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행복조각

by 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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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동안 글을 썼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다 지워버렸다. 저번 주에는 저장해 둔 글이 날아가서 문제더니 이번 주는 스스로 날려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제는 생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일 전날은 쇼핑 데이 이야기를 했고 다음엔 친구들과 함께했던 해피벌쓰 데이 이야기를 했고 그다음엔 나잇값 못하고 새벽까지 달린 대가를 치렀던 요양 데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주 초에 있던 대통령 선거에 관한 이야기도 했었다.


아! 그게 문제였다.

오늘 글의 시작을 선거 이야기로 했던 것. 정치와 정치인들의 혐오 이야기를 사정없이 토해내고 나자 온몸에 진이 다 빠졌던 거였다. 그런 후 시작된 나의 생일 이야기는(분명 재밌게 보냈는데) 그냥 나이 먹은 아저씨의 시시한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되어버린 거였다.


그래도 뭐라도 남겨야 하니까. 아까 끄적거렸던 이야기들의 파편을 조금 남겨보련다.


쇼핑 데이에는,

가로수길에 갔다. 좋아하는 브랜드에 들러 카드 지갑을 샀다. 그런 후 다른 브랜드로 이동 후 이미 가지고 있는 청바지와 미묘하게 워싱이 다른(물론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데님을 샀고 새하얀 린넨 셔츠가 옷장에 없단 이유를 굳이 찾아내서 계획에 없던 구매를 했던 일이 있었다. 쇼핑을 마친 후에는 카페에 들러 10년 동안 썼던 카드 지갑 안에 있는 것들을 새로 산 카드 지갑으로 옮겨 넣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쭉해진 낡은 지갑은 새 지갑이 들어있던 박스에 넣어뒀다. 언제 꺼낼지 알 수 없지만...


해피벌쓰 데이에는,

절친들과 부부 동반 모임을 했다. 개인적인 성향상 '나'의 생일은 드러내놓고 챙기는 편이 아닌데다 대단히 즐기는 성향도 아닌데 이번엔 친구들 성화에 못 이겨 생일날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즐기는 편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신나게 놀았다. 6시에 시작했던 1차는 9시간 동안 열심히 달린 후 새벽 3시가 되어 4차를 끝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치 오늘을 위해 아껴둔 것처럼 바닥에 깔아둔 체력을 끝까지 꺼내 최선을 다해 놀았다. 택시를 타고 집에 왔는데 현관문을 열은 기억은 없고 샤워를 한 후 집에 있던 숙취해소제를 먹은 기억과 읽지 못한 생일 축하 메시지에 고맙단 답장을 보낸 기억만 남아있다.


요양 데이에는,

새벽까지 달린 업보를 톡톡히 치렀다. 아침에 잠에서 깬 후에 하루 종일 생수를 2리터 이상은 마신 것 같고 장모님이 끓여주신 소고기미역국으로 해장하며 원기를 회복했다. 그리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다. 그러니까 요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체력 회복이니까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든, 낮잠을 자든 하루 종일 한량처럼 보내는 게 중요하다. 저녁에는 피자를 시켰다.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최고는 피자다. 물론 라지 사이즈. 콜라는 제로. 한 판을 야무지게 다 먹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어제 찍었던 사진을 단체 톡방에 보냈다. 모두 즐겁게 놀았단 이야기에 마음이 놓였다. 덕분에 미뤄둔 일이 몇 개 생각났지만 계속 미뤄뒀다. 오늘은 요양 데이니까.


아무튼 나의 일주일은 선거와 쇼핑과 생일과 요양이 마구 섞여 있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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