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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D May 04. 2016

전설이 탄생하고 역사가 쓰여지는 곳, 양키 스타디움

Yankee Stadium, New York, NY

뉴욕 양키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팀이다. 미국 제 1의 스포츠는 미식축구일 수 있겠지만 미국 제 1의 스포츠 팀은 뉴욕 양키스다. 2014년 포브스 지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스포츠 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양키스의 구단 가치는 25억달러로 2013년에 이어 미식축구 팀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스포츠 팀으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이 금액은 세계 4위에 해당하며 양키스 위에는 유럽의 명문 축구단인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자리하고 있다. 스물일곱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양키스는 미국의 다른 프로스포츠 어느 팀보다도 많은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비단 양적으로 많은 우승을 거둔 것뿐만이 아니다. 보스턴 셀틱스와 LA 레이커스가 각각 17회, 16회 우승으로 미국 프로농구 리그를 쌍끌이 해온 것과 달리, 메이저리그에서 두번째로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이 11회 우승에 불과한 세인트루이스라는 점은 양키스가 얼마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는지 말해준다. 참고로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들은 몬트리올(24회)과 토론토(13회)로 모두 캐나다 팀들이다.


복잡하게 숫자를 들이밀지 않아도 양키스가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을 연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 대표 스포츠 팀이 되기 위한 자격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뉴욕을 떠올리는 이미지로 N, Y 영문 이니셜의 양키스 로고를 연상하고, 복잡한 야구 규칙은 몰라도 양키스 로고가 새겨진 모자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뉴욕 양키스는 뉴욕의 상징이자 미국 문화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적 흥행과 압도적 성적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스포츠의 상징,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에는 나도 모르게 성지로 향하는 듯한 경건함이 더해졌다.



압도적 위용의 양키 스타디움


뉴욕은 내가 2년 동안 지낸 필라델피아에서 버스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가까운 도시였기 때문에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양키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시즌 중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지만 시즌 종료 후 구장 투어만을 위해 따로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대부분의 구장은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구장 투어를 진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키 스타디움은 야구장이기에 앞서 뉴욕의 대표적 관광명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유료 구장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양키스의 역사와 전통이 워낙 깊어 볼거리도 많을뿐더러, 경기가 있는 날은 경기 보느라 구장 구석구석을 구경하기 힘들기 때문에 뉴욕에 왔다면 한 번 쯤은 구장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양키 스타디움은 뉴욕 맨하탄 섬 북쪽에 있는 브롱스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철 B, D, 4호선이 야구장과 도심을 잇고 있으며 맨하탄 코리아타운에서 출발한다면 지하철로 30분 정도면 야구장에 도착한다. 4호선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인 161번가 양키 스타디움 역에 도착할 때쯤 열차가 지상으로 빠져나오자 경기장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에 도착하여 열차에서 내리니 철길 건너 편으로 양키 스타디움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대리석 빛깔 건물 정면에 건물만한 높이의 게이트가 서 있고 그 윗부분에 ‘YANKEE STADIUM’이라는 이름이 금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금색으로 음각된 양키 스타디움의 이름을 보니 보통 야구장에 온 것이 아니라 수십년 간 우승 ‘왕조’를 일군 양키스 ‘제국’의 심장부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경기가 있는 날 양키 스타디움 앞 베이브 루스 플라자 앞에 운집한 팬들


고가 위에 위치한 역에서 내려오면 리버 애비뉴를 따라 오래된 스포츠 바와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시즌 중이 아니라 대부분의 가게들이 휴무였지만 셔터를 내린 모습만 봐도 이 가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곳에서 장사를 해왔는지 느껴졌다. 많은 가게 중 가장 이름난 곳은 ‘스탠스(Stan’s Sports Bar)’라는 이름의 스포츠 바이다. 1970년대에 문을 연 이 곳은 40년 가까이 양키스 홈 경기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고 경기 전 음주가무를 즐겨온 곳으로 유명하다. 사실 양키 스타디움은 2007년에 이미 두어 번 와봤던 적이 있었다. 당시와 비교했을 때 6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주변의 오래된 가게들이 연출하는 낡은 듯 운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한 가운데 오히려 홀로 예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양키 스타디움뿐이었다.


