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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안드레아 Jul 28. 2023

생계형 직장인, 전문직을 꿈꾸다
-노무사 도전기 1  

반복되는 괴로움의 근원을 찾아서

2020년 7월, <나인투식스 그 밖의 삶을 꿈꾼다>라는 글을 처음 브런치에 업로드하고 나서 3년 간, 무려 3번의 이직을 하며 이직-적응, 이직-적응을 반복했던 나는,

오늘도 ‘여전히’ 사무실과 나인투식스 그 안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직급, 연봉, 소속이 3번이나 바뀐 것,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 외 나를 수식하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타이틀은 바로 ‘수험생’이다.



36세 9년 차 생계형 직장인, 굳이, 이제 와서, 느닷없이, 감히, 전문직을 꿈꾼다.



난 첫 글을 업로드하고 나서 약 반년 후인 2021년 초, 결국 ‘퇴사’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6년 간 몸담았던,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첫 직장을 퇴사하게 된 사유는 번아웃, 우울증, 공황장애, 다양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나 버티며 유지했던 직장 생활을 급하게 청산하게 만든 그 ‘퇴직 사유’라는 것이 나인투식스 바깥의 삶에 대한 ‘동경’은 아니었을까 싶다. 

우울이든 괴로움이든 모두 그 <회사원이 아닌 삶>에 대한 동경에서 파생되었던 감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향후 생계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로, 내 일상의 모든 것이었던 첫 직장을 ‘말 그대로’ 박차고 나왔다. 그 시점, 향후 계획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어렴풋하게 ‘공부’, ‘휴식’과 같이 특이하고 달콤한 것들을 갖다 붙여 댔지만 결국 나의 다음 스텝이 99% ‘이직’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솔직히 알고 있었다. 

퇴사 후 한 두어 달, 도서관에서 무언가를 ‘공부’’하며, 혹시라도 내 미래가 단순히 ‘이직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을 거야’라고 희망회로를 돌렸던 것뿐이었지, 내 다음 행선지가 회사 간판만 바뀐 똑같은 ‘사무실’이 될 것이라는 걸 나는 솔직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퇴사는 본인이 선택했으면서 직장이라는 소속감이 사라지자 나는 무엇이 그렇게도 찌질하게도 불안했는지, 토익 책을 넘기다 말고 어느새 채용사이트로 향했고, 그렇게 2달 반, 나는 간판만 바뀐 ‘회사’라는 곳의 또 다른 사무실로, 나인투식스의 삶으로 금방 복귀했다. 

야심 차게 첫 이직했던 두 번째 회사는 직무나 상사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입사 후 반년이 된 시점에 좋아하던 업계의 회사에서 타이밍 좋게 제안이 왔고, 그렇게 나는 반년 만에 두 번째 퇴사를 하게 된다. 

세 번째 직장을 향하며 적응, 적응 또 적응, 그렇게 또다시 나는 나인투식스의 삶에 젖어 갔고, 당장 눈앞의 업무들을 쳐내느라, 상사에게 능력을 증명하랴,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나 또한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직을 반복하며 연봉과 직급은 올라갔고 커리어는 쌓여갔다.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였다. 그렇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니 첫 직장을 야심 차게 나오기 전 무척이나 괴로워하던 내가 그 자리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시간은 흘렀고, 직장, 직급, 연봉, 커리어 모든 것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나인투식스 밖을 동경하던, 매일매일 직장에서의 삶이 전투처럼 느껴지던, 그래서 괴롭고 아팠던 과거의 내가 회사의 명함만 바뀐 채로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부단히 노력하고 발버둥 쳤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그래도 첫 퇴사는 가보지 못한 다른 직장에서의 또 다른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의 나인투식스는 <다를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세 번째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만 같았기에 첫 번째와는 달랐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보다 더 깊고 짙게 좌절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걸까, 이 괴로움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주위의 대부분 사람들이 나인투식스의 삶을 살아가는데, 내 멘탈의 문제는 아닐까.


“문제는 <내>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내 안에서 문제를 찾으며 자책했다. 이렇게는 도저히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았다. 발버둥 치던 내 지난 몇 년을 뒤로하고, 나는 그 답을 찾아야 했다.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에 ‘난 그렇게 못 사나 봐’라는 답변만이 자꾸만 돌아왔으니까, 

난 이 우울과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했으니까, 

나는 내가 왜 이토록 아프고 아프고 아픈지 그 답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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