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내 삶에 대한 통제'의 연결 고리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아니 그보다 나는 결국 행복해질 수 있기는 한 걸까? 반복되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는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우울에 빠져 허덕이며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풀어야 했다. 상사/동료들과의 관계, 높은 업무 강도, 중구난방 체계, 수직적 분위기, 성취감 부족 등등 대부분의 직장인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 중에서도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나는 파악해야 했다.
그렇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의 굴레 속에서 명확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 ‘정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정답에 근접해 보였던 나의 문제는 나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직장인들은 대부분 상사든, 갑이든, 조직 시스템이든 그 무언가로부터 지배적으로 통제를 받으며 산다. 그 일상 속에서 진정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몇 퍼센트나 될까. 하루 중 퇴근 후 몇 시간 남짓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이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전체 일상의 1/10도 안 된다고 봤다.
그리고 회사의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니기에 환경, 이해관계자의 의지, 시스템, 혹은 천재지변과 같은 예상치 못한 것들로부터 좌지우지되고 엎어지고 늘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계획’대로 안 된다. 계획대로 ‘통제’가 안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을 100% 통제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이가 몇이나 되겠냐 마는, 난 단 그 절반인 50%라도 나로서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 10%는 너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대표님들, 카페 사장님들, 식당 사장님들, 벤처 기업 대표님 등등 머릿속에 떠오르던 ‘내 일’을 하는 사람들의 범주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많은 직장인들이 '내 일'을 꿈꾸지만, 결국 월급 ‘따박따박’이라는 안정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 직장에 머무는 듯하다. 그만큼 창업, 사업, 자영업, ‘내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이 그 ‘자신들의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할 수 있는가, 사업적 수완과 능력이 있는가를 면밀하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나에게 사업적 수완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위 돈냄새 잘 맡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투자든 창업 아이디어든, 돈을 불러오는 일을 잘하는 능력도 타고난 게 없었다.
투자 감각도 없었고 번뜩이는 창업 아이디어가 있는 성향도 아니었다.
그러면 난 ‘내 일’을 결국 할 수 없는 사람일까?
그런데 고민을 하다 보니 불현듯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사업’이 아닌 ‘개업’의 영역으로서 ‘내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개업'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나 자신이 사업 수완이 없더라도 자영업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해도, 회사 내 남들이 가지지 못한 전문성으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조금이라도 넓어지지 않을까?
나는 타고난 머리가 좋지는 않은 편이었지만, 그러한 타고난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닌 남들이 한번 읽을 때 엉덩이를 붙이고 두 번 세 번 더 회독할 수 있는, 소위 “엉덩이로 공부하는” <노력>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노력>하여 공부하고 시험에 합격 후 전문직 자격증을 얻는 것이 무턱대고 사업체를 열고 이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싸움이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반대로 카페 사장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 자신이 잘 알지 않는가. 무엇에 더 내 성향이 맞고,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말이다. 여러 가지 옵션 중에 더 잘할 수 있는 것.
늦은 감은 있었지만 '공부'였다.
아직 자녀는 없었지만, 36세 9년 차에 접어드는 기혼 남성 직장인, 게다가 매달 대출 원금 이자를 갚느라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하는 생계형 회사원으로서 전문직을 꿈꾸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너무 비현실적인 이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아니 그보다 나 정말 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또다시 도전한다는 것이 무섭기도 두렵기도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 ‘직장인이 아닌 다른 삶’의 가능성이 0.01%라도 있는 그 출구가 보이자,
나는 솔직히 설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