지금 볼 수 있는 경기장은 2009년에 문을 연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이다. 1923년에 지어져 영광의 역사를 보낸 예전의 낡은 양키 스타디움은 2008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 수명을 다했다. 과거의 경기장은 허물어졌고 지금 그 자리에는 지역 중고생들이 야구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헤리티지 필드(Heritage Field)’라는 이름의 공영 야구 그라운드가 조성되어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뛰는 학생들은 과거 양키스 전설들이 뛰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설렘이 들 것이다. 새로운 야구장은 바로 길 건너편에 세워졌는데 공사에 총 15억 달러가 소요되어 가장 비싼 야구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양키 스타디움이 개장 첫 해인 1923년에 구단 역사상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 역시 첫 해인 2009년에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가져갔다는 점이다. 양키스가 앞으로 새로운 야구장에서 과거만큼 화려한 역사를 써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경기장 곳곳에 서려 있는 양키스 전설들의 숨결


시간에 맞춰 경기장에 들어가니 구장 투어를 함께 할 일행들이 이미 모여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시즌임에도 투어에 참가한 인원이 족히 서른 명은 넘는 듯 했다. 미네소타, 플로리다 등 미국 전역에서 온 국내 관광객 뿐만 아니라 일본, 동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야구의 성지를 찾아온 팬들도 있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니 천장이 높은 대형 홀이 펼쳐졌다. ‘더 그레이트 홀(The Great Hall)’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는 베이브 루스, 조 디마지오 등 전설적인 양키스 선수들의 초대형 배너가 내걸려 있었다. 한 쪽 끝에서 보면 양키스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흑백사진 배너가 차례로 보이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었다.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많은 관중들이 이 곳을 통해 좌석으로 가기 때문에 이 거대한 홀이 북새통을 이룬다.

전설들의 배너가 내걸려 있는 더 그레이트 홀


가이드가 처음으로 인솔한 곳은 ‘모뉴먼트 파크(Monument Park)’였다. 모뉴먼트 파크는 양키 스타디움 가운데 담장 너머에 있는 자그마한 기념공원으로 뉴욕 양키스의 영웅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공원 뒤쪽 벽면에는 100년이 넘는 구단의 역사를 대표하는 30여명의 선수, 감독, 구단 관계자들의 동판이 붙어 있고 그 앞으로는 양키스의 영구 결번 등번호가 나란히 소개되어 있었다. 양키스는 2014년 시즌이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19개의 영구 결번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번호가 많다 보니 하나의 결번에 두 명의 선수가 등록된 경우도 있다. 똑같이 등번호 8번을 달고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안방을 지켜 온 포수 빌 디키와 요기 베라의 경우가 그러하고,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전 구단 영구 결번 선수가 된 재키 로빈슨과 유일하게 그의 등번호인 42번을 달고 현역 선수로 활약했던 마리아노 리베라의 경우가 그러하다.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데릭 지터의 2번이 모뉴먼트 파크에 조만간 들어설 것이기에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영구 결번되어 앞으로 양키스 선수들은 그 어떤 한 자리 수 번호도 등번호로 사용할 수 없다. 기념공원 한 가운데에는 수많은 양키스 영웅들 중 엄선된 다섯 명의 레전드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었다. 구장 투어를 20년 넘도록 진행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양키스의 역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네 명의 선수가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이라고 한다. 그 네 명이 바로 기념비의 주인공이었고 마지막 한 명은 양키스 구단의 첫 우승을 이끈 밀러 허긴스 감독이었다. 이 중 베이브 루스의 기념비는 남다른 일화로 유명하다. 과거 양키스 투수였던 로저 클레멘스가 경기에 등판하기에 앞서 항상 기념비에 있는 루스 얼굴의 눈썹을 만지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었지만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할 수 없었다. 모뉴먼트 파크는 시즌 중에도 홈 경기가 있는 날 관중들에게 개방한다. 다만 경기 시작 45분 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하니 일찌감치 도착해 서둘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뉴먼트 파크에서 루스 기념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투어 가이드


