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령과 한 달 살이 11 마지막 회
그러면...... 그녀를 믿어줄까
일요일인 다음날이었다. 윤조네는 10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녀는 자동차를 문 앞에 대고 조수석 문을 열어두었다. 집으로 들어와 2층부터 지하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유령이 들을 수 있게 일정을 알렸다. '집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차에 타세요.'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윤조의 행동을 수연과 유진은 한 무대의 퍼포먼스를 보듯 했다.
"너희들은 뒷자리에 타고."
"엄마. 진짜 엄마를 위해서 가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엄마 마음이 편하실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거 아시죠?"
수연이 윤조에게 바짝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마치 누군가 듣고 있는 것 처럼.
"언니. 일단 가기로 한 거 좋게 갔다 오자. 엄마도 더 이상 유령 얘기는 안 하겠지."
유진도 수연에게 몸을 밀착하며 속삭였다. 마차 누군가를 의식하는 것처럼.
그들이 뒷자리에 각각 타자 윤조는 조수석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운전석에 앉아 안전띠를 매며 조수석을 쳐다보았다. 베이지 색 시트가 눈에 들었다. 순간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그녀는 어색해하며 전방을 응시했다. 유령의 기분은 어떨까. 집에 가게 되어 기쁜 걸까, 아니, 타긴 한 걸까. 윤조는 한적한 8번 국도를 달리며 몇 주 전 유령을 태우고 오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의 차에 탄 것은 충동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호기심이었을지도.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이 처럼 어쩌면 유령 세계에서도 이곳저곳 살아보는 게 트렌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내내 조용하던 뒷자리에서 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조는 내비게이션 지시에 따라 우측으로 진입해 좌회전해서 반대 도로를 탔다. 약 2킬로미터 더 가니 목적지가 나왔다. 세미터리라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드라이브 웨이가 나 있는 게 차량이 왕래하는 듯 보였다. 자동차를 세우고 나서야 바위라고 생각했던 커다란 비석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시동을 끄고 문을 열고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조수석 문을 활짝 열었다. 뒷문이 열리며 수연과 유진이 내렸다.
"헐. 딱 봐도 묘지네."
수연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것도 꽤 큰데. 저기 비석들 봐봐."
유진이 손가락으로 길 안쪽을 가리켰다.
"유령님 내리셨대요? 집에 도착했으니 내리셔라, 뭐 그런 얘기도 하시지. 왜 이리 조용하신가, 우리 엄마?"
"벌써 내려서 와! 우리 집이다! 하고 날아갔겠지 뭐."
"그랬을까? 크크."
"이제 그만 가요. 네? 엄마?"
"엄마?"
윤조는 조수석 문을 열었을 때 휙 하고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간 곳을 눈으로 좇았다. 유진이 가리켰던 곳이다. 12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웠다. 그 사이로 유령이 보였다. 꿈에서 보았던 우울하고 칙칙한 모습이 아니었다. 햇살에 비추어 그렇게 보인 걸까. 웬걸, 유령은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서. 그리고 옷차림이 달라졌다. 윤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칙칙한 수트 위에 겹쳐 입은 살구색 반팔 셔츠와 네이비색 반바지가 꽉 끼어서 팔다리 사이로 체크무늬 수트가 그대로 나와있는 게 더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저런 모습의 유령을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특이한 패션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나 보다. 부디 패션계에 종사했던 사람은 아니었기를. 윤조는 조수석 문을 닫았다.
"엄마?"
"듣고 있어. 엄마 그만 부르셔. 닳겠다."
돌아가는 길은 가벼웠다. 그녀는 페달을 밟아 속력을 더 내었다. 아, 이 개운하고 뿌듯한 느낌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수연과 유진을 붙들고 몇 시간이라도 뱉어내고 싶지만 비웃적댈 게 뻔해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정말 잘했어. 아, 정말...... 정말이지...... 그 옷은 왜 또 낯이 익는 걸까. 그녀는 살구색 셔츠와 네이비색 반바지 생각에 골몰했다.
"엄마앗!"
"어? 그래. 왜?"
"도대체 아까부터 왜 그러는 거야? 우리 얘기 못 들었어?"
아까와는 반대로 표정이 밝아진 수연과 유진이 상체를 바짝 당겨 윤조에게 향했다.
"아직도 유령 생각인 거예요? 설마 이번엔 또 다른 유령이 탄 건 아니겠죠? 아, 내가 앞자리에 타는 건데."
수연과 유진은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고 조수석 헤드 레스트를 팔로 감아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더니 창문을 열고 휙 던지는 흉내를 냈다. 그러다 서로를 보며 킬킬 대며 웃었다. 룸미러에 비친 그들의 얼굴이 햇살을 받아 살구색으로 빛났다. 아, 살구색. 그 살구색 셔츠였다.
유진과 같이 들어간 남성복 매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셔츠였다. 가무잡잡한 제 아빠 얼굴에 잘 어울리겠다며 유진이 골랐었다. 윤조는 셔츠와 같이 매칭된 네이비색 반바지 값을 치르며 뭐 이쁘다고 옷까지 샀을까 싶었지만 캐나다에 처음 방문하는 제 아빠 생각에 부푼 유진을 보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결국 남편은 그 옷을 입지 않았다. 윤조는 유진이 자신이 산 거라고 말하길 바랐었는데 제 엄마와 아빠 사이를 조금이라도 돌려놓고 싶었던 유진은 그러지 않았다.
그 후 반품 할 기간을 놓쳐서 옷장에 처박지르고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거였다. 아직도 키득대는 수연과 유진을 보며 그녀의 감정이 높아졌다. 집에 가자마자 옷장부터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그녀를 믿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