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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guevara Aug 17. 2022

다시, 튀르키예

EP.02 걷기.

 한 달 남짓으로 계획한 이번 여행은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길 좋아하지만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도착한 공항에서 튀르키예 사람인 양 시미트와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을 날아 달라만 공항에 도착했다.

 욀루데니즈에 가기 위해선 먼저 페티예로 가야 한다. 튀르키예 대표 관광지 페티예. 날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페티예 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긴 줄을 만들었다.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며 차이를 마시던 기사님은 늘어선 줄을 눈대중으로 훑고는 성큼성큼 걸어와 사람들을 차례대로 태웠다. 기사님은 만원이 되자 구석구석 다니며 요금을 받고 명함만 한 표를 직접 써서 무심하게 툭툭 찢어 건넸다.

 "덜컹."

 높은 방지턱을 넘는 버스의 몸부림에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페티예 터미널에 도착하고 있었다. 출발 후 몇 분간의 창밖 풍경만 기억날 뿐 버스에 달린 튀르키예 국기와 함께 신나게 흩날렸을 풍경은 한 톨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절대 헤맬 일 없겠어.'

 지난 여행의 경험으로 익숙해진 욀루데니즈로의 이동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바닥에 내려놓은 배낭 위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다 변한 건 요금뿐인 욀루데니즈 행 돌무쉬에 올랐다. 들썩거리며 달리는 돌무쉬가 페티예 중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 마주 보고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물었다.

 "어디에서 왔어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아주머니는 어색한 튀르키예어가 재미있는지 한껏 웃어 보이셨다.

 "휴가예요?"

 "네, 저는 리키안 웨이를 걸을 거예요."

 "패러 글라이딩도 좋아요."

 "사실 세 번째 터키 여행이에요. 그래서 패러 글라이딩은 타봤어요."

 "그 길은 힘들 거예요. 좋은 여행 되길 바라요."

 몇 분 전 시작한 이 짧은 대화가 충분히 좋은 여행의 시작이었다는 걸 아주머니는 눈치채지 못하셨다.


 욀루데니즈에 도착해 숙소로 향하는 거리 철길처럼 나란히 늘어선 기념품 가게에는 지난 여행 사고 싶었던 엽서가 진열되어 있을 만큼 그대로였다. 살랑살랑 걸으며 지난 여행을 추억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출발해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긴 거리를 이동한 탓에 많이 피곤했다. 끼니답지 않게 끼니를 해결하고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다음날, 바바다그 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안개는 옷과 배낭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오른쪽에 욀루데니즈 해변과 맞닿은 블루라군을 끼고 굽이진 오르막을 20분 정도 걸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염소를 지나치자 높은 나무들 사이에 걸린 큰 글씨가 보였다.

 'LIKYA YOLU, LYCIAN WAY'


 나는 오래 걷고 오래 뛰는 것에 재능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800m, 1500m, 3000m 중장거리와 지역 대표를 선발해 경기하는 마라톤까지 많은 대회에 참가했고 여러 번 수상했다. 매번 출발선 가까이 왼발을 두고 상체를 살짝 굽혀 총성을 기다릴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상했다. 대회와 다르게 경쟁도 완주의 대가도 없는. 게다가 아무도 없는 이 길의 출발 지점 앞에 섰을 때 선수 시절의 몇 배로 긴장됐다. 주전자 끓듯 쉭쉭 거리며 나오는 큰 한숨을 솔방울 구르는 바닥에 두어 번 내던지고 낮게 말했다.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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