모뉴먼트 파크 다음으로는 2층에 있는 양키스 박물관으로 향했다. 모뉴먼트 파크가 구단의 위대한 선수들을 기리는 곳이라면 양키스 박물관은 그 위대한 선수들이 일군 역사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스물일곱 번 우승하는 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가 한 쪽에 진열되어 있었고, 한 쪽에는 루스와 게릭이 함께 활약했던 시절의 사진과 신문기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박물관 한 쪽 끝에서 공을 힘차게 뿌리는 투수와 그 공을 다른 한 쪽 끝에서 받는 포수의 동상이었다. 이 동상은 1956년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당시 양키스 선발투수 돈 라슨이 포수 요기 베라에게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본따 만든 것으로 이 두 선수는 월드시리즈 역사상 전무후무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특히 두 선수 사이에 있는 포물선은 퍼펙트게임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공의 궤적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돈 라슨의 동상 뒤편으로 등번호 15번 유니폼이 걸린 낡은 라커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양키스의 15번은 영구 결번된 번호로 1970년대 포수로 활약한 서먼 먼슨의 등번호이다. 남다른 카리스마의 소유자이지 당시 양키스의 캡틴이기도 하였던 그는 안타깝게도 1979년 시즌 도중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양키스 구단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클럽하우스 내에 그가 사용하던 라커를 그 모습 그대로 20년 가까이 비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이 지어지면서 먼슨의 라커를 양키스 박물관 안으로 옮겨 안치해 두었다.

양키스 박물관 내의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 동상



전통과 현대의 가장 완벽한 조화


박물관을 나와서도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뉴욕 양키스 역사에 대한 현장 학습은 계속되었다. 중간에 먹거리를 파는 컨세션 코너를 따라 복도를 걷는데, 음식 주문 코너 하나하나마다 그 위에 연도별 양키스의 하이라이트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 맨 꼭대기에는 하얀색 다리처럼 생긴 프리즈 장식이 지붕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장식은 과거 양키 스타디움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새로운 구장을 지으면서 그대로 그 모양을 따왔다고 한다. 다만 과거 경기장에는 외야 관중석 뒤로만 이 장식이 있었는데 새로운 경기장에는 외야를 제외한 구장 전체의 지붕 위에 장식물이 설치되었다. 시즌 중에는 이 다리 모양의 장식물 위로 메이저리그 전 구단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휘날리는데 깃발이 꽂혀 있는 순서가 경기 당일의 지구 별 순위를 나타낸다. 물론 이 전통 역시 과거의 양키 스타디움 시절부터 이어온 것이다.

외야에서 바라본 그라운드. 지붕 위의 프리즈 장식이 눈에 띈다.


겉보기에 새로운 양키 스타디움의 모습은 과거 양키 스타디움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투어를 간 날에는 12월에 있을 대학 미식축구 대회 ‘핀스트라이프 볼(Pinstripe Bowl)’ 준비가 한창이어서 야구 그라운드에 있어야 할 다이아몬드는 온데간데없고 미식축구 골대가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2015년부터는 새롭게 창단한 프로축구 팀 뉴욕시티 FC가 정규 시즌 홈 경기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치러지고 있다. 과거 양키스가 지키려고 했던 전통과 권위를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기장 내부 편의시설 역시 전통적 스타일을 뒤로 하고, 고급 스테이크 레스토랑, 하드락 카페, 양식부터 일식, 중식까지 안 파는 게 없는 컨세션으로 무장하여 최신식 야구장에 걸맞는 모습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21세기에 지어진 야구장이 100년 전통의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으로서 고유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던 것은 야구장 곳곳에서 전통과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이 묻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기념공원과 박물관에서부터 작은 장식물 하나에 이르기 까지 새로운 구장에 명문 구단의 명맥을 녹여내기 위한 양키스 구단의 철두철미한 노력이 감탄스러웠다. 과거 양키 스타디움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는 팬들도 많지만, 두 경기장 모두를 가 본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의 양키 스타디움 이상으러 전통과 현대를 완벽하게 조화해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훌륭한 환경의 양키 스타디움 안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위대한 영웅들이 수놓은 양키스의 찬란한 역사에 압도되다 보니, 투어가 끝나고 나서는 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라도 다녀온 기분이었다.



