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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안드레아 Jul 27. 2020

그 시작은 어쩌면 루저, 도망자,
그 중간 즈음

푸른 봄, 긴 여정의 시작

유난히도 푸르던 하늘이 기억나는 5월의 한낮이었다. 

코엑스 올림푸스 매장에 들러 디지털카메라 하나를 장만하곤, 

인적 드문 평일 낮의 삼성동을 화면에 몇 번, 시험 삼아 담아냈다.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2006년에 ‘디카’는 우리에게 필수품이었다. 

곧 미국으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나에게도 

그곳의 여러 모습을 담을 ‘디카’는 필수 구매 리스트에 있었다.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찍히던 그 날의 디카 속 풍경 사진들이 지금 내 컴퓨터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 셔터를 누르던 감촉이, 화면 안에 담겨 있던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날이 성인으로서 첫발을 내딛기 전, ‘준비’라는 것을 처음 시작한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비어 보이던 코엑스 앞 도로를 바라보며, 직장인, 학생들 모두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 즈음, 

나는 멈춰 있었고 나아가지 못한 상태였다. 


원하던 대학 입시에 실패한 루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버리려는 도망자 그 중간 즈음에 내가 있었다.



“넌 그때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사람 같았어”



내가 유학을 처음 떠났을 때를 회상하며 얼마 전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나의 유학에 반대했지만 크게 좌절해 보였던, 도망치려 보였던 나를 붙잡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의 내 생각이, 내 감정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의 시선을, 

그때의 아버지의 그 생각을 그냥 믿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아버지의 생각대로 도망치려 했었다고.

아버지 말대로 나는 정말 도망치려는 사람처럼 발 빠르게 유학을 추진했다. 

날 말리던 아버지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의 대학 리스트를 내밀었던 유학원을 거부한 채, 

나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로, 

아니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로, 

그저 떠나려 했다. 

그렇게 정해진 나의 목적지는 ‘뉴욕’이었고 처음 정해진 체류 기간은 고작 3개월이었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 나는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려고,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대학이라는 강박에 휘말려 미친 듯 책장을 넘겼던 독서실 열람실의 공기도, 

강박증과 우울증이라는 병명으로 처방받은 신경정신과 약봉지도, 

내달렸던 지난날의 노력과 고생이 수포로 돌아갔던 불합격 통지들도. 

불합격 통지를 부여잡고 서럽게 울었던 학교 화장실 3번째 칸까지도 나는, 모두 내던지려 했었는지 모른다.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장담하 듯 말했던 담임 선생님의 표정이 몇 번의 불합격 통지로 안쓰럽게 변할 때까지 그 모든 걸 나는 견뎌야 했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나에게 모두 괴로운 기억이었고 버려야 마땅한 것들이었다.


떠나면, 어쩌면 이곳을 벗어나면, 신비롭게 보이는 ‘뉴욕’이라는 곳에 도착하면 

‘이 모든 걸 잊을 수 있겠지’하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어쩌면 좌절하고 분노했던 19살의 어린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노력으로 얻어진 성취의 달콤함만큼이나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실패의 쓴 맛이 너무나도 가혹했던, 


고작 19살이었다.



눈에 띄던 거대한 이민 가방은 내가 그곳에 잠시 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수년간은 머물 것이라는 걸 암시했다. 

‘JFK’라는 글자가 적힌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출국장으로 발걸음을 돌리고는 

잘 갔다 오겠다며 손인사를 건네 보지만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이 그때는 없었다. 

처음이기에,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던 그때였기에, 

서로의 인사가 조금은 더 애틋했고 언제 볼지 모른다는 그리움의 감정이 벌써부터 느껴지던 첫 출국이었다.

기약 없이 돌아서던 어린 아들의 뒷모습이,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한 채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려던 

나의 그 작별 인사가 어쩌면 조금은 슬펐을, 

지금에 와서야 처음 생각해보는 부모님의 그때의 그 감정을 그때의 어린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미국이라는 땅에 혈혈단신 19살 어린 청춘이 발을 내디뎠다.

그때의 긴장과 설렘. 지금도 눈감고 상상해보는 그 14년 전의 장면들 속에서 

어쩌면 난 더 이상 루저도 도망자도 아니길,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절실히 바라던,

그저 20대의 첫 번째 챕터를 넘어가는 한 청춘, 푸른 봄이었다.


멈춰 있고 늦어 버린 그때의 나는 그제서야 나아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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