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들의 집무실이자 관저로 사용되었던 곳에 다녀왔다. 곧 대선이 치러지기도 하고 선거가 끝나면 인수위 없이 바로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청와대 개방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부모님과 큰이모를 모시고 방문을 기획했다. 세 분 모두 아직 정정하신데 모셨다는 표현이 조금 과한가 싶기도 하나 그날의 일정 예약과 뒤풀이까지 모두 내가 진행했으니 어떤 면에선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단 주장을 펴본다.
집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부모님을 만났는데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잔뜩 들떠있는 얼굴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엄마는 몇 년 전에(아마도 개방하자 마자였던 것 같다) 청와대를 다녀왔었는데 소풍 간다 생각하고 아들과 한 번 더 다녀오잔 내 이야기에 억지로 따라나섰는데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버스를 탔다가 지하철로 갈아탄 후 경복궁역에서 내렸다. 서울 동쪽에 사는 우리와 달리 큰이모는 정반대 편에 살고 있었으므로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기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10시 10분] 집합 시간이 되자 우리 4명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날이 더워진 탓에 나뭇잎이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눈앞에는 어느새 파란 기와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뭇잎에 가려 2/3 정도만 보였는데도 단정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에 심장이 조금씩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정문에 이른 후 약간의 줄을 선 다음 예약 바코드를 청와대 직원들에게 보여주자 드디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선 가장 크고 중간에 우뚝 자리한 대통령의 집무실부터 들어갔다.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통제를 따라 모두 질서 있게 관람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집무실을 거쳐 관저를 돌아보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한 곳도 허투루 놔둔 곳이 없었고 모두 문화재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것 투성이었다. 내밀한 공간은 아마도 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매일 이런 곳에서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느끼는 감정 따위야 최고의 자리에 앉아 정무를 챙겨야 하는 사람에겐 한낱 사사로운 것이지 않을까?'
'말 못 할 고충이란 책임감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일 텐데 내가 봤던 그 많은 지도자는 그 무게를 견디려는 마음이 있긴 했을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관람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주변 어르신 무리 중에 이 좋은 곳을 두고 왜 다른 곳으로 갔냐는 전 대통령에 대한 토로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무리의 한 어르신은 그래도 그 덕분에 우리가 이 좋은 곳을 구경하는 것 아니겠냐며 헛헛한 웃음과 함께 애교 섞인 반론을 펼쳤다.
관저 앞마당에 있던 '청안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청와대는 국가의 최고 권위자를 위한 곳인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곳인가...'
씁쓸한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춘추관을 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번 주는 그런 날들이었다.
뭐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어 답답한...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그런 날들 말이다. 최대한 닫을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닫고 소통의 부재가 간절히 필요했지만 그럴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그럴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게 힘들었다. 그럴 수 있는 것들조차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머릿속에 맴돌아 자꾸 나를 힘들게 했고 그럴 수 없는 것들은 통제할 수 없음이 주는 무력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어 괴로웠다.
그냥 나는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고 싶었는데 어디를 가더라도 어떤 것에 귀속되어 있음을 떨쳐 낼 수 없기에 고통스러웠다. 세상에 혼자만 존재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더더욱 그 모순 속에서 힘겨워했던 것 같다.
관계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과 구속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감정과 그걸 끊어내지 못하는 모습이 싫었다.
그러니까... 요 며칠은 그런 날들이었다.
그런데,
한가롭게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웃겨 힘듦 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게 모순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행복에 겨웠던가...
자그마한 소음은 허용되나 금언의 공간.
나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사람은 세 명에 불과했다. 짐작해 보건데 볼펜으로 무언가를 끼적이는 소리와 샤프 또는 연필이 사각대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두 명은 뭘 그리거나 적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처럼 덕수궁 돌담길을 보고 앉은 두 사람이 그러고 있었다.
'저들은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혹시 단골인가?'
하기야 나도 이곳을 언제, 어떻게 알고 지도에 저장해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데 저들이 어찌 알고 찾아온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창밖의 세상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덕수궁 돌담을 가운데에 두고 바깥쪽은 정동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고(또는 일부러 산책 나온 걸로 보이는 무리) 안쪽으로는 궁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보였다. 이들은 돌담에 가려져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나는 그들이 엇갈려 걷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고작 돌담 하나로 서로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듯해서였다. 저 낮은 담이 뭐라고 같은 하늘 아래에 있음에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삶의 태도나 가치관이 다른 이들을 따로 모아둔 듯.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를 펴고 덮어뒀던 2장의 중간 부분을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아니, 읽으려고 했으나 10분 정도는 그럴 수 없었다. 금언의 공간은 조용함을 위한 규칙이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더 많은 소리가 나를 자극했다. 창밖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재잘대며 웃는 소리, 새소리, 비둘기가 날갯짓하는 소리 같은 것들... 말을 멈추니 여러 형태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은 주인장이 틀어놓은 클래식이 채워줬다. 다양한 소리는 귀를 채웠고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잎의 소리는 눈을 채웠다.
평화로웠다. 마치 도심 속의 절에 온 것마냥 평화로웠다.
절을 떠올리자 느닷없이 이런 상상을 했다. 클래식을 틀어 놓은 절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 곳이 있다면 깨지 않고 낮잠을 실컷 잘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냐면 나는 클래식에 조예가 전혀 없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한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함이 더해졌다.
심적으로 조금은 힘들었던 한 주였는데, 그냥 스쳐 갔을 법한 소리 덕분에 행복을 채울 수 있었다.
말을 아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걸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