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조집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엘이 윤조를 태우러 왔다. 전화를 끊고 정확히 30분 후였다.
"이게 뭔 일이니? 일요일에 교회도 안 가고. 세상에."
느닷없는 북엇국 타령에 민망해서였을까. 윤조가 차에 오르자 엘이 기다렸다는 듯이 하소연을 인사 대신 했다.
"무슨 일은 무슨 일. 그냥 날씨 탓이지 뭐."
"아휴, 정말 이 놈의 날씨. 도대체 며칠째 해를 못 보는 거야, 응?"
일요일의 조용한 주택가를 빠져나와 펨비나 도로를 타며 엘은 고개를 모로 해 하늘을 흘겼다. 아닌 게 아니라 겹겹이 포개진 묵직한 구름이 당장이라도 갈라져 눈을 쏟아낸다 하더라고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지독하게 춥긴 해도 햇살이 좋아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위니펙 겨울인데 요 며칠은 해를 통 볼 수가 없었다.
"서울 마트에 북어가 있어야 할 텐데."
윤조가 혹시 몰라 챙겨 온 장바구니를 다리 사이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있지. 당연히."
"아니, 잘라서 포장된 거 말고. 대가리채 있는 거."
"응? 대가리?"
무교동 북엇국집에선 손님들이 볼 수 있게 입구에서 커다란 솥에 국을 끓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하고 유심히 솥 안을 봤었다. 솥 안에서는 북어 대가리들이 기포가 생기는 가운데를 피해 가장자리로 밀려나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분명 각종 채소가 들었을 면포는 가운데가 불룩해져서 리듬감 있게 떨고 있었다.
"그래, 대가리."
서울 마트 주차장에 제법 차들이 많았다. 마트에 들어서자 역시나 한국인보다는 중국 사람과 필리핀 사람이 더 많았다. 하긴 위니펙에 사천명도 되지 않는 한국인만을 상대로 장사했더라면 서울 마트가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는 없었겠지라고 생각하며 윤조는 엘의 뒤를 따라 미역과 당면이 진열된 코너로 갔다. 마른 표고버섯옆에 놓인 북어포를 발견한 엘이 아, 찾았다 하며 냅다 윤조에게 팩을 하나 건넸다.
"대가리채 있는 건 못 본 것 같아, 꼭 그게 필요한 거야?"
두툼한 팩 안에는 잘게 찢어진 북어채가 들어있었다.
"대가리까지 푹 끓여야 그 깊은 맛이 날 텐데. 언니, 그 집 메뉴판에 어디였더라? 구룡포였나? 암튼 포구에서 잡아 말린 황태만 사용한다고 쓰여있었잖아."
말하면서 윤조의 눈은 진열대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랬었나? 자긴 꼼꼼히도 봤다."
윤조는 다른 북어 찾기를 포기한 듯 엘이 건넨 황태도 아닌 허연 북어채가 든 팩을 살폈다.
"조! 북어는 그게 전부래'"
어느새 마트 사장에게 물어보고 온 엘이 말했다.
"언니, 다정 마트 가보자." 윤조가 엘에게 살짝 기댔다. "게다가 이거 봐. 중국산이야"
윤조가 팩의 뒷면을 엘에게 내보였다.
다정 마트는 서울 마트에서 십 오분 정도 더 달려야 한다. 같은 위니펙에 있는 한구 마트인데도 유통 경로가 달라서 여기에 없는 게 거기엔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적잖은 기대를 하고 있다.
"있잖아. 난 그때 참 좋았어."
신호를 기다리며 엘이 말을 꺼냈다.?"
"응? 북엇국?"
"이박 삼일 거기서 보낸 것 말야. 맛집 다닌 것도 좋았지만, 그 시내 거리. 직장인들이 다들 그 시간에 몰려나와 점심 먹는 모습이 꼭 옛날 내 생각이 났거든."
북엇국집 오픈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일찍 가지 않으면 대기해야 한다는 리뷰에 서둘러 숙소가 있는 충무로에서 을지로 3가를 지나 청계천 광장으로 걸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 데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청계천 광장은 한산했다. 엘은 삼십여 년 전 직장 생활할 때 수도 없이 걸었던 곳이라며 추억에 잠겨 그때에 비해 잘 정비된 거리와 건물들로 시선을 옮기기에 바빴었다.
"근데 마음은 그때랑 같아."
신호가 떨어지자 천천히 출발하며 엘이 읊조리듯 했다.
"그래. 나도 왠지 가슴이 뛰더라. 다들 그 시간에 건물에서 우르르 나와 흩어지는 모습이. 왠지 이십대로 돌아간 느낌이었어. 아. 진짜 옛날일이다."
윤조도 덩달아 기억을 소환해 냈다. 비슷한 옷차림을 한 직장인들 무리가 커다란 빌딩에서 빠져나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식당 골목으로 사라지길 반복하는 모습이 무척 눈에 익었었다.
"그러게. 후훗. 나에게도 이십 대가 있었더랬지."
"그랬더랬지."
"하하."
윤조는 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80년대의 엘은 어땠을까. 육십이 다 된 나이에도 늘 갖춰 입고 정기적으로 미용실을 다니는 엘이다. 이십 대의 엘은 더 예쁘고 멋졌겠지. 펑키 머리를 하고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짧은 상의에 종아리까지 오는 펜슬형 치마를 입은 엘. 오 센티 구두를 신고 날렵한 걸음으로 직원들과 수다를 떨며 미리 정해놓은 식당으로 종종걸음 하는 회사원 엘의 모습이 현재의 엘에게 중첩되었다.
"조! 기억나지? 우리 그때 북엇국 두 번이나 먹었잖아. 대신 뭘 못 먹었더라."
"굴국밥!"
그랬었다. 한 번만 먹고 만다면 분명 한이 맺힐 것 같아 그들은 그다음 날도 걸어서 그 북엇국집을 찾았다. 덕분에 굴국밥을 놓쳤지만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라 굴국밥은 맛을 못 봤으니 미련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