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도 Oct 15. 2024

토론토 이삿날 2

아빠가 사 준 건데......

 "엄마, 언니, 이거 봐봐. 까아, 너무 귀여워."

  

  유진의 검지와 녀석의 오른손이 맞닿아있었다.

  

  "내가 손 내미니까 자기도 내민 거야. 진짜 똑똑하지 않아? 우리랑 살고 싶은 거지"

  

  그날부터 식구가 하나 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눈보라가 심한 날이었다. 건조한 겨울날 연기처럼 다가오는 서릿발 같은 눈이 자동차 라이트에서 춤을 추었다. 위니펙의 매서운 1월 날씨였지만 차 안은 새 식구의 존재로 훈훈했다.

  

  "이름부터 짓자."

  

  수연과 유진은 보호소에서 조립해 준 마분지 박스에 얌전히 들어있는 고양이를 가운데에 놓고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어떤 이름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일단 오늘이 얘 생일이야. 우리와 한 가족이 된 첫날이니까."

  "맞아, 그럼 오늘이 1월 11일이니까 에이스가 세 개인 거야."

  "와아, 맞네. 트리플 에이스."

  "트리플 에이스, 좋다. 줄여서 트리라고 부르자. 엄마는 어때?"


  위니펙에서 태어난 트리는 이제 집사들을 따라 토론토로 이주해야 한다.

  수연은 2년 전 먼저 위니펙을 떠났다. 모름지기 사람은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수연의 지론이었다. 유진이 제 언니를 따라 토론토로 갈 결심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유진아. 엄마는 네 의견에 따르시겠다는데, 결정했니?"

  

  지난 크리스마스에 수연이 왔을 때 윤조와 유진에게 토론토 이주를 적극적으로 권했었다.

  

  "아, 글쎄. 근데 가야겠지"

  

  유진은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야, 경유진! 생각 잘했어. 언제까지 시골에 갇혀 있을래?"


  윤조는 토론토에 거주하는 한국인 부동산 중개업자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 학교에서 도보 20분 거리 다운타운에 쓰리베드룸 콘도 월세를 얻어 놓았다.

  윤조와 유진은 낯선 곳에서 하는 처음 이사 준비로 한 달 전부터 바빴다. 한국처럼 포장 이사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박스 구입부터 포장까지 스스로 해야 했다. 지하실에 박혀있는 짐들을 꺼내니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스케이트, 자전거 자물쇠, 낚시용품, 캠핑용품등 6년 동안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소환되었다. 웬만한 것들은 버리고 쓸만한 것들은 중고 가게에 나눔을 하고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이건 중고샵에 갖다 주자. 유진아. 한 번도 입은 적 없잖아."

  "그냥 가져가면 안 될까. 아빠가 사 준 건데......"

  

  춥기로 악명이 높은 위니펙에서 지낼 아이들 걱정으로 한국에서 남편이 보내준 겨울 재킷을 내밀어 보이는 윤조에게 유진은 시무룩하게 말했다. 광택이 나는 재질에 소시지처럼 박음질이 팔과 몸통에 가로로 되어있는 게 아무래도 아이들 취향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윤조는 우체국 택배 상자에서 꺼낸 빨간색과 초록색 재킷 두 벌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었다.

  

  "여기서도 한 번도 안 입은 걸 토론토에서 입겠다고? 진짜야?"

  

  "그래도. 혹시 아빠가 겨울에 오시면 아빠 앞에서 한 번이라도 입어줘야 하지 않을까."

  

  유진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뜻은 단호했다. 윤조는 큰일을 앞두고 사소한 일로 문제 삼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아이들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부정의 산물을 꾸역꾸역 접어서 상자에 넣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