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는 대가린데 3

by 윤도

일요 일어서인지 도로가 한산해 생각보다 더 빨리 다정 마트에 도착했다. 서울 마트보다 규모가 작지만 오밀조밀한 진열대를 뒤지다 보면 서울 마트에서는 보지 못한 물건들을 발견하곤 한다. 마트 안으로 들어서자 늘 그랬듯이 주인이 커다란 미소로 반겼다. 엘이 인사말도 생략한 채 잘라서 포장된 것 말고 황태 통 북어가 필요하다고 주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주인은 '에이, 그런 게 어떻게 여기까지 와. 포장된 것 밖에 없지.' 하며 곱게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 통 북어는 왜 필요하냐며 혹시 제사라도 지내냐고 물었다. 엘과 윤조는 깔깔대며 북엇국이 먹고 싶은데 꼭 대가리채 우려낸 맛이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작년에 무교동에서 북엇국을 먹었거든요. 근데 정말이지 너무 맛있는 거야. 그래서 그 맛 그대로 끓여보려고 해요."

엘의 설명에 주인은 황태채로도 충분하지 누가 요즘 북어포를 일일이 찢어서 끓이냐며 안쪽으로 들어가 팩 하나를 가져와 디밀었다.

"그래도. 북어는 대가리지." 윤조가 김 빠지듯이 중얼거렸다.

"어머, 그래도 이거 황태네. 이것 봐 조. 진짜 황색이야." 엘은 윤조를 어르듯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황태를 높이 들어 보였다.

윤조는 엘에게서 팩을 받아 들었고 마트 주인은 기세를 몰아 사간 사람들이 맛있다고들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윤조는 원산지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팩의 뒷면에는 produce of와 packed in을 교묘하게 표시해 소비자를 혼란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명료하게 made in korea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들은 무와 콩나물도 산 뒤 마트를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북엇국은 자기 집에서 끓이자고 엘이 제안했다. 윤조도 동의했다. 꼬박 한국 음식을 해 먹어 한식 양념과 주방 도구들이 잘 갖춰진 엘의 주방이야말로 많은 양의 국을 끓이기에 적합하다.

엘이 가라지에 주차를 했고 둘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해졌다. 장바구니를 주방 카운터에 올려놓고 손을 씻은 뒤 각각 앞치마를 둘렀다. 엘은 무와 콩나물을 씻고 윤조는 북어채를 가위로 잘라 물에 불렸다.

"조! 우리 벽난로 불 피우자."

무를 썰던 윤조가 돌아보니 엘이 어느새 가라지에서 두툼한 장작 서너 개를 팔에 안고 들어왔다.

"아, 좋지. 불 때기 좋은 날이네."

윤조는 손질한 북어가 물에 불기를 기다리며 주방창을 내다보았다. 뒷마당과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다. 아직 오후 두 시도 안 되었는데 해는 뜨지도 않고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엘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벽난로에 신문지를 꾸겨 넣고 그 위에 장작을 지그재그로 포개고 불을 댕겼다.

혹독한 겨울 날씨 때문에 위니펙의 거의 모든 집에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윤조도 이민 첫해 겨울엔 마치 의식을 치르듯 벽난로에 장작을 피웠더랬다. 하지만 실내 공기는 탁해지고 재가 날려 콧구멍이 까매지기 일쑤였다. 그런 수고를 하는 것은 딱 한 해로 족했다. 그야말로 앓느니 죽지였다. 엘은 진작에 강화 유리문과 공기 순환기를 달아 벽난로를 업그레이드했다. 덕분에 실내 산소는 유지되고 외부 공기가 순환되어 화력이 더욱 좋아졌다.

"어머, 벌써 시작하는 거야? 잠깐만. 같이해. 어떻게 끓이는지 볼래."

인덕션 스토브 위의 큼직한 냄비 안에서 끓는 소리가 나자 엘이 윤조 곁으로 다가왔다. 결혼 전에 이민 와서 한국 음식을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배워왔던 엘이다. 이민 오면 정신 연령이 이민 왔던 나이에서 멈춘다는 신빙성 없는, 하지만 이민 생활을 거듭할수록 맞아떨어지는 그런 지론대로라면 엘은 20대의 살림 초보자이고 윤조는 40대의 베테랑이었다. 주방에서의 둘의 관계는 적어도 그러했다.

냄비 안에서는 물에 불은 북어가 자박자박 끓고 있었다. 윤조는 까나리 액젓을 네 큰 술 넣었다.

"어머! 액젓을 넣는 거야?"

"응, 간을 이걸로 하는 거지."

"진짜?"

"응, 미역국처럼."

"어? 그건 뭐야?"

윤조가 집에서 가져온 치킨 스탁을 한 스푼 넣자 엘이 신기한 듯 물었다. 노란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엘이 새색시처럼 와아! 어머! 같은 리액션을 하면 할수록 윤조는 맛있게, 더 맛있게 끓이고 싶었다.

"응. 요즘 한국에선 코인육수 사용하잖아. 대신 여기선 치킨 스탁."

윤조는 냄비에 물을 8할까지 채우고 뚜껑을 덮었다.

"됐어, 언니. 이제 푹 끓으면 콩나물 좀 넣고 파 넣고 푼 달걀 두른 다음."

"다음?"

엘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빛났다.

"군산 언니표 참기를 몇 방울 치면 돼."

"어머, 그렇게 간단해? 아, 그 북엇국을 직접 만들어 먹다니. 진작에 자기한테 물어볼 걸 그랬어."

엘이 손뼉까지 쳤다.

그때도 이렇게 정성 들여 끓였더라면. 그때도 요리하는 게 이렇게 즐거웠더라면. 북어살이 잘 뜯기지 않아 애꿎은 북어에게 화풀이하며 간만 겨우 맞춰 끓여댔던 그 수많은 북엇국이, 며칠 지나면 으레 음식물 쓰레기로 들어간 쉬어버린 북엇국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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