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주,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인연이 주는 의미에 대하여
몇 번이고 말한 적이 있다. 에세이 단행본 출간을 하고 싶단 꿈을 가지고 있다고. 10년 안에 이루고 싶다 말했지만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며 대단히 각오한 꿈은 아니었다. 그저 소중한 마음으로 꿈에 다가가는 순간을 천천히 즐기고 싶은 거였다. 그렇기에 에세이 작가가 된다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목적이 있는 꿈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걸 수차례 경험했기에, 꿈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정원을 돌보다 보면 어느새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런 희망만으로도 행복이란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작년 여름,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 이 씨앗을 잘 키워 가는 중이었다.
‘인연이 한 걸음이 되기까지’
올해 초였다. 블로그에서 친해진 이웃 중에 한 분이, 재능기부로 블로그 키우는 모임을 만든단 소식을 들었다. 사실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궁금해 호기심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모임을 주최한 이웃의 의도에서 한참 벗어 낫었기에, 실례가 될까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떨어지면 인연이 아니겠지 생각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나는 그 모임의 일원이 되어 오픈 톡방에 초대되어 있었다. 호스트까지 총 13명. 새로운 인연은 그렇게 덜컥 시작되었다.
대부분은 블로그를 열심히 해보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이었지만(사실 나 빼고 모두) 난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책임감을 갖고, 열외 하지 않고,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기로 다짐했다. 날 선택해 준 이웃에게 진짜 실례를 범하면 안 되었으니까. 우선 재능기부를 자처한 이웃의 이야기가 가장 궁금했다. 밀착 관리를 해준다니 얼마나, 어디까지 관리를 해준다는 건지부터 동기(?)들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가 무척 궁금했다. 내 블로그의 성장은 뒤편으로 미뤄둔 채,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인 이들과 함께하는 100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니 설레기 시작했다.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동기 중 한 분이 출간 프로젝트를 런칭했다. 모임을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이 출간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우선 두 달 동안 전자책 출간을 목표로 하고 점점 이어 나가 종이책 출간까지 해보자는 것이었다. 나의 꿈과 관련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솔깃했으나 처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왜냐면 나의 꿈은 10년짜리인 데다, 종이책이 아닐지라도 아직 너무 이르단 생각을 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뱉어낸 것조차 1년이 되지 않았는데 일러도 너무 이르다 싶었다. 편집자도 없는데 누가 내 글의 교정 교열을 해줄 것이며, 어떻게 방향을 잡아 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걱정만 가득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생각을 뒤집었다. 우선 어떤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부족하고 마음에 차지 않을 것을 알지만, 잘하는 나를 만나기 위해선 잘하지 못하는 나를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것도 알기에, 어설프고, 못난 나를 이번 기회에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100일간 함께한 동료들과 이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용기가 절로 생겼다. 그렇게 신청 댓글을 남겼고, 감사하게도 동기이자 이웃의 선택을 받았다.
100일 전부터 함께 한 동기들과 이번에 처음 만난 동기들을 얼마 전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그중에는 이미 전자책을 몇 권씩 출간한 분들도 있었고, 한 분은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선뜻 내어 주었다. 습하고 더운 여름의 토요일. 우여곡절 끝에 모인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 책을 써보자고, 글을 써보자고 모였지만 이들이 들려준 건 책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삶의 이야기였고, 꿈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둥지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따뜻한 마음과 응원을 나누어 담았다.
사는 게 그렇다. 계획대로 되는 게 단 하나도 없다. 그저 이웃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호기심에서 시작된 인연이 어느새 꿈을 이루기 위한 기초 공사를 준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100일 전 이웃의 재능기부를 무시하고 지나쳤다면, 취지에서 조금 벗어난 나를 이웃이 선택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일어난 일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계획한다고 가능한 것이었을까. 책을 내보겠단 꿈을 꾸지 않았으면 만날 수 있던 인연이었을까.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일 수도 있지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을 때 들었던 생각들과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옮겨진 한 폭의 발자국이 지금 이 자리로 안내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무언가에 끌린 듯 제자리를 찾아온 것만 같았다. 어쨌든 확실한 한 가지는, 뭐가 되었건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새 꿈을 이루는 길 위에 서 있고, 느리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올해, 나를 선택해 주고 함께 한 인연들의 마음이 꿈을 향해 내딛는 발자국을 남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