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행복조각

by 윤기




이번 주는 커다란 행복이 찾아왔기에 오랜만에 하나의 조각으로만 글을 채워야 할 것 같다.


올해였다. 벚꽃이 가득했던 봄날. 글쟁이 친구들과 공저를 준비 중이었던 때. 책 디자인 임무를 맡았던 탓에 내지 디자인은 물론 표지 디자인까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심플한 스타일을 좋아해서 제목을 단 두 글자로만 하고 싶었고 여백은 사진 한 장으로 채우고 싶었다. 운영진들과 시안 회의를 할 땐 아이디어가 샘솟았는데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를 막상 밖으로 꺼내려니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쉽지 않음에 괜한 일을 벌인 건가 싶어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마음의 부담을 가득 안은 채 만든 표지 샘플을 글쟁이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걱정과 달리 모두 좋아해 주는 모습에 자신감이 생겨 진도를 나갔다. 하지만 교체해야 하는 사진이 문제였다. 샘플에 넣어 둔 사진도 충분히 좋단 의견이 있었지만 내 마음엔 차지 않았다. 더군다나 디자이너도 아닌 사람이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으니 사진만이라도 퀄리티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런 끝에 구매한 지 8년이나 된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바디: FUJIFILM X-T20

렌즈: 18-55mm 줌렌즈, 27mm 단렌즈


발목 부상이 한참 심했던 시기라 나서는 마음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못해도 3시간은 걸어야 할 텐데 잘 버텨내 수 있을지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걱정이 다른 걱정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발목이 아닌 굳어버린 머리와 손이었다. 수년간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었던 탓인지 미러리스 카메라의 복잡한 버튼은 머릿속까지 엉클어뜨렸다. 휴대폰 액정 화면이 아닌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은 초점이 맞지 않은 안경을 쓴 듯 어지러웠고 화각을 조절하는 왼손은 깁스한 것처럼 굳어있었다. 몇십 번이나 셔터를 눌러 댔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오른쪽 손목이 시큰해지자 그때야 알았다. 너무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지 않았단 걸.


작년, 첫 책인 포토에세이를 지을 때였다. 모든 사진을 아이폰으로만 찍은 걸로 채웠었다. 익숙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나름 신중하게 선택한 콘셉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보정 작업을 하며 아쉬운 부분이 몇 개 드러났는데 그중에서 색 표현의 풍부함을 나타내는 '계조'가 특히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다음 책에는 휴대폰이 아닌 제대로 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실어 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때만 해도 DSLR 카메라와 렌즈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나를, 언제든 소환해 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가득했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카메라가 책장 한편에 장식이 되어 머문 시간만큼 손과 머리, 시선까지 굳어있었다. 실망스러웠다. 결과물은 말할 것도 없었고 사진가로서 내 모습조차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지갑과 휴대폰처럼 언제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고민 끝에 고른 카메라는 일명 '똑딱이'로 분류되는 아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28mm 화각의 단렌즈.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가벼운 휴대성. 풀 프레임 보단 못하지만 APS-C란 훌륭한 이미지 센서 크기. 모든 것이 내 기준을 만족하는 카메라. 바로 Ricoh에서 만든 GR3 (HDF 버전)였다. 같은 회사에서 출시 한 GRD3라는 모델을 이미 15년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지 센서가 너무 작아 앞서 생각한 용도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최신 모델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때 두 가지 이유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첫 번째는 정식 수입사에선 품절이라 구매할 수 없단 것과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정가에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 한단 거였다. 두 번째는 올해 가을 6년 만에 새로운 모델 GR4가 출시될 예정이란 소식이었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잔뜩 끌어올렸던 의욕은 어느새 고민으로 정체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이번 달 초였다. 카메라를 사야겠단 마음조차 희미해졌을 때, 월말에 공식 수입사에서 내가 선택한 카메라를 소량 판매한단 이야기를 들었다.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러 카메라는 결국 내 품으로 오고 말았다. 벚꽃으로 온 세상이 가득했던 4월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커터 칼로 택배 박스를 감싼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가르고 에어캡 안에 있던 카메라 박스를 열자 비닐 안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카메라가 보였다. 배터리를 넣은 후 전원 버튼을 눌렀다. 바디 안에 숨어 있던 렌즈가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새 친구와 처음 눈 맞춤 하는 순간이었다. 참을 수 없는 기쁨을 겨우 억누르며 상처가 난 곳은 없는지 기능은 잘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기본 설정까지 마무리하자 이제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다. 당장 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엉덩이가 들썩였다. 기왕 나가는 김에 15년 전 구매했던 GRD3도 함께 데리고 나갔다. 카메라 두 대를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우선 한강으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로 걸었다. 28mm 화각으로 보이는 하늘과 공원을 담았다. 안정적인 구도나 예쁜 장면에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카메라가 잘 작동하는지 궁금했고 그동안 휴대폰으로 찍을 때 아쉬웠던 '계조'가 얼마나 풍부하게 담기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한강을 걷고, 뚝도 시장을 걷고, 조용한 주택가를 함께 걸었다. 해가 뉘엿하게 넘어가던 세상은 어둑한 그림자가 가득한 세상이 되어 있었다. 휴대폰이 아닌 카메라로 이미지를 다루는 감각은 아직 어색했다. 하지만 앞으로 오랜 시간 어디서든 함께 할 거란 생각이 들자 아쉬운 마음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커졌다.


잊고 있던, 오랜만에 만난 본 행복이었다.








독자분들에게.


어느덧 올해도 1년 연재 프로젝트의 반을 채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작년과 비슷하게 한 가지 주제로만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에게 큰 의미인 '사진'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길 것 같은 마음을 충분히 담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요.


52주로 나뉜 1년을 하나의 브런치 북에 채울 수 없기에(작년에는 브런치 북 한 권에 30편의 글만 실린다는 걸 몰랐습니다.) 상반기 행복 조각은 여기서 마무리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브런치 북에서 하반기의 행복 조각도 열심히 담아 보겠습니다.


이번 주는 특별편으로 GR3와 산책하며 담은 테스트 사진을 몇 장 남겨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첫 만남인 데다 말 그대로 '테스트'용이라 어색하고 부족함이 평소보다 큽니다. 넓은 마음으로 감상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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