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다. 극도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 올해 들어 처음은 아니지만 선선한 날이 될 때 만나는 우중런은 처음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아닌 제대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리는 맛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거다. 내 책에 우중런에 대한 짧은 소감을 담기도 했고 작년에 썼던 브런치 글에도 담았었지만 맨날 걷는 길도 매일 다르게 느껴지듯 우중런 역시 단 한 번도 같을 수 없는 거였다. 비가 내린단 소식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양의 예보는 아니었다. 평소 같다면 단 몇 시간 후의 예보도 맞추지 못하는 기상청의 예측력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었겠으나 이날은 반가움이 먼저였다. 50분을 달리기로 했던 스케줄이 있는 날이었는데 밖엔 비가 한가득 내리고 있으니 계획보다 훨씬 즐겁게 한강을 달릴 생각에 잔뜩 들떴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비를 맞으며 달리면 어떤 기분이냐고. 이날 나의 답은 이거였다. "어린 시절 비 맞으면서 운동장에서 놀아 본 적이 있다면 그 느낌과 매우 흡사해요"라고 말이다. 어릴 때는 비 맞으면서 노는 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집에 들어가면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엄마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했지만 그 정도야 비를 맞으며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재미에 비하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그렇게 놀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반 친구들이랑 학교 끝나고 축구할 때 정도랄까? 체육 시간엔 비가 오면 실내 체육으로 대체됐고 점심시간엔 오후 수업을 들어야 했으니 교복을 흠뻑 젖게 할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 입대하자 온전히 다시 비를 맞게 됐다. 군인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대신에 판초 우의나 일반우의를 입는데 만약 우의가 없다면 그냥 비를 맞는 게 매뉴얼이었다. 그때 온전히 비를 맞는 것에 대한 해방감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전역을 한 후 나는 운동을 할 때나 혼자 산책을 할 때만큼은 비를 맞는다. 그럴 때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기억하기에 우산 따위는 나의 자유를 막는 가리개일 뿐인 거다. 잔뜩 비를 맞으며 자유를 흠뻑 느낀 값은 가볍다. 집으로 돌아와 젖은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샤워를 한 후 신발에 묻은 이물질을 잘 털어내 제습기를 돌리는 방에 깔창을 분리해서 신문지 위에 신발과 함께 올려 두면 그만이다. 지친 일상에서 자유와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우중 러닝까진 어렵더라도 우중 산책이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
한강을 55분 달린 후 집까지 남은 2km를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강 공원으로 지하철역 출구가 뻗어있는 곳을 지나갈 때였는데, 이곳은 덥든 춥든 날이 좋든 나쁘든 4계절 내내 어린 친구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공원 안에는 한강을 바라보며 즐기기에 훨씬 좋은 장소가 많지만 다리 아래를 이토록 선호하는 이유는 아마도 도보 이동이 몇 걸음 되지 않고 배달 음식을 픽업하는 장소가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편의점과 화장실이 가까이 있는 것도 큰 이유일 거였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하나 더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자전거 대여! 한강에선 커플끼리 2인용 자전거를 함께 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하철역 출구로 이어진 장소는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에겐 한강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나는 동네 사람이라 그런지 사실 이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이나 산책할 때를 제외하면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싶단 생각에 한강을 찾는데 그런 욕구를 채우기엔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리고 많은 인파가 몰릴 수밖에 없다 보니(여름엔 수영장, 겨울엔 썰매장도 운영한다) 임시로 마련해 둔 쓰레기장에서(리어카 몇 대로 만들어진...) 나오는 악취도 별로고 의식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고는 하나 바닥에 종종 보이는 쓰레기를 보는 것도 썩 못마땅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강 다리 아래를 잘 찾지 않고 있단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참 이것저것 많이 가리게 되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눈앞에 보이는 어린 친구들의 나이었을 시절엔 나 역시 시끄럽고, 북적거리고, 조금 어지럽혀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며 신나게 놀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가리는 것이 많은 아저씨가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슬퍼졌다. 하지만 사람의 취향이란 변화를 거듭하며 견고해지지 않던가. 취향이 견고해지는 것은 나를 더 깊게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니 두 가지를 모두 가지려 하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어쨌든 지금의 내가 좋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단 생각을 하며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의 아름다움과 역사 구조물의 조화로움을 흠뻑 느낀 후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않는 건 어떤 심리일까? 지금은 쓰지도 않는데 굳이 가지고 있으려는 마음 말이다.
2011년에 샀던 맥북 에어는 2017년에 맥북 프로를 구매하면서부터 줄곧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야 가끔 번갈아 가면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놔뒀지만 올해 맥북 프로 M4를 샀을 때까지 약 8년 동안 이 아이는 부팅을 한 적이 열 번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중고로 팔겠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카메라부터 렌즈, 장비, 옷, 신발까지 중고 거래에 도가 튼 사람이라 판매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도 그랬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번 주엔 이 아이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2009년에 산 하얀색 맥북을 꺼내려고 하는데 그 위에 올려뒀던 이 아이의 입이 꽤 크게 벌어져 있었다. 중력을 거스른 모습이 의아해서 덮개를 열었는데 기함할 만한 모습을 보고 말았다. 키보드 부분이 작은 오름처럼 솟아 있던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알았다. 배터리가 부풀어 올랐단 걸. 당장 중고 수리점을 찾아봤지만 비용이 10만 원 정도였다. 이 녀석의 중고 가격이 10만 원 정도가 안될 텐데 그 돈을 주고 배터리를 교체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직접 교체할 생각으로 새 배터리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3일 정도 기다려야 하는 게 영 찜찜했지만 지금까지도 별일이 없었으니 며칠 정도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혹시 모를 폭발 사고를 대비해 이 아이를 책장에서 분리 조치한 후 안전한 장소로 격리했다. 새 배터리가 오기 전까지 집안 여기저기를 오갈 때마다 잘 지내고 있나 며칠을 들여다봤다. 2017년 이후로 이렇게나 애정을 준 적은 처음이었을 정도였다.
대망의 택배 도착일이 되었다. 배송이 완료됐단 메시지를 받자마자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뒤판을 분리하고 배터리와 본체가 연결된 케이블을 조심히 분리한 후 부푼 배터리에 결속되어 있는 나사를 풀어내고 조심히 맥북 에어에서 들어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 새 배터리를 부착한 후 뒤판을 덮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맥 OS 특유의 '띵~' 하는 부팅 소리와 함께 사과 마크가 보였다. 좋은 징조였다. 부팅이 완료된 후 전원 케이블을 연결해서 충전이 잘 되는지 확인했다. 오! 배터리 표시에 번개 모양이 들어오며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니 아무 문제가 없단 증거였다. 이로써 찬밥 신세였던 이 아이는 8년 만에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후 생명 연장 완치 판정을 받게 됐다.
입을 벌리고 있던 모습을 확인했을 때부터, 수리 방법과 비용을 알아보고 부품을 주문하고 며칠 동안 잘 지내는지 살펴보고 직접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알게 됐다. 사용하지도 않는 걸 이토록 오래 갖고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집착이 아니라 이 아이와 함께 지냈던(정말 열심히 일했던...) 2011년부터 2017년까지의 추억을 소장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앞으로도 추억을 이어가려고 한다. 우선 브런치 글을 이 녀석으로 써보기로 했다. 테스트해 보니 아직 그 정도 밥값을 하기엔 충분한 성능이었다. 현행 제품과 다르게 사과 마크에 불이 들어오는 감성 가득한 맥북으로 글을 쓰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려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