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목요일은 나보다 두 살 많은 친구를 만난 날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업무차 방문했던 동탄 신도시에서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K를 알게 되었다. 그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맑은 마음이 담겨 있을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숫자를 다루는 그쪽 세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얼굴이었다. 지인이 내게 K를 소개해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가볍게 통성명을 나눴고 짧게 만남을 마쳤다. 지인과 담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져 올 때쯤 갑자기 K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마침 지인의 회사와 같은 건물에 K의 사무실도 있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다시 그를 만나러 갔다. K를 만나러 간 이유는 당시 고민 중이던 업무에 대한 상담과 혹시 대화가 잘 흘러간다면 나와 함께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였다. 급작스러운 미팅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K와 나는 사무실을 나와 옆 건물 1층에 있던 스타벅스에서 대화를 나눴다. 업무 얘기라면 사무실이 더 자연스럽겠지만 나는 조금 더 편한 자리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생각보다 K는 진솔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꼭 함께하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결국 K는 나의 제안을 받아주었고 그날 이후 내 업무의 회계를 도와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때 나눈 대화 덕분에 우리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구'로 지낼 수 있게 됐다.
오늘은 K를 만나는 날이다. 그의 직업 특성상 한 해의 전반기가 특히 더 바쁜데 그나마 4월엔 잠시 짬을 낼 수 있어 몇 달 만에 얼굴을 보기로 한 것이다. 3월 내내 법인세 신고에 시달렸을 그에게 어떤 메뉴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오리고깃집으로 결정했다. K는 나와 주량도 비슷한 데다 음식과 주종을 가리지 않는 편이라 늘 그날의 기분에 따라 첫술을 고르는데 오늘은 소맥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소주와 맥주가 적절한 비율로 섞이고 잔을 서서히 비운다. 알맞게 잘 구워진 오리고기와 미나리무침, 각종 밑반찬이 입안에 들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금에 대한 현안을 나누며 의견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길게 나누지 않는다. K와 내가 만났을 때 가장 공을 들이는 주제는 일상 이야기다. 부모님과 가족들은 여전히 잘 지내는지 저번에 이야기했던 문제는 잘 해결되었는지 최근엔 어떤 고민이 생겼는가와 같은 친구끼리 나눌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대화다. 지난 7년간 K를 만나면서 나는 그의 여러 모습을 보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책임감이었다. 내 사업의 회계를 도와준 지 두 해가 지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K는 당분간 일을 맡을 수 없을 것 같단 말을 전해왔다. 어렵게 입을 땐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렇게라도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려는 애씀과 남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것이다. K는 맡고 있던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다른 세무사를 통해 최대한 자신의 공백을 메우려 노력했다. 업무의 모든 것이 인도되는 마지막까지도 그는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켰다. 적잖이 놀라긴 했지만 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그를 보며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K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 따져 묻지도 않았다. 나 역시 번아웃의 쓰나미를 크게 겪어 본 사람으로서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K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굳이 나까지 그를 헤집어 놓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의 마음을 도탑게 덮어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소소한 일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마음껏 누리길 바랐다. 그저 건강한 모습으로 꼭 다시 보자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더 지났을까? 그는 건강하게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의 얼굴은 다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K를 처음 만났을 때 봤던 맑은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K와 단둘이 소주잔을 기울일 때였다. 그는 삶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무언가를 알게 된 듯 말하고 있었다. 내가 스튜디오를 떠나며 10년 가까이 카메라를 들지 못했을 때의 마음과 다시 사진을 찍게 됐을 때의 마음 같은 게 그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K는 결국 번아웃을 극복해 냈고 지금은 내 앞에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번아웃이 왔을 때보다 더 바빠졌는데도 그는 일과 삶, 그 어떤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2차는 해산물 집으로 갔다. 연포탕과 소주를 마시면서 나는 K에게 말했다. 우리는 친구라고. 친구라는 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라고. 그러면서 카메라를 들어 그를 찍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출간될 나의 사진집, '내가 사랑하는 친구'에 K를 꼭 싣고 말 테니까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며 그를 협박했다. 그러고서는 환하게 웃는 그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연포탕을 앞에 둔 K를 두 번 찍었다. 내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이와 함께 있을 때면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 걸까? 벌써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인사를 하며 다시 카메라를 꺼내 K를 담았다. 풀샷으로 한 번, 바스트 샷으로 한 번. 우리는 반대 방향에서 오는 2호선을 타야 한다. 나는 성수역 방면으로 그는 신당역 방면으로 흘러갔다. 한양대역을 지날 때쯤이었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헤어지기 전에 찍은 K를 봤다. 확대 버튼을 눌러 그의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바라봤다. 가장 먼저 그의 눈을 봤고 다음엔 그의 입술을 봤다. K는 오늘 그 입으로 내게 무서운 말을 했다. 지난 1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갑상선에 나쁜 게 발견되었단 이야기였다. 그런 서늘한 말을 하면서도 K는 한갓진 얼굴로 초기 단계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되려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절친의 와이프가 몇 년 전 같은 병으로 고생한 걸 알고 있던 터라 누군가는 이것을 애써 가볍게 부르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잘 알고 있다. K의 말을 들어보니 한가한 시기로 수술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빨리 발견한 듯했다. 그나마 한숨을 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질 노릇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몸을 하고 술을 마실 생각을 했느냐고 약속을 미루기 어려웠으면 커피로 대신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었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내가 그때 K에게 할 수 있었던 건 웃고 있는 그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