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될 듯 말듯한 하루. 하지만 결국 쓰디쓴 좌절만 남았던 시간. 아무리 질겅대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던 질긴 오징어처럼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연속되었던 한 주. 세상물정도 모를 만큼 적은 나이도 아니건만 탐욕이 극에 달한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언제나 곤혹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머릿속엔 '돈' 밖엔 없는 걸까? '돈'을 위해서만 사는 인생인 건가? 싶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르다가도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 싶어 분노를 다급하게 진압했다.
마침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지인이 있어 이 상황을 알려야 미리 준비를 할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H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한 마디를 뱉었다.
"이런 싸가지!"
전화기를 넘어 들려온 H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다. '싸가지'란 말이 못할 말은 아니었으나 그는 내 앞에서 지금까지 (대략 7년 동안)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친절하고 정중한 말이 오갔던 - 적나라한 지적이 오가긴 했었으나 - 사이였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내 입에서 참을 수 없이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H가 당황한 듯했다.
"왜요? 제가 욕해서요? 호호!"
"아니요. 욕이라뇨. 그냥 너무 통쾌해서요."
전화를 걸었던 의도와 달리 H의 입에서 튀어나온 '싸가지'란 말과 내게서 새어 나온 웃음은 심각할 뻔했던 상황을 묘하게 유쾌한 분위기로 바꿔버렸다. 그 이후 우리는 약간의 저속한 표현이 섞이는 걸 서슴지 않으며 '돈'만 밝히던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법한 그들을 질긴 오징어로 만들어 열심히 씹어댔다.
물론 질겅대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내게 벌어진 일이 H에겐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그를 위해 열심히 방법을 모색했다. 한참 후 휴대폰 화면의 빨간색 버튼을 누르자 38분 33초라는 숫자가 깜빡였다. 생각해 보니 10분이면 끝날 이야기를 H는 30분이나 더 내어 주었던 거였다. 타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딱히 하소연하는 성향이 아닌데도 오늘은 왠지 H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나의 상황이 H에게 도움이 될 거란 자기 합리화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그가 툭 뱉었던 '이런 싸가지!'란 한 마디가 컸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 그랬다.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할 때도 많지만 때로는 그냥 공감하는 한 마디 만으로도 훨씬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던 거였다. T성향이 강하다 보니 단순 공감만 한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그동안 내게 하소연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내가 유일했던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자 너무 매정한 말만 뱉었던 건 아니었는지 뒤를 돌아봤다.
물론 내가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결계를 만들어 둬야겠지만 적어도 그 '선'을 넘지 않는다면 그저 가만히 듣는 것과 공감 한 마디 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오늘 H와의 통화가 새삼 고맙단 마음이 들어 메시지를 남기려다 다음에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어 휴대폰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나이다. 훗...!
요즘 나는 '성불런' 중이다.
그간 순조로운 부상 회복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건 '쉼'보다는 '러닝'이었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달릴 수 있단 것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매우 크다. 물론 달리고 난 직후엔 얼음찜질을 열심히 해줘야 하고 파스도 붙여야 하며 다음 날은 달리기 '금지'이지만 하루만 쉬면 다시 뛸 수 있다는 것이 주는 행복은 상당하다.
그런 내게 위기가 찾아왔다.
처음에 10분만 달리던 것을 75분까지 늘렸고 한 번에 뛰는 거리도 10km를 넘겼지만 아무래도 통증 관리 차원에서 속도만큼은 올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거북이가 울고 갈 정도로 정말 느리게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러너가 많은 한강 특성상 나는 그 구역에서 가장 느린 거북가 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나를 재치며 지나 가는데 내 뒤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마음에선 번뇌가 일어난다.
'착착'
'투둑투둑'
내 옆을 '슉'하고 지나가는 거야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더 참기 힘든 건 따로 있다. 보통은 뒤에서 나던 발자국 소리가 몇 번 들리다 보면 점점 커지면서 나를 추월해 가야 하는데 거의 동반주 느낌으로 계속해서 내 뒤통수를 때리는 거다. 그럴 때면 온 신경이 뒤로 쏠린다.
'언제 지나가는 거지?'
'나랑 페이스가 비슷한가? 아니면 나를 페이스 메이커로 삼으려는 건가?'
페이스 메이커는 개뿔! 뒤통수와 귓가를 괴롭히던 그 소리는 착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역시나 내 옆을 지나가버린다. 그런 후에 시야에서 점점... 정말 점이 될 때까지 멀어진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워치에 심박수를 알리는 숫자는 그대로인데도 호흡은 전력 질주를 하는 것처럼 가빠져 온다.
'올릴까?'
'더 빠르게 달릴까?'