떠나보내기 아쉬운 캡틴과의 작별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양키 스타디움은 내가 살던 곳과 거리가 가깝다 보니 그 어떤 야구장보다 자주 경기를 보러 갔다. 여러 경기가 기억에 남지만 그 중 단연 최고의 경기는 2014년 9월에 관전한 데릭 지터의 마지막 홈 경기다. 뉴욕 양키스의 홈 경기는 많은 인기 탓에, 그리고 새롭게 지어진 구장 탓에 티켓 가격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가뜩이나 티켓 값이 비싼데 지터의 양키 스타디움 고별 경기는 진작에 표가 매진되어 2차 판매 시장에서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나도 나름 일찍 산다고 7월 즈음에 구매했지만 3루쪽 내야 4층 꼭대기 좌석을 200달러를 넘게 주고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지터의 마지막 홈 경기는 내가 직접 본 수많은 야구 경기 중 가장 돈 아깝지 않은 경기였다.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는 미국 야구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였다. 박찬호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90년대부터 메이저리그를 접한 내 또래의 팬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유명한 만큼 지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뉴욕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검색하면서 알게된 그의 기록들에 새삼 여러 번 놀랐다.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그가 단 한 번도 리그 MVP에 오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유명세만큼 실력도 출중한 선수였으니 MVP 트로피 한두 개쯤은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2006년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이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안타가 지터의 장기라고 하지만 타율 1위에 오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터는 단일시즌 반짝 활약하고 지고 만 선수가 아니라 놀랄 만큼 위대한 통산 성적을 거둔 선수였다. 그가 때려낸 3,465안타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6위에 해당하며 유격수로는 가장 많은 기록이다.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하고, 가장 많은 안타, 2루타, 도루를 기록한 선수 역시 지터였다. 그와 20년간 키스톤 콤비를 이룬 2루수만 무려 53명에 달한다. 또한 지터는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2루타, 득점 기록을 수립하며 팀에 다섯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 주었다. 많은 기록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유일하게 10년 넘게 양키스의 주장을 맡아 온 선수였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영웅들이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지만 양키스 팬들에게 진정한 ‘캡틴’은 등번호 2번 데릭 지터였다.


지터는 이미 그 해 초 시즌 종료 후 은퇴 선언을 했던지라 시즌 중 원정 경기를 돌면서 다른 도시의 팬들과는 작별 인사를 마쳤고 양키스 홈 관중과의 작별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더욱이 양키스가 전날 경기에서 패배하여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됨에 따라 모든 관심이 온전히 지터와의 작별에만 쏠리게 되었다. 오후 내내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경기장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모두 그쳐 지터의 양키 스타디움 고별 무대는 완전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양키 스타디움을 마주하니 경기장 앞은 지터의 유니폼, 티셔츠, 모자를 착용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보통 때도 2번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가장 많지만, 이 날 따라 1년 동안 절찬리 판매된 지터의 은퇴 기념 티셔츠를 입고 온 팬들이 유독 많았다. 6번 게이트 앞 광장인 ‘베이브 루스 플라자(Babe Ruth Plaza)’에서는 여러 지역 방송국 취재진들이 캡틴과의 이별을 맞이하는 팬들의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구장 안내원들이 모든 팬들에게 지터의 인사 메시지가 적힌 팜플릿을 나누어 주었다. 더 그레이트 홀에는 지터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한 쪽 끝에서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친 그를 축하하는 후배 선수들의 메시지 영상이 상영 중이었다. 경기장 곳곳에서는 지터의 은퇴 기념 상품이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었다. 특히 기념 티셔츠, 모자, 야구공, 뱃지 등은 한 데 묶여 박스에 담아 세트로 75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는데 없어서 못 살 지경이었다. 나도 분위기에 취해서 혹했지만 제일 저렴한 뱃지 하나만 샀다.

