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4

이방인 되기

by 봄냉이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출국 D-3일.
크리스마스의 흥분이 가시면 우리는 이제 떠난다.
브라질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5개월쯤 전. 홍콩으로 나가게 될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벌어진 홍콩의 시위 때문에 홍콩주재원 전격 취소. 갑자기 결정된 브라질은 그 심리적 거리만큼이나 먼 나라였다. 그렇게 5개월간 준비해서 드디어
브라질 이주 준비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중 베스트를 꼽자면, 남들은 3개월이나 걸린다는 비자가 너무 빨리 승인이 나는 바람에 남편 없이 출국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 바람에 온갖 일정이 어그러져서 차는 탁송을 보내야 했고, 터키항공으로 가려고 했던 일정은 아메리칸 에어라인으로 바뀌어서 esta발급이 추가되었고, 나는 8살 4살을 데리고 미국 입국심사를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평생 외국인이랑 대화해 본 것이 10마디가 안 되는데 큰일이다.
두 번째 시행착오는 영어 그리고 스팸메일.
브라질은 국제학교 입학이 치열하다. 티오도 없는지 입학사정이 까다롭다. 첫 번째 학교에선 영어가 모자란다며 떨어졌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미안하다. 딸아. 이럴 줄 알았으면 영유라도 다닐 것을 그랬구나.-
두 번째 학교에서 온 메일이 스팸메일함으로 오는 바람에 마지막 날 겨우 발견해서 밤 12시에 자는 애를 깨워 화상 인터뷰를 봤다. 영어실력 부족과 잠 덜 깬 아이, 엄마의 발영어의 환상적인 조합의 결과 또 낙방.
그냥 우리 가서 영어학원 좀 다니자. 그러다 보면 다시 자리가 나겠지. 다행히 초등은 큰 문제 안 된다더라.
남들은 잘 넘어가는 문제에 왜 나만 브레이크가 걸리나 신세 한탄을 해보아도 뭐 어쩌겠나. 원래 나란 사람의 운이 없는걸.
사건 연발에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마냥 준비는 브레이크의 연속이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좋은 일도 생기겠지 싶다.
이러저러해도 시간은 갔다. 이제 3일 뒤면 익숙한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 잠시 머무르러 간다. 낯섦, 설렘, 두려움, 긴장감, 벌써부터 밀려오는 그리움. 모든 감정이 슬라임처럼 뒤섞여 발자국을 뗄 때마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뒤돌아 보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 처음 상경했을 때도 이랬지. 그때도 나는 이방인이어서 마음 붙일 곳 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몇 년을 붕 떠다녔었.
20년이 지나 나는 또다시 이방인이 되러 간다. 면도날처럼 살을 저미는 외로움을 견디러 또 떠난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야. 그러니 조금은 덜 아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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