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아악!"
"칵!"
처음 들어보는 괴기한 소리였다. 녀석은 여덟 개의 손톱을 드러낸 두 손을 허공에 내지르며 가슴과 배를 꽈배기 꼬듯 하더니 펄쩍 뛰어올라 윤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이내 팔이 얼얼해 내려다보니 윤조 오른 손목 위로 선명한 분홍색이 주욱 그어져 있다. 며칠 전 손톱을 깎아주었기에 망정이지 피를 볼 뻔했다.
"와아, 이럴 줄 알았어. 힘도 세지, 우리 트리. 어떡하지 이젠?"
윤조는 동물병원에서 받아온 신경안정제인 가바펜틴이 든 스포이드를 한 손에 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유진이 트리를 붙들고 있는 동안 윤조가 트리 입을 벌려 잽싸게 스포이드로 약방울을 떨어뜨리려는 계획이었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집사들의 낯선 행동에서 이미 트리는 위험을 감지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햇볕이 드는 주방 창문 아래로 가 자리를 잡고는 연신 혀로 손을 핥았다. 마치 쓴 약의 맛은 눈곱만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기세로.
지난주 동물병원에 방문해 장시간 차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수의사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며 차 태우기 전에 먹이라 했다. 자동차 여행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겁먹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트리 같은 시아미스 종들은 코가 짧아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료에 뿌려줘야 한다고. 수의사도 그렇게 말했잖아. 엄마는 엄마 맘대로야 하여튼."
유진이 손사랫짓으로 트리 털을 날리며 투덜댔다. 트리를 향해 안쓰러운 표정을 한 채로. '네 엄마는 팔에 상처까지 입었는데 그건 안 보이니?' 윤조는 아까보다 부풀어 오른 상처를 보며 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트리에 관한 일이라면 무조건 양보해야 했다. 유진은 트리에게 애정을 넘어선 집착을 보여왔다.
트리는 6년 전 윤조가 수연과 유진을 데리고 캐나다 위니펙에 정착하기 시작할 때 입양한 고양이다. 낯선 곳에서 혹시나 외로움을 탈까 봐 윤조가 먼저 입양을 제안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진짜야? 엄마?" 하며 감동했었다. 한국에서 살 땐 애완동물은 아이들 기관지에 좋지 않다며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 그날 아이들 반응이 당연하기도 했다. 보호소 직원은 어떤 타입의 고양이를 원하냐며 <조용한 아이들부터 활발한 아이들, 짓궂은 아이들>까지 고양이 종을 파란색,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순으로 분류한 표를 보여주었다.
"엄마, 왜 그 동화책에 나오는 고양이 있잖아. 집사가 돌아와 보면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던. 우리 어렸을 때 엄마가 들려준 책, 기억나?" 유진이 신나서 말했다.
"아, 커튼 타고 내려오며 손톱으로 다 찢어놓았던 그 줄무늬 고양이? 맞지?"
수연도 즐거워하며 기억을 상기시켰다.
"응, 난 그런 애 키우고 싶어. 뭐, 물론 진짜 커튼을 찢으면 안 되지만."
윤조는 활발한 아이들이 좋겠다고 말했고 직원은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그럼 보라색 아이들이 좋겠어요.'라며 그들을 고양이 방으로 안내했다. 양쪽으로 들어찬 케이지에 나뉜 칸은 약 12개 정도 되었는데 각 케이지 앞에 고양이 사진과 이름, 나이, 특징이 적혀 있는 프로필이 매달려 있었다. 물론 색깔을 표시하는 리본도. 윤조와 수연은 보라색 리본을 한 검은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엄마, 얘 너무 귀엽지? 어쩜 눈만 빼고 다 까매."
수연이 케이지에 매달린 프로필을 보며 말했다.
"이름이 쥬크래. 남자아이고 다섯 살."
"정말 예쁘다. 근데 유진이가 말한 애는 줄무늬가 있지 않니?"
윤조와 수연은 진작부터 한쪽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켄널에 들어 있는 회색 고양이에 눈을 못 떼는 유진을 보았다.
"얘는 왜 여기에 따로 있는 거예요?"
유진이 직원에게 서툰 영어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프로필도 없는 고양이였다. 은빛이 도는 털에 회색의 연한 줄무늬를 하고 눈은 파란 그 고양이는 길냥이였다가 구조되어 중성화 수술받은 지 이틀밖에 안 되었다 했다. 그래서 아직 회복 중이며 분류되기 전이라고. 거리에서 발견된 고양이 대부분은 안락사를 시키는데 이 아이는 예외였다며 나이는 치아 상태로 봐서 약 한 살, 이름은 아직 없다고 했다.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윤조와 수연도 뭔가 스토리가 있는 녀석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