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주, 해방감을 주는 것들에 대하여
'소통이 주는 해방'
독서 모임이 있는 한 주였다. 독서란 행위를 취미로 갖고 있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이나, 집 근처 도서관만 가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독서 모임도 그런 곳 중에 하나다. 독서인을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선 다를 게 없지만 위 두 곳과 독서 모임이 다른 한 가지는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단 것이다. 즉, 독서 모임은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의 세계가 열리는 공간이다.
책을 읽는다면 보통 혼자 읽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때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을 토대로 저자의 이야기를 비판하기도 하며 감동받기도 한다. 일반적인 독서의 형태가 대부분 이럴 것이다. 이렇게 스며든 것들은 나의 가치관과 만나 자아를 한 겹 두텁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기는 것이 편협함의 견고함이다. 하지만 편협함이 견고해지기 전에 저자의 이야기를 들고 모임을 나가게 되면 특별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어느 모임이든 살아온 시간의 다름으로, 저마다 고유한 가치관의 인격체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각자 소중히 가져온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독서 모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어떤 이의 입에서 뱉어진 생각들이 나와 비슷할 때면 신기하단 기분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과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나의 편협함이 깨지는 순간. 아니, 그전에 내가 편협했단 것을 인지하는 순간이 그렇다. 이것이 순차적으로 일어날 때, 나를 구속하던 편협함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 책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고 한들, 소통할 기회가 없다면 무엇으로부터 나의 편협함이 해방될 수 있을까. 독서 모임을 해보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를 특별한 시간이다.
'우산으로부터의 해방'
이번 주는 비가 내려도 너무나 많이 내린 날의 연속이었다. 몇 차례 장맛비가 내리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수요일의 서울. 동서 형님이랑 술을 한 잔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새벽이 되자 굵은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쥔 손을 펴지 않고 꽉 쥐었다. 이대로 비를 맞고 싶었다. 사실은 비가 오길 바라며 온전히 맞아도 아무렇지 않을 마음으로 나왔었다.
'투둑. 툭... 툭툭'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지며 모자 창을 두드리고, 고어텍스 재킷에 튕겨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형님의 걱정 어린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소리를 뱉었다.
"형님, 우산을 접고 비를 맞아보세요. 그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형님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다 이내 빙그레 웃어 보이더니 곧 따라 했다. 다만 비를 맞을 복장으로 나왔던 나와 달리 형님은 그렇지 못했기에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카메라에 담았다. 그 와중에 형님은 포즈까지 지으며 좋아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온전히 비를 맞아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빗물이 흐르고 있는 미소에는 행복이 묻어있었다.
그랬다. 언젠가부터 비는 절대 맞지 말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비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산을 펼치고 꼭 그 안에 갇혀있길 바랐다. 빗방울이 굵으면,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우산이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손잡이를 더 세게 쥐었다. 비는 절대 맞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신발도 젖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막상 비에 흠뻑 젖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젖은 신발도 처음에나 불쾌할 뿐 잔뜩 젖으면 물놀이할 때의 느낌과 다를 바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의 상태가 돼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날 보호하고 있다고 착각한 우산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비가 오면 다들 실내 운동을 생각하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 천둥과 번개만 치지 않는다면, 원래의 루틴대로 달리러 나간다. 비를 맞으면서 달릴 때 해방감을 즐기기 위해서다. 아파트 입구 정도면 이제 막 신발 틈 사이로 빗물이 들이닥칠 때다. 이 시간만 넘기면 두 가지 행복이 찾아온다. 달리는 것으로부터의 행복, 비를 맞지 말아야 한단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행복이다. 이러니 우중런을 찬양할 수밖에.
우산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 꽤 특별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