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이 고장 난 줄 알았는데 내가 방향을 못 잡은 거였네
나침반
항공, 항해 따위에 쓰는
지리적인 방향 지시계기.
자침(磁針)이 남북을 가리키는
특성을 이용하여 만든다.
퇴사한 지 3주가 지났다. 직장 다닐 때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던 터라 퇴사 후 한동안 7시 전에 일어났다. 지금은 직장러 당시의 루틴이 희미하게 지워지고 있다. 그래도 8시 전에 기상해서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퇴사 전에 몸이 많이 아팠기에 2달 사이에 8kg가 빠졌다. 잘 놀기 위해서, 앞으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 웬만하면 매일 운동을 나간다.
사실 3주 동안 아예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를 위해 작게나마 일도 섞어서 했다.
- 원데이 클래스 모루인형 만들기
- 프린피아 인쇄소 탐방 (신청참고 : https://www.instagram.com/prinpiamall_kr/)
- 지인 돌잔치 포스터, 엽서, 동화책 만들기
- 전시회 관람
- 성악가 친구의 오페라, 레퀴엠 공연 관람
- 영화 1편 보기
- 도서관 다니며 책 읽기
- 모임 나가기
- 카페 홍보배너 제작
- 마케팅 캐릭터 구상
개인 블로그에도 일상을 종종 올리고 있으니 그저 훑어 지나가셔요
나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yoong_art
친구 희현이와 평일에 전시를 보고,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문득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9 to 6 직장인의 삶에서는 연차를 써야만 누릴 수 있다는 평일 카페의 여유. 이런 삶이 너무 어색한 나. 8년째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희현이와 함께 나눈 대화를 하면서 생각의 전환점이 생겼다.
나 : 평일에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너무 어색해
희현 : 오히려 나는 이게 익숙해. 너도 이제 차차 익숙해질 거야
나 : 이렇게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도 괜찮은 걸까? 나 너무 강박감이 생기는데
희현 : 뭐 어때, 잘 쉬어야 앞으로 뭐든 잘하지
"쉼"이라는 것에 대해 나도 모르게 강박관념을 가진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맞는 말이다. 자동차도 엔진을 한 번씩 점검해줘야 하듯 사람도 한 번씩 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장 = 번아웃이 와버리니 말이다.
혹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본 적이 있는지? 영화의 여러 시리즈 중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에는 주인공 잭스페로우의 나침반이 나온다. 처음에는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북쪽을 가리키지 않아 겉보기엔 고장 난 것같이 보이는 나침반이다.
True enough, this compass does not point north.
사실 이 나침반은 북쪽을 가리키지 않아.
Where does it point?
그럼 어디를 가리키죠?
It points to the thing you want most in this world.
이 세상에서 나침반 주인이 가장 원하는 것.
<망자의 함>에서 잭과 엘리자베스의 대화.
북쪽을 가리키지 않는 나침반이라니... 이 대화를 통해 가장 중요한 건 "나침반"의 방향보다 "나침반 주인"의 방향임을 알 수 있다.
망망대해 = 앞으로의 나의 미래
빙글빙글 도는 나침반 =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가 없는 나의 상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 목표가 정해진 나의 상태
빙글빙글 도는 잭스페로우의 나침반은 마치 퇴사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의 상태를 표현한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한 방향이 정해진다면 망망대해인 내 미래를 향해 노를 젓든 돛을 펼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갈 것이다.
항해를 하다 보면 분명 폭풍우도 만날 것이고, 춥고 배고픈 일도 있겠지만 결국엔 목적지에 다다르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숙지하면서 지금의 불안한 감정은 밑거름이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