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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g May 04. 2021

다들 그렇게 불법체류자가 된다...

비자 취소는 어떻게 하는 거람

 예정보다 일찍 한국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대체로 내 인생은 무계획이 계획인 것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며, 오고 가는 많은 기회들을 잡히면 잡히는 대로, 놓치면 놓치는 대로 살았다. 대충 이쯤이면 괜찮겠지. 그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는 의도치 않게 나를 순발력의 대가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나는 누구보다도 인생사 새옹지마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이다.




 본격적인 귀국 준비가 시작됐다.

베를린은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많다고 할 정도로 외국인들이 많았고, 영어만 가능하다면 사는 데에 큰 불편함은 없는 도시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절대로 영어를 허락할 리 없지. 흔한 언어 설정도 없는 독일 공공기관의 웹사이트란 나의 생활 독일어를 레벨 업 시켜주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는 단 하나.


 

 ‘비자 취소는 어떻게 하나요?’


 

 하루 종일 검색을 해봐도 ‘비자 길게 받는 법’ 이라던지, ‘00 비자 신청하는 방법’ 같은 콘텐츠만 많을 뿐 내가 원하는 ‘비자를 취소하는 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단순한 검색으로는 얻기 힘든 정보였다.


 베를린 비자청은 방문하기 전에 예약을 필수로 했어야 했는데 이 예약은 향후 1년 치가 이미 다 차있어 독일에 오기 전부터 해놔야 한참 뒤에나 예약이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것도 항목별로 예약을 따로 받는데 비자 신청 예약은 있어도 비자 취소 예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를 땐 노숙이지.

 

베를린 비자청 앞. 이 날은 내가 1등으로 와서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비자 취소를 위한 비자청 노숙을 하게 된다. 참고로 첫 비자 신청 때도 노숙했다. 근데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비자청 앞에서 노숙을 한다. (비자청은 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현장에서도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음) 밤샘 노숙을 한 뒤 비자를 취소하게 되었고, 대충 . 원한다. 취소. 비자. 수준의 독일어로 수월하게 비자 취소가 완료되었다. 들어갈 땐 그렇게 힘들더니 나간다고 하니까 너무 쿨하게 보내주더라. 그리고 담당자가 얘기했다.


 

 ‘너 이제 비자 취소하면 다음 날 바로 한국 가야 돼.’


 

 X 됐다. 예상은 했는데 내 빅데이터가 한없이 스몰하여 구체적인 일정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도 이런 얘기는 안 해줬다고요. 그날부터 나는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24시간. 베를린의 관공서 직원은 6시에 퇴근. 그리고 그 관공서는 예약이 필수. 이게 가능한 건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과거의 나’가 ‘미래의 나’에게 던진 수많은 고난과 역경들은 나를 이렇게 성장시켰고 (만나서 반갑긴 한데 다신 보지 말자) 은근히 잔머리가 잘 굴러가던 나는 꾸역꾸역 어떻게든 일처리를 마쳤다.

 



 대망의 귀국 날!

베를린-서울은 직항이 없어서 베를린-뮌헨-서울 경로로 가야 했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여유롭게 비행기에 탔지만, 탑승이 끝나고도 한참을 출발하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난 비자가 없는 상태라 늦게 되면 하루가 지나버리는데? 그렇다면 나는 불법 체류자가 되는 건가? 착륙하자마자 뛰어나가면 바로 탈 수 있겠다.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뛰어나갈 준비를 했다.


 아 마지막까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구나.

 

 역시나 기내 방송으로 비행기가 연착되어 특정 지역 환승 승객들은 전부 안내데스크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특정 지역엔 내가 가야 하는 그 도시도 포함이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의 불법 체류(?) 일지.


 

 이미 해탈해버린 나는 터덜터덜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그 와중에 뛰어나가는 아시안들.

안내 데스크에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아시안들이 줄을 서있었다. 대체로 중국인들이 많았고 항공사 측에서는 베이징에 가서 환승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즉 현재 상황은 뮌헨에서 몇 시간 정도 대기하여 베이징으로 간 뒤 거기서 서울이나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와 이렇게 나 중국 가나요?