'안돼... 그러다 부상이 악화되면 다시 처음부터야...'
백번 천 번 고민을 하고 또 하다 결국 페이스를 유지하기로 한다. 그니까 이건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저들이 문제일리가 없다. 내가 문제지. 과거의 '나' 그게 문제인 거다. 지금보다 더 빨리 달렸던 예전의 '나'를 자꾸 떠올리니까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전의 나였으면 추월당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나를 괴롭히는 거다.
요즘은 그래서 러닝화 끈을 묶을 때부터 다짐한다. 달릴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성불 Run'을 하러 나간다!
일일시호일.
매일매일 좋은 날.
몇 년 전에 보려고 했던 책을 이제야 보게 됐다. 사실은 읽어야겠단 생각마저 잊고 살았지만 최근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영화를 찾다가 동일한 제목의 영화를 보고선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거였다. 동일한 제목의 영화는 역시나 이 책이 원작이었다.
아무래도 원작을 먼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책을 읽은 후 영화를 봤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다. 찬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따뜻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 특히 이런 건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찬물과 따뜻한 물을 가늠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다 말고 눈을 감아봤다. 그러자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 눈만 감았을 뿐 인데도 내 옆자리에서 일기를 쓰던 남자의 펜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저 뒤쪽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목소리는 꽤 저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리 만으로도 커피 머신을 다루는 사장님이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느낄 수 있었다. '소리'라는 건 저마다의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머리로 따지지 말고 반복하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과 그러다 보면 '손이 절로 움직인다는 것' 노리코에게 다도를 가르치는 다케타 선생님의 단호한 말은 나를 과거로 돌려놓았다.
과거에 광고와 잡지를 촬영하는 스튜디오에서 일했을 당시 어시스턴트 딱지를 떼고 포토그래퍼로 첫 촬영을 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비록 어시스턴트란 위치였지만 수많은 현장 경험이 있었고 단 한 번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외부 촬영에서도 언제나 꽤 괜찮은 순발력을 칭찬받아왔었기에 자신감까지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나는 포토그래퍼로서의 데뷔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 가방과 조명가방을 차에 싣고 홀로 촬영장으로 향했다.
당시에도 역시나 계획은 틀어져 에디터 선배와 의논했던 시안은 현장 수정이 불가피했고(뭐... 언제나 그랬듯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나와 농담을 주고받던 선배는 웃음기 사라진 클라이언트가 되어 있었고 나는 초짜 포토그래퍼로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머릿속은 하얀 백지상태가 되었으며 심장이 널뛰는 소리가 밖에 까지 들릴까 봐 긴장을 잔뜩 한 채였다.
포토그래퍼로 섰을 때와 어시스턴트로 섰을 때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이었다. 앞에 서느냐 뒤에 물러서 있느냐의 차이. 책임을 지는 자리에 서있다는 것의 차이. 어쩌면 오늘 이후로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단 압박감의 차이까지 모든 게 나를 짓눌렀다.
정신을 차리고 혹독하게 수련했던 지난 1년 간의 시간을 빠르게 되감아 봤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장면들 속에서 비슷한 상황을 찾아냈다. 그리고 수없이 연습했던 시간들을 온몸의 세포로 이동시켰다. 그러자 호흡이 안정되고 카메라조차 쥐기 힘들었던 손의 떨림이 겨우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은 뷰파인더 안에서 피사체를 찾고 구도를 결정짓는 동안 왼손은 조리개링을 돌리며 심도를 조절했고 신들린 듯 화각을 바꾸고 있었다. 왼손이 이토록 바삐 움직이는데 오른손이 쉴리가 없었다. 엄지손가락은 노출 고정과 해제, 감도 조절, 초점영역 변경 등 잡무를 열심히 수행 중이었으며 검지손가락은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란 명령만을 기다리며 셔터 위에서 상시 대기 중이었다. 1시간을 불태운 후에 나는 탈진했다. 전장에서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서는 안 됐다. 당황하지 않아야 하며 힘든 내색을 하면 절대 안 된단 실장님들의 당부를 되새기며 여유 있는 척을 했다. (에디터 선배가 몰랐을 리 없다. 그냥 모른 척해줬겠지.) 밀착 사진은 내일 가져다주겠단 이야기를 한 후 선배와 헤어졌다. 차에 탄 후 시동을 걸었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강원도 어딘가의 주차장에서 한 시간을 널브러져 있었다.
다케타 선생님이 말했던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일. 내게도 그런 적이 있었단 걸 잊고 있었다. 반복한다는 것. 익숙해진다는 것. 과거와 미래가 아닌 매일 그 순간을 살았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행복이라는 게 지금에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