지터의 마지막 홈경기에 앞서 팬들을 인터뷰하는 지역 방송국 취재진


양키 스타디움 1층 복도 한 쪽에는 다양한 음식 판매대 사이에 양키스 전문 수집품만 파는 ‘양키스 스타이너 수집품 샵’이 있다. 이 곳은 양키스 팬이라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소장가치가 높은 물건들을 팔고 있다. 레지 잭슨이 직접 경기에서 사용했던 싸인 배트, 마리아노 리베라가 직접 투구한 공과 그의 유니폼, 호르헤 포사다가 착용했던 헬멧까지 없는 게 없다. 지터의 마지막 홈 경기였던 이 날은 특별히 지터가 직접 싸인한 야구용품이나 그의 활약상이 담긴 사진에 대한 자선 경매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자기가 소장하고 싶은 물건 아래에 연락처와 입찰가를 적어 내면 그보다 더 높은 가격에 구입하고 싶은 팬들이 그 밑에 본인의 연락처와 입찰가를 적고, 5회 종료 전까지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한 팬에게 판매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가격들이 어마어마했다. 지터가 손수 싸인한 어떤 사진은 550달러에서 경매가 시작되어 경기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2,250달러의 입찰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과거의 양키 스타디움에는 클럽하우스에서 그라운드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 천장에 작은 패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 패널에는 양키스 전설 중 한 명인 조 디마지오의 유명한 연설 중 한 구절인 “I want to thank Good Lord for making me a Yankee (나를 양키스 선수로 만들어 준 신께 감사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지터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손으로 이 패널을 툭 치고 가는 자기만의 루틴이 있었는데, 이 전설과 전설이 만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액자가 바로 그 2,250달러의 상품이었다. 이 경기를 제 돈 주고 보러 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충성도가 보통이 아닌 팬들이겠지만, 그들의 대단한 양키스 사랑과 그만큼 높은 지불 의향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지터의 기념품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팬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내 자리를 찾아 4층석까지 올라갔다. 보통의 메이저리그 경기에는 경기 시작 전은 물론이고 4~5회가 지나도록 자리에 앉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다들 집중해서 경기를 보기 보다는 여기저기서 핫도그 먹느라, 맥주 마시느라,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 날 경기만큼은 48,000명이 넘는 관중들이 역사적인 경기의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일찌감치부터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길래 놀랐다. 국가 연주가 끝나자 양키스 팬들이 지터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영상이 전광판을 통해 상영되었다. 영상은 팬들이 직접 꼽은 지터 커리어 최고의 명장면들로 시작되었다. 2001년 오클랜드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기가 막힌 홈 송구를 선보인 ‘더 플립(The Flip)’, 홈런으로 장식한 통산 3,000번째 안타, 그리고 2000년 애리조나와의 월드시리즈에서 ‘11월의 사나이(Mr. November)’로 등극하면서 김병현 선수를 상대로 날린 끝내기 홈런 등이 명장면에 포함되어 있었다. 관중 모두가 숨죽여 전광판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지터와 함께한 20년간의 추억에 잠기는 듯했다. 영상도 감동적이었지만 캡틴과 작별해야 하는 관중들의 아쉬움 가득한 시선 때문에 옆에 있던 나도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팬들 한 명 한 명이 캡틴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영상이 막바지에 이르자, 양키 스타디움은 5만여명의 관중들이 보내는 기립 박수와 함성 소리로 가득찼다.    

