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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안드레아 Aug 11. 2020

독립운동과 밀정,
그 종이 한 장의 앞면과 뒷면

영화 '밀정'을 고찰하다 - 독립? 너 같은 놈들이 있으니 되기야 되겠지

일제강점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밀정’을 최근에 다시 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밀정보다 1년 먼저 개봉한 ‘암살’이라는 영화의 임팩트가 너무 강했는지 

크게 뇌리에 남았던 작품은 아니었는데, 

다시 보니 ‘암살’과는 다른, ‘암살’에는 없는, 묵직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이정출’은 이 영화에서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변절하여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넣는 일본 경찰이 된 친일 인물로서 출발한다.

임시정부 시절에 정을 나눴던 의열단원 ‘김장옥’을 잡기 위해, 또 의열단장 ‘정채산’을 쫓기 위해,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정출은 의열단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김우진’을 만나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정할 수 없는 친일의 상징과도 같은 일본 경찰에서 점차 의열단원으로 거듭나는 정출을 

영화는 친일파나 독립운동가와 같이 양 극단의 한 부류로 분류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정출의 후배인 조선인 일본 경찰 ‘하시모토’는 별다른 사연 없는 ‘악’으로 그려지는 반면, 

정출에 대한 시각은 그렇지 않다. 

그저 정출을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롭기도 변절하기도 하는 

나약한 한 인간으로 그릴뿐이다.


그러한 정출이 그저 정의롭기만 한 우진을, ‘계순’을, 그리고 의열단장 ‘정채산’을 만나면서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정립을 새롭게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쪽을 마침내 선택한다.

나라와 동지를 팔아 얻는 추악한 개인적 이익이 아닌 무엇도 보장하지 않는 ‘항일’라는 쪽을 말이다.


영화는 친일과 독립운동을 종이 한 장의 앞면과 뒷면으로 그리고 있다. 

극 초반의 정출처럼, 독립에 회의감을 느끼고 밀정이 되는 ‘조회령’과 같은 의열단원들처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비열한 친일 밀정으로 

가장 쉽게 변하기 쉬움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쉽게 자신의 사상을 내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정의롭지 않았다거나, 단순히 개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서거나, 

아니면, 정말로 이 나라에 독립이 도저히 올 것 같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지는 않았다. 이미 한 번 변절하고도, 도저히 독립이 올 것 같지 않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출은 자신의 신념을 새롭게 확고히 하고 연회장에 폭탄을 던진다. 


<암살>에서 “왜 동지를 팔았나”라는 질문에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염석진’은 외친 반면,

<항거>에서 “도대체 이 일을 왜 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내가 아니면 누가 합니까”라고 ‘유관순’은 반문한다.


도무지 독립이 올 것 같지 않아서 변절한 수많은 이들이 있는 반면에도, 

‘정채산’ 캐릭터의 실제 인물인 ‘김원봉’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은 끝까지 ‘암살’하고 ‘항거’했다.


<암살>보다는 무겁게, <항거>보다는 가볍게, 

밀정은 그 가운데의 톤을 유지하며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의 캐릭터들이 즐비하지만 그 주인공인 정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 ‘밀정’은 한 인간의 감정선을 따라 흘러가는 스토리의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독립운동과 친일 그 종이 한 장 뒤집기와도 같은 ‘밀정’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정출은 폭탄을 투척하고 나서, 김장옥을 팔아넘긴 이를 독립운동 군자금을 받기 위해 다시 찾는다.

“이 나라가 독립이 될 것 같습니까”라는 정출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같은 놈들이 있으니 되기야 되겠지”


그리고 실제로 그의 말처럼 그들이 있기에 이 나라는 독립했다.

정출은, 우진은, 의열단은 될 것 같지 않아도 했다.

‘밀정’이라는 것이 종이 한 장 뒤집기보다 쉬웠던 시대에 종이 반대편 면을 끝내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이들의 신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 ‘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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