 

 내 차례가 와서 나는 내가 지금 비자를 취소하고 귀국하는 상황이고 최대한 빨리 서울에 도착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담당 직원은 나에게 여러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네? 다 베이징으로 가는 거 아녔나요?


 그 선택지들은 이러했다.


 

1. 공항에서 노숙 후 베이징 경유하여 서울 가기

4시간 뒤에 바로 베이징행 비행기에 탑승 가능하며 원한다면 '바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제일 빠른 루트' 일 것. 또한 이미 게이트를 통과했기 때문에 비자에 관련된 문제는 생기지 않음! 대신 베이징 비행이 2x 시간 가까이 걸릴 걸이고 가서도 대기해야 하지만 게이트를 나가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면 비행기는 탈 수 있다.

(빨리 비행기를 탈 수 있긴 하지만 빨리 도착하지는 않는 게 흠)


 

2. 뮌헨 공항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 뮌헨->프푸-> 서울

-> 공식적으로는 비자 없는 상태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


 

3.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밤 비행기를 타고 미리 공항 호텔에 가서 1박 후 다음 날 아침 서울행 비행기 탑승

->2번과 동일. 대신 프랑크푸르트에서 입국 심사 시 꼬투리 잡히거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음.


 

 이미 내 멘탈은 부서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있었다. 그 직원은 앞선 중국인들과 다른 외국인들을 다 일사천리로 베이징으로 보내 쉽게 일처리를 하던 반면 나에게만은 여러 선택지를 주며 유독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얼마나 내가 안쓰러웠으면..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고맙습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만약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뭐 먹을래? 난 아무거나..’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 친절한 남자 직원은


 “나 같으면 오늘 이미 이렇게 틀어져서 피곤한 김에 밤 비행기로 프랑크푸르트로 넘어가서 하루 쉬고 다음 날 서울 갈래!”


라고 했고

 

 “그래 그러면 너를 믿어볼게. 고마워. 근데 나 비자 문제는 어쩌지?”라고 물었는데 그 친절한 남자 직원은 독일 특유의 비관적이고 쿨한 태도로

 

 “근데 감방 가기 밖에 더 하겠어? 하하. 그리고 원래 비자란 게 들어올 땐 빡세도 나간다고 하는 사람한텐 상대적으로 유해.”

 

 나는 눈은 울었고 입은 웃었다. 뱉는다고 전부 말이 아니야. 가뜩이나 멘털이 가루가 된 나는 이제 한 마리의 슬픈 눈을 한 예민한 고라니가 되어있었다.

 

 “고마워. 독일 감옥이라니. 내가 언제 그런 경험을 또 해보겠어. 난 참 행운아네.”

 

 “그래. 네가 언제 독일 감옥에 가보겠어. 면회 갈게. 즐겨.”

 

남자 직원은 걱정스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대답을 했다.

 

 지금이야 웃기지 그 당시엔 정말 무서웠다. 어쨌든 프랑크푸르트행을 택한 나는 직원과 짧은 대화를 하고 가려는데 지나가던 경찰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여권을 요구했다. 지나가다 말고 갑자기요? 다른 사람들은 하지도 않고 지나치더니 나만?

경찰이 달라는데 뭐 별 수 있나.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순순히 여권을 줬다. 그러자 경찰은 갑자기 나에게 비자 취소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달라고 했다.


 

 네? 그런 거 없는데요? 심지어 비자청에서 주지도 않았어요.


 

 나도 비자를 취소하던 그 당시 너무 쉽게 취소된 상황이 살짝 어이없었지만 비자청이 그렇다는데 이제 떠날 내가 토를 달 필요도 없어 그렇게 끝난 문제인 줄 알았다. 갑자기 두 명의 경찰관들이 (안 그래도 험상궂게 생김) 양 옆에서 나를 에스코트 (에스코트라 쓰고 연행이라 읽는다.) 하며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 와중에 내적 친분이 생긴 그 공항 직원은 나름 나를 변호해주는 말을 했지만 경찰관들은 만족하지 못했고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직원과의 안녕을 고했다.


 

 후줄근한 차림에 우중충한 표정을 한 아시안 여성.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두 명의 건장하고 험상궂은 경찰관.


 나 이렇게 불법 체류자 되는 건가?

