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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 Oct 22. 2024

토론토 이삿날 5

이건 분명한 애정결핍이에요

  "뭘? 뭘 안 그래?"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듯 윤조는 움찔했지만, 갑자기 제 아빠 얘기를 하는 유진이 어이없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 아빠 얘기가 왜 나오는데? 너한테 아빠는 트리 찾는 정의로운 역할이고 나는 뭐 트리 내버리고 가는 나쁜 역할인 거지?"

 

  "누가 그렇대?"

  

  "너, 지금 그랬잖아. 아빠라면 안 그랬을 거라고."

  

  "아빠라면 애초부터 다 잘했을 거란 뜻이야. 약도 잘 먹였을 거고. 어깨끈도 단단히 맸을 거라고!" 


  유진이 악을 썼다. 

  수의사가 일러준 대로 가바펜틴을 먹이면서 '유진아, 이렇게 하면 될까? 아빠가 잘하는 거지?'라며 유진의 뜻을 존중하는 남편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어깨끈을 조정하며 '유진아, 네가 한번 확인해 볼래?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하며 유진에게 몇 차례나 확답을 받는 남편의 신중한 모습이 그려졌다.

  

  "너,  지금."

  

  윤조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비통한 얼굴에 잔뜩 울음이 가득한 유진을 보니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난 절대 안 가. 트리...... 여기에...... 두고......"

  

  이젠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 엉...... 아, 아빠. 아빠아. 아빠가, 보고 싶어, 아빠."

  

  목이 메어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유진은 자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하게 들썩거리는 아이의 어깨를 보니 윤조의 마음이 죄어오듯 아팠다.


  더운 바람이 훅하고 왼편에서 불어오며 흙먼지를 일며 윤조의 몸을 돌더니 다시 휙 하고 뒤편으로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그 소리에 맞추어 앞쪽에서는 고속도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가 리듬을 타고 높아졌다 낮아졌다 했고, 뒤편에서는 편의점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잔잔히 깔려있다. 목 놓아 운다 해도 들을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지 유진은 그러고 한없이 울었다. 윤조는 몸을 돌려 터벅터벅 주차된 차로 걸음을 옮겼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이 꺾였다. 간신히 자동차 바퀴를 잡아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냥 주저앉았다.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멀건 게 텅 빈 윤조 마음과 닮았다. 튀어나온 자갈이 엉덩이를 파고들었고 윤조의 의식은 어두운 내면을 파고들었다.   


  육 년 전 윤조와 남편은 헤어지기로 했다. 사랑이 식으면 정으로 사는 게 부부라던데 그들은 정이 들기 전에 미움이 먼저 들었다. 미워하고 미움받으며 한 공간에 사는 것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윤조 인생에 제일 큰 오점은 그녀 아이들에게 화목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자주 싸우는 부모 아래서 자랐던 윤조는 불안했던 그때의 경험을 제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꼴이었다. 불행한 부모보다 행복한 편모를 보며 사는 게 낫겠다 싶어 한 결심이었다. 수연과 유진에게 덜 피해가 가는 방법을 찾다가 윤조가 아이들만 데리고 캐나다 이민을 온 것이다. 

  위니펙에서 수연은 중학교 2학년부터 유진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영어도 금방 늘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기 때문에 윤조는 별걱정이 없었다. 캐나다 생활 6년 동안 한 번도 아빠가 보고 싶다고 윤조 앞에서 표현하지 않던 유진이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규칙적으로 통화하고 왕래했기 때문에 충분한 부정을 느꼈을 거로 생각했다. '나 좋을 대로 해석했던 걸까? 아빠의 부재를 그렇게 유진이는 트리로 대신했던 걸까. 지금까지 유진이 트리를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트리는 운 좋게 윤조네를 만나 행복한 거로 생각했는데. 아아, 트리가 유진을 위로하고 있었다니.'

  사실 수연이 먼저 그런 걱정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유진의 단짝이 놀러 왔었다. 그 애도 제 아빠는 홍콩에 있고 위니펙에서 엄마와 오빠와 살고 있다. 그날은 서로 아빠 얘기를 하며 울었다고 했었다. 윤조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겠거니라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수연의 반응은 달랐다.

  

  "엄마. 쟤, 친구들과 아빠 얘기 할 때마다 울어요. 이건 분명한 애정결핍이에요. 트리한테 하는 건 어떻고요. 그건 애정이 아니라 집착이에요. 정말 쟨, 상담이 필요한 애예요."

  

  애써 수연의 우려를 무시했던 건 아닐까? 캐나다에서 더 바쁘게 살면서 아이들한테 아빠 몫까지 하면서 보상받았다고 자만한 걸까? 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윤조는 유진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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