캡틴의 마지막 모습을 정성스레 담고 있는 양키스 팬들



그 밖에 양키 스타디움의 소소한 재밋거리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석 한 쪽에서 또다른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롤 콜(Roll Call)’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출석 체크 점호 소리가 그것이었다. 양키스 우측 외야 203번 섹션에는 ‘블리처 크리쳐스(Bleacher Creatures)’라고 불리는 팬 무리가 있다. 과거 양키 스타디움 때부터 우측 외야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거친 응원을 펼쳐온 그들에게는 일종의 전통이 있다. 양키스가 수비를 하는 1회초가 시작되면 비니 밀라노라는 한 팬의 구호를 시작으로 양키스 중견수의 이름을 연호한다. 선수가 이름을 듣고 관중석에 답례로 인사를 해줄 때까지, 적어도 글러브를 들어 소리를 들었다는 제스쳐를 보일 때까지 계속 그 선수의 이름을 외친다. 말 그대로 점호를 하는 것이다. 이 점호는 중견수, 우익수, 좌익수를 지나 내야의 1루수, 2루수, 유격수, 3루수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양키 스타디움의 명물이 된 이 롤 콜 전통은 지터의 마지막 홈 경기인 이 날도 계속되었다. 물론 유격수의 순서가 됐을 때는 외야 관중석뿐만 아니라 경기장 전체가 지터의 이름을 연호했다.


사실 이 날은 워낙 지터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는 분위기라 다른 것에 신경 쓸 새가 없었지만, 롤 콜을 비롯해서 양키 스타디움에는 그만의 특색 있는 볼거리들이 꽤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6회 클리닝 타임의 YMCA 댄스일 것이다. 6회말 양키스 공격이 끝나면 구장관리 직원들이 내야 그라운드 정리를 위해 흙을 고르는 끌개를 가지고 나오는데 이 때 배경음악으로 귀에 익숙한 YMCA 노래가 흘러 나온다. 노래가 후렴구에 다다르면 직원들이 일을 멈추고 일제히 “Y-M-C-A”라는 가사에 맞춰 율동을 한다. 관중들도 여기에 맞춰 다같이 춤을 춘다. 그라운드 관리 직원들이 할아버지들인 경우도 있는데 어르신들이 율동을 하고 있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그 외에도 이닝 사이사이에 전광판에서 재미있는 영상이 나오는데, 다른 구장에는 소시지 레이스가 있다면 양키 스타디움에는 지하철 레이스가 있다. 경기장을 지나는 B, D, 4호선 중 어느 열차가 가장 빨리 도착하는지 맞추는 게임이다. 막상 별 것 아니지만 이걸 맞추겠다고 애를 쓰는 관중들이 많다. 그 외에도 온라인에서는 없지만 양키 스타디움에서만 파는 모자를 살 수 있는 샵도 있고, 야구 경기뿐 아니라 동시에 다른 스포츠 중계방송도 시청할 수 있는 고급 실내 스포츠 바도 둘러 볼만한 곳이다.


또 하나 양키 스타디움이 다른 메이저리그 구장과 달랐던 점은 일본 팬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양키스에는 좋은 활약을 펼친 일본인 선수들이 많았다. 과거 마쓰이 히데키가 양키스 소속으로 맹활약했었고, 2014년 시즌에는 스즈키 이치로와 구로다 히데키도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특히 이치로를 보려고 많은 일본인 관중들이 우익수 주변 자리에 몰려 앉아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현재 양키스 구단이 일본인 대상 마케팅의 최전면에 내세우는 선수는 거액을 주고 영입한 다나카 마사히로인 듯 했다. 이 날은 물론 지터의 날인지라 모든 구장 내 용품점이 지터 은퇴 기념상품으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다른 날에는 가장 잘 보이는 지터 유니폼 자리 바로 옆에 다나카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심지어 다나카 티셔츠는 등번호 위의 이름이 ‘田中’라고 쓰여진 일본어 버전으로도 판매되고 있었다. 실제로 다나카의 선발 경기에는 맨하탄 지하철 역에서 다나카의 유니폼을 맞춰 입고 양키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일본인 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만난 다나카 팬 일본인 가족(의 뒷모습 도촬)