 

 갑자기 머릿속으로 온갖 상황들이 펼쳐졌다. 이거 어디다가 연락해야 하지? 나 내일 서울 갈 수는 있는 건가? 일단 뮌헨에 갇히는 건가? 한참을 걷다가 어떤 벽에 멈춰 섰다. 밖에서는 출입구로 볼 수 없는 그냥 평범한 공항 벽. 경찰관들이 문을 누르자 비밀의 방처럼 그 안에 방이 나왔다.


 오오. 이거 마치 해리포터의 필요의 방 같구나!

이 방을 프랑크푸르트 비밀의 방으로 불러주겠어.

 

 그 와중에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방 안에 풍경을 보고는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작은 철장과 벤치 의자들 그리고 그 철장 안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대체로 나 같은 아시아 계열의 사람들이 많았다. 분위기는 너무 침울했고 울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담배 쩌든 내가 나는 그 방이 외국인인 나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다행히도 나는 입구 쪽에 한 줄짜리 벤치의자에 앉혀졌다. 그들은 가져간 내 여권을 보며 뭐가 그리 심각한지 그들끼리 열띤 토론을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두 명이었던 경찰관들은 5-6명으로 늘어났고 그중 한 명은 내 여권을 보며 갑자기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다가와 베를린은 왜 비자 취소 증명 서류가 없냐며 물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핸드폰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친구 S에게 지금 이 상황들을 설명하며

 

 '비자 개념 사라진 오만한 한국인 유학생, 뮌헨 공항 현지 구류. 유학생들의 비자 관련법 이해 수준 이대로 괜찮은가?'

 

따위의 오버에 오버를 더한 헤드라인을 꾸미는 중이었다. 여기서 친구 S는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질 위인이 아니었다는 게 핵심이다.

 

 "지금 상태가 어떻노? 씻었나? X같은  로고 크게 박힌 티셔츠 같은  입고 갔어야제! 지금 꼬질꼬질 아시안 아니가? 내가 말했자네 X, 넬샤 이런  입어야 된다고! 지금이라도 빨리 화장실 가서 세수라도 하고 사람답게 갈아입어. 내가 봤을   없어 보여서 그런데 잡혀간  같다."


  와중에 X염불을 외던 친구 S 발언은 파격적이었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가끔 자기 전에 생각나서 혼자 웃는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나에게 이제 가도 된다며 여권을 돌려줬다. 그리고는 무섭게 덧붙였다.

 

 “절대 다른 길로 새지 말고 내가 지금 지시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 그리고 너는 곧장 게이트로 가는 거야. 잘못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고 일이 커져.”


  지금 무슨 범죄영화 찍는 건가?

 그렇게 나는 그들이 알려준 경로로 무사히 게이트에 다시 들어왔고 무사히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니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던 입국 심사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뮌헨에서는 어찌어찌 넘어왔다만 프랑크푸르트에서 그 꼴을 한번 더 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간 걱정이 무색하게도 입국 심사를 진행할 때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또한 짐 검사를 담당한 직원은 너무나 친절했다. 나는 모든 카메라를 다 내가 들고 탔기 때문에 항상 리트머스지에 폭탄 검사를 한번 더 추가로 해왔다. 역시나 오늘도 어김없이 더블 체킹. 직원이 카메라가 왜 이렇게 많냐고 하길래 베를린에서 살았고 예술하는 학생이며 사진을 전공한다고 했다. 그러자 열심히 정리한 카메라들을 다시 정리하려면 힘들겠다며 다 안 꺼내도 된다고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이다. 짧은 독일어와 영어로 열심히 대화를 한 보람이 있었네. 낯선 타국에서 이런 작은 친절이 눈물을 핑 돌게 만드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그 직원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탑승 전에 게이트 앞에 들러서 내가 잘 도착했는지 보러 오겠다고 했다.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는데 정말로 그 직원이 카트를 타고 왔다.


 "잘 도착했네! 확인하러 왔어."






 그렇게 다사다난한 여정을 끝내고 한국에 도착한 나는 따신 밥과 집에 대한 감사가 가득한 한 마리의 스트릿 출신 고라니가 되어있었다.


 나중 일은 미래의 내가 해결해 줄 것이라 굳게 믿던 과거의 나는 매번 나를 힘들게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계획을 갖고 살아도 알 수 없는 게 내일이니까 재밌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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