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목요일은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꽃을 만난 날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식물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끼고 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왜 그렇게 식물을 돌보고 꽃을 예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면 다 저렇게 되는 걸까? 라며 낯설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또래 친구들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20대와 30대를 지나 40대 초반이 되면서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예전과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스산하던 겨울을 밀어내고 아기 같은 얼굴을 드러낸 새순을 보면 뭔가 몽글몽글한 감정이 밀려온다. 저렇게 작고 여린 새싹이 옹기종기 모여 연둣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게 그저 신기하다. 2년 전 봄, 한참 한강을 매일 달릴 때가 있었다. 따스해진 봄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이 왠지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꽃에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지나가다 보이면 그냥 예쁘단 생각만 할 뿐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어 핸드폰에 보관할 마음은 절대 들지 않는다. 작년이었다. 한강 옆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100m 정도 앞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싶어 달리던 걸 멈추고 가까이 다가갔다. 숨을 고르며 계단을 올라가자 생경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주황색 꽃이 커다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거였다. 그 꽃을 배경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인증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도대체 얼마나 귀한 꽃이길래 저러고들 있나 싶어 나도 그들 틈에 껴서 이름 모를 꽃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방금 찍은 사진을 구글에 붙여 넣자 수많은 사람의 발길을 사로잡은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능소화였다. 아··· 능소화.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게 전부였다. 그 이후로도 수십 번 넘게 그 옆을 지나갔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능소화에 눈길을 준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나도 좋아하는 꽃이 있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꽃의 이름은 바로 벚꽃이다.
지금 사는 동네로 오기 전, 나는 목동에서 6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 목동이 내게 남겨준 추억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벚꽃이다. 어릴 때라 정확한 장소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느 골목길이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가벼운 바람이 양 볼을 훔치더니 연분홍색의 벚꽃이 오소소 떨어지며 꽃비가 내렸다. 처음 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 그때부터 벚꽃과 사랑에 빠졌다. 그 이후부터 내가 봄을 기다리는 유일한 이유는 벚꽃을 만나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봄이 주는 모든 설렘은 벚꽃으로부터 온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니까. 학창 시절에도 벚꽃이 필 때면 친구들과 석촌호수를 찾고 올림픽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30대에는 벚꽃이 피는 시기에 지방 출장을 가게 되면 벚나무가 있는 곳부터 알아볼 정도였다. 사람들이 몰리는 명소는 제외하고 동네 주민들만 아는 벚꽃길을 찾았다. 동네방네 소문난 맛집보다 토박이들만 알고 있는 숨겨진 맛집을 찾듯 벚꽃 맛집을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그렇게 찾아 둔 곳이 제주와 마산, 전주, 천안에 몇 곳이 있다. 너무 요란하지 않고 소박한 길. 나는 그런 벚꽃길을 좋아한다. 운이 좋은 건지 우리 동네에도 그런 곳이 있다. 집 주변으로 한강과 동네 사이로 뚝방길이 나 있는데 바로 여기가 외지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벚꽃 맛집이다.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석촌호수나 워커힐 같은 벚꽃 명소도 좋지만 나는 고작 몇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 우리 동네 벚꽃 길을 더 좋아한다. 벚꽃 시즌이 되면 매일 같이하는 게 있다. 오전에 일어나서 홍차를 한 잔 우려낸 후 베란다로 나가 뚝방길에 핀 벚꽃을 보고 그 뒤로 해가 부서지는 반짝이는 한강을 보며 마음을 정돈하는 일이다. 그렇게 서서 단 몇 분 동안 뚝방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체가 평온해진다. 한강으로 산책 가는 동네 주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벚나무에 둘러싸인 채 사진을 찍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좌우로 몸을 돌려가며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무심히 돌아서는 걸 보는 것도 재밌는 풍경이다. 우리 동네 벚꽃길은 멀리서 찾아올 만큼 유난하지 않으니까, 그냥 지나가던 길에 만나야 딱 보기 좋을 정도로 아담해서 좋다. 그렇게 소박한 벚꽃길이 나는 더 좋다.
