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령과 한 달 살이 5
아무래도 이 집에 유령이 사는 것 같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셋은 기계적으로 소파로 가 나란히 앉았다. 에디가 꿈에서 본 소파가 지금 그들이 앉아있는 것이라면, 검은 형체는 어디에서 나왔다는 걸까. 셋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서로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트리가 느릿느릿 걸어와 누구 옆으로 점프를 할까 가늠하고 있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 요즘 사는 게 왜 이리 다이내믹하냐. 갑자기 물이 안 나오질 않나. 자전거를 도둑맞을 뻔하질 않나. 응? 국제 범죄자에, 뭐? 백인 남자가 날 따라다닌다고? 이젠 검은 형체까지. 이건 뭐 지루할 새가 없네."
윤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전구도 깨졌잖아, 엄마. 전기도 나갔고." 유진이 풀이 죽어 말했다.
"맞다. 그랬지. 전기, 수도, 다음엔 뭘까?"
갑자기 수연이 옆에서 낄낄댔다.
"뭐야? 왜? 다음엔 최루탄 든 좀비라도 나오는 거야?"
"아니. 갑자기 우리 맥도널드에서 세수했던 게 히힛, 생각나서, 히힛."
수연말이 끝나자마자 셋은 그날을 떠올리며 낄낄대고 웃다가 급기야는 바닥으로 굴렀다. 그날 아침엔 물이 안 나왔다. 오피스 노티스를 미처 못 본 걸까. 학교는 가야 했고 세수는 해야 했고 해서 급한 대로 맥도널드에 가 아침을 해결하고 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 하기로 했다. 윤조는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수연과 유진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둘 다 얼굴과 손이 벌게져서 나왔다. 그녀는 순간 깜짝 놀라 벌에 쏘인 건 아닐까 했다. 윤조 앞에 수연과 유진이 벌겋게 익은 두 손을 앞으로 들어 혀를 내밀고는 합창을 했다.
"엉마, 창물이 앙나아. 엉청 뜨거어."
며칠이 훅 지나갔다. 목요일엔 ESL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라 윤조는 모처럼 불고기를 사다 양념에 재워둘까 해서 한국 식료품점 88 마트에 들렀다. 정육코너로 가기 전 뭐 새로 들어온 게 있나 해서 매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 자매님?"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저장해 둔 해마에서 신호가 와 돌아보니 에디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있었다. 요 며칠 잊고 있었던 장면이 촤르르 펼쳐졌다.
"어머, 한국음식 사러 오셨나 봐요."
에디는 짧게 예 라고 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침 전화 한번 드리려고 했었어요. 내일 시간 어떠세요? 전 이 시간 이후로는 괜찮아요."
결국 에디는 내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윤조네를 방문하기로 했다.
에디를 몇 번 안 봤지만,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으면 왔지 늦을 사람 같지는 않았다. 윤조는 진작에 거실 청소를 끝냈다. 뭔가 더 할 게 없나 둘러보다가 2층 계단옆에 두었던 조화 화병을 소파 옆 티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훨씬 나아 보였다. 3인용 리클라이닝 소파가 벽에 자리하고 있고 옆으로 1인용 의자가 패티오를 바라보고 있는 거실은 편안해 보였다. 에디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오자마자 기도부터 하고, '오, 거실이 아주 아주 아늑해 보이는데요. 제 꿈에 나온 곳과는 많이 달라요.' 하고는 몇 가지 일상 대화가 오고 간 뒤, 홍차가 식기도 전에 아이들을 픽업해야 한다며 일어설 것이다. 그래, 한 이십 분, 길게 잡아 삼십 분이면 될 거야.
커피포트의 물이 끓자 너무 이른 것 같아 윤조는 스위치를 내렸다. 눈과 귀는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물을 끓이다 껐다를 몇 번 반복하니 드라이브 웨이로 들어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스토브의 숫자가 4:06이라 표시했다.
"제가 좀 늦었죠? 아이들 픽업하느라고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이들이 우선이죠."
윤조는 에디에게 앉으라고 권한 뒤 홍차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좋다고 대답하는 에디를 뒤로 하며 슬쩍 보니 엉거주춤 소파에서 일어나 1인용 의자에 앉고 있었다.
윤조가 찻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자 에디는 기도를 하고 나서 그녀가 앉아있는 주변을 관찰했다.
"저 화병, 원래 저 자리에 있던 건가요?"
윤조가 2층에서 가져온 그 화병이다.
"아, 아뇨.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어요."
그녀가 염려했던 것처럼 에디의 입에서는 꿈에 봤던 장면과 지금 거실 모습이 일치하다는 말이 나왔다. 화병만 빼고.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가위에 눌리는 일은 없었나요?"
"가위에 눌리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뭐 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지만요."
트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윤조 정강이에 머리를 들이밀며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예를 들면요?"
"음, 전기가 나가거나 수돗물이 끊기거나 뭐 그런 거요. 근데 제가 오피스 노티스를 못 본 것일 수도 있고요."
"나중에라도 확인해 보셨나요? 오피스에 말이에요."
"아뇨. 전기는 스위치 보드가 내려져 있었고 물은 뭐 바로 나와서 확인 안 했죠."
식어가는 홍차에는 관심도 안 보인채 에디가 이어갔다.
"자매님, 아무래도 이 집에 유령이 사는 것 같습니다."
윤조 발아래 앉아 한쪽 발바닥을 그루밍하고 있던 트리가 동작 그만 자세로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에디 넘어 허공을 쏘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