰라도"

  

  유진은 온통 고양이 걱정뿐이었다. 윤조는 커피 한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몰에 들르는 건 포기했다. 아침부터 왜 저럴까. 내내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 게 뭔가 불만이 가득한 것 같은데 단지 가바펜틴 못 먹여서 저러는 걸까. 이 나이에 딸 눈치를 봐야 하다니. 윤조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윤조는 케노라 쇼핑몰을 지나쳐 계속 차를 몰았다. 해가 높아지면서 시야가 더 넓어졌다. 반짝거리는 가로수 잎들을 지나친다 싶으면 드문드문 보이는 농가주택이 나타나고 그러다 양옆으로 풀을 뜯는 말 떼들이나 소 떼들을 지나치기를 반복했다.

  

  "유진아, 방금 소 봤어? 얼룩소였는데"

  

  룸미러로 보이는 유진의 표정이 여전히 어두워 윤조는 분위기를 띄워보려 했다.

  

  "......"

  "응? 아직도 불안한 거야? 아이고, 트리 돌보다 언니가 몸살 나겠네."

  "그러니까 가바펜틴을 먹여야 했다고. 그랬으면 트리도 더 편안할 텐데, 계속 혀 내놓고 숨을 헐떡거리잖아. 다 엄마 때문이야."

  

  두어 시간째 트리만 지켜보고 있던 유진이 결국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아, 그건 나도 미안. 더 잘해보려고 그런 거였지 뭐. 이따 점심때 캔에 섞어서 줘보자. 산책도 좀 시키고."

  "트리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적당한 데 나오면 멈춰봐, 엄마."

  "그래. 그러자."

  

  주유소와 편의점 위치가 500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오자 윤조는 서서히 속력을 줄였다.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니 꽤 많은 차가 편의점을 중심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윤조는 트리를 켄널에서 꺼내 바람 좀 쐬어줄 요량이었으므로 편의점에서 아예 멀찍이 떨어진 한가한 곳을 찾았다. 자동차 바퀴가 비포장길 자갈 위에서 구르다 멈추는 소리가 마치 불편한 속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윤조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트리야,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아주 잘 참았어요."

  

  윤조는 운전석에서 나오자마자 뒷문을 열고 트리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유진을 도와 켄널을 열고 트리에게 어깨 줄을 매는 것을 도왔다.

  

  "이 정도면 됐겠지."  윤조는 최대로 조여 트리 몸에 딱 맡게 조정했다.

  

  "너무 세게 조인 것 같아. 살이 불룩 나왔잖아. 그러잖아도 잔뜩 불안할 텐데 이게 웬 고문인가 하겠어."

  

  유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양이도 강아지처럼 산책시키는 집사들이 더러 있어 윤조네도 단박에 어깨 줄을 사서 도전해 보았지만, 겁 많은 트리는 한 번도 협조해 주지 않았었다. 그럴 때면 윤조와 아이들은 말썽꾸러기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어떨지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알고 보니 트리는 너무나 얌전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유진 말에 윤조는 볼록 나온 건 털이지 살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혹여 트리가 불편해할까 봐 줄을 약간 느슨하게 했다.

  

  "이 정도면 됐어. 트리야, 좀 걸어볼까?"

  

  윤조는 제법 무거운 트리를 들어 올려 차에서 내렸다. 유진이 줄을 잡고 뒤따라 내렸다. 8월의 건조하고 더운 바람이 여기저기서 불어와 윤조와 유진의 머리칼이 뒤엉켰다.

  그때였다.

  바닥에 내리자마자 낯선 곳과 황량한 바람 소리에 놀랐는지 트리는 등을 힘껏 구부리고 몇 번 몸부림치더니 어깨 줄을 머리 위로 빼냈다.

  

  "엇, 안돼!"

  

  그들은 동시에 소리쳤고 트리는 유진의 손아귀에서 튕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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