오늘은 머리를 자르는 날이라 오전부터 나가야 했다. 뚝방길에서 버스를 탄 후 차창 너머로 벚꽃을 구경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바버샵에서 머리를 정돈한 후 계산을 마치고 달릴 채비를 했다. 내가 다니는 바버샵은 성북천 바로 옆에 있는데 여기가 또 벚꽃 맛집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벚꽃만 피면 성북천을 따라 집까지 달리겠다고 마음을 먹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매번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개화 시기가 당겨진 덕분에 묵혀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거였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챙겨 온 트레일 러닝 조끼를 입고 왼쪽 주머니에 생수를 가득 채운 250ml 소프트 플라스크를 집어넣었다. 오른쪽 주머니엔 카메라를 넣은 후 흔들리지 않도록 잘 고정했다. 그런 후에 에너지 젤 하나를 뜯어 입안으로 밀어 넣자, 그 모습을 보던 바버샵 사장님이 씩 웃으며 말을 건넸다. "단단히 준비해 오셨네요?" 나는 멋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운동화 끈을 바투 매고 나서야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문을 여는데 얼굴 위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다. 모자 위에 얹어 둔 선글라스를 끼고 성북천으로 내려갔다. 왼쪽이 청계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볍게, 설레는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벚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은 반대편 길이었지만 나는 일부러 그리로 가지 않았다. 벚꽃길 아래에서 달리는 맛도 좋지만 한 발 떨어져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소망해 오던 성북천 벚꽃길을 달렸다.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고 있었고 나 같은 러너도 가끔 한 명씩 보였다. 반대편에선 벚꽃과 함께 사진을 찍는 젊은 연인과 학생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성북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구간이 가까워지자 벚꽃길은 끝이 났다. 이어진 청계천 구간에선 외롭게 혼자 서있는 벚나무가 드문드문 있을 뿐 벚꽃길이라 불릴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시무룩해진 채 달리다 보니 마장동을 지나고 있었다. 사근동을 벗어날 때쯤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구간이 나타났다. 중랑천을 따라 한양대 쪽으로 조금 더 달리자 그제야 저 멀리 벚꽃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살곶이 다리에 이르니 양옆으로 즐비한 벚나무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곳의 나무는 키가 작아 마치 벚꽃이 나를 감싸안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운동 삼아 나온 어른들과 대학교 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성북천과 청계천과 중랑천과 한강에서 벚꽃과 함께 달렸다.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바버샵에서 출발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밀린 업무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마침 퇴근한 와이프와 함께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살곶이 다리를 찾았다. 아까 낮에 중랑천을 달릴 때 바깥양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새로운 벚꽃길을 찾았는데 엄청 예쁘니까 밤에 꼭 함께 산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혼자 달렸던 그 길을 저녁엔 와이프와 같이 걸었다. 가로등 빛이 약한 탓에 낮보단 감흥이 덜 했지만 와이프는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며 양팔을 벌려 온몸으로 기분 좋음을 표현했다. 우리는 그렇게 응봉역까지 이어진 벚꽃 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몇 가지 경로를 두고 고민하다가 응봉교를 걸어서 건넌 후 성수동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려면 서울숲을 가로지르는 게 가장 빨랐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공원은 한산했다. 그런데 정류장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우리 앞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서울숲의 벚꽃길이었다. 여기에 심어진 벚나무는 중랑천에 있던 것과 달리 키가 무척 컸고 나뭇가지가 길 안쪽으로 휘어져 대형 벚꽃 아치를 만들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길이 반가워 바쁘게 움직이던 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낮에 왔다면 이렇게 평온하게 구경하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하니 저녁에 산책 나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벚꽃이 준 행복도 단 며칠 후면 끝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다시 1년을 손꼽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벚꽃은 너무 빨리 떨어져서 아쉽다고.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벚꽃이 빨리 떨어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았겠느냐고. 내년에도 이토록 사랑하는 꽃을 만날 수 있다는 것조차 내겐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