다시 지터의 마지막 양키 스타디움 홈 경기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 경기는 지터의 활약에 힘입어 9회초까지 양키스가 5대2로 앞선채로 진행되었다. 지터의 9회초 마지막 수비 장면을 보면서 관중들도 이별을 준비하는지 어느새 “데-릭, 지-터!”라고 외치던 소리를 “땡-큐, 데-릭!”으로 바꿔 연호하고 있었고, 지터도 수시로 모자를 벗어 관중들에게 답례했다. 이렇게 모두가 해피엔딩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상대 팀 볼티모어는 경기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는지 9회초에 홈런 두 방을 몰아치며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5만여 관중 모두가 한순간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이 더 극적인 엔딩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9회말 양키스가 반격의 기회를 살려 1사 2루 찬스를 잡은 가운데 운명처럼 지터가 타석에 들어섰고, 커리어 내내 잘해왔던 초구 공략과 특유의 밀어치기 타법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끝내기 안타를 뽑아낸 것이었다. 5만여 관중이 조금 전의 허탈감을 잊고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말그대로 각본없는 드라마였다. 양키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대표곡 ‘뉴욕, 뉴욕’은 이 날의 드라마에 어울리는 최고의 배경음악이었다. 드라마틱한 커리어를 일궈온 지터에게 가장 어울리는 드라마틱한 엔딩이었고, 팬들이 꼽는 지터의 최고 명장면 클립에 마지막 장면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양키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지금껏 내가 묘사한 분위기와는 많이 다를 수 있다. 양키스는 2013년부터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동안 사실 상 두 시즌을 온전히 마리아노 리베라와 데릭 지터라는 두 명의 영웅들과 이별하는 데에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남아있는 선수들 중에는 이 정도 급의 양키스 레전드가 될만한 선수는 찾을 수 없다. 영웅이 떠난 양키스가 어떤 모습의 팀이 될지 궁금하고, 또 양키 스타디움은 어떤 모습으로 팬들을 만족 시킬지 궁금하다. 루스와 게릭의 시대는 갔다. 조 디마지오의 시대도 갔고 미키 맨틀과 요기 베라의 시대도 갔다. 그리고 이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가 모두 은퇴하면서 이 네 명의 핵심 선수(Core Four)가 이끈 양키스 왕조 시대 또한 완전히 저물었다. 앞으로 양키 스타디움에서 어떤 새로운 전설들이 탄생하고 얼마나 영광스러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지 지켜보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맛보는 보너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리치몬드카운티뱅크 볼파크

뉴욕의 야구 구장에 대한 소개를 마치기 전에 양키 스타디움 외의 다른 야구 관련 볼거리를 조금 더 소개하고자 한다. 여름에 뉴욕을 찾은 야구 팬이라면 맨하탄 아래에 있는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리치몬드카운티뱅크 볼파크(Richmond County Bank Ballpark)’에 가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 야구장은 뉴욕 양키스의 마이너리그 팀 중 하나인 스테이튼 아일랜드 양키스의 홈구장으로서, 양키스 유망주들이 뛰는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다. 꼭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경기 후 불꽃놀이가 있는 날에 방문하면 바다 건너 맨하탄의 스카이라인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치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 또한 무료 여객선을 타고 맨하탄에서 스테이튼 아일랜드로 넘어가면서 뉴욕의 대표 관광명소인 자유의 여신상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맨하탄 다운타운에 위치한 ‘MLB 팬 케이브(Fan Cave)’ 현장에서는 메이저리그가 젊은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온오프라인 미디어를 통해 어떤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맨하탄 곳곳에 위치한 뉴욕 양키스 클럽하우스 공식 스토어에서 기념품 쇼핑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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