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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guevara Aug 26. 2022

다시, 튀르키예

욀루데니즈에서 파랄리아

 리키안 웨이는 500km가 넘는 트레일 코스다. 물라 주와 안탈리아 주를 잇는 길로 지중해를 따라 리키아의 고대 도시와 유적을 따라 걷는다. 고대 리키아인의 발자취 위로 도시 간 연합으로 꽃 피웠던 문화와 페르시아,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으며 쌓인 역사가 지중해라는 미적 요소와 만나 리키안 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중 하나가 됐다. 아직 생소한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많은 여행자들은 각자 목표를 가지고 이 길에 도전하고 있다.

 며칠 간의 긴 이동 후 나도 이 아름다운 트레일에 도전했고 욀루데니즈에서 파랄리아라는 작은 마을까지 약 15km의 하루치 목표를 세웠다. 이른 아침부터 뿌옇게 시야를 흐리던 안개는 걷힐 기미도 없이 조용하고 꾸준하게 옷을 적셨다. 처음 한 시간은 널찍한 길을 걸었지만 한 번 갈림길을 지나고 나서는 가파른 절벽 옆을 걸어야 했다. 욀루데니즈의 붉은 지붕들이 작아질수록 구름과 가까워졌고 구름과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심해졌다. 양과 염소를 기르기 위해 만든 허름하고 낮은 울타리들을 지나 우연히 Halil's Cafe 라는 간판이 보였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 산속 아담한 카페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축축한 옷으로 바람 부는 절벽에 매달리듯 걸어온 내 몰골을 본 주인아주머니는 따뜻한 차이를 먼저 내줬다. 김 나는 차이를 한 입술 마시고 고민 없이 괴즐레메와 콜라를 주문했다.


 괴즐레메는 튀르키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으로 우리나라 부침개와 닮았다. 반죽한 밀가루를 얇게 밀고 그 위에 고기, 시금치 같은 채소, 치즈를 넣고 반을 접어 기름에 부친다. 집집마다 부침개 맛이 다르듯 괴즐레메도 만드는 사람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속 재료 덕에 맛이 제각각이라 먹는 재미가 있다. 괴즐레메를 시키면 꿀이 같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라벤더 향 품은 튀르키예 꿀과 괴즐레메의 조합은 팬케이크와 시럽처럼 참 잘 어울린다. 차이를 마시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손을 돕기 위해 직접 반죽을 미는 학생이 보였고 그 모습이 정겨웠다. 신선한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꿀 찍은 괴즐레메를 든든히 먹고 다시 배낭을 들춰 업을 때 주인아주머니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잘 가라는 마음이 느껴져 크게 인사했다.

"Güle güle!(안녕히 계세요!)”



 오전에 9km를 걸었고 3분의 1만 걸으면 된다는 생각에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소조 심이라는 신기한 표지판 멀리 줄 맞춰 걸어오는 소들을 만나고 등산화와 자갈이 부대끼는 소리 뒤로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산길을 걸었다. 안개가 비로 변해 그 줄기가 굵어질 때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됐고 자갈 깔린 길은 미끄러웠다. 등에 맨 배낭 무게에 혹 넘어지지 않을까 게처럼 옆으로 내려가야 했다. 내리막이 끝나자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나왔고 몇 분 뒤 파랄리아에 도착했다는 걸 알았는데 이유는 나의 엉뚱한 질문 때문이었다. 포장도로가 시작되는 지점 가까이 슈퍼가 있었고 칫솔을 사기 위해 들렀다. 한 손에는 칫솔, 한 손에는 초코바를 들고 계산하기 전 아저씨께 물었다.

"파랄리아는 어디로 가야 되나요?"

"여기가 파랄리아야. 저쪽으로 가면 숙소들이 있어."

 민망해서 웃음이 나왔고 아저씨는 그럴 수도 있다는 듯 눈썹을 씰룩이고 미소 지었다.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요지부동인 애플리케이션 속 내 위치 덕분에 하마터면 파랄리아를 지나 비를 맞으며 숲 속 캠핑을 할 뻔했다.

 아저씨 말대로 얼마 가지 않아 레몬 모양으로 장식한 간판이 서 있는 숙소가 보였다.

"Merhaba.(안녕하세요.)"


 곧 장 들어가며 크게 인사하자 웃음이 귀여운 아저씨가 나오셨고 각설탕 듬뿍 넣은 뜨거운 차이와 삶은 계란을 주셨다. 약 15km의 첫 번째 여정이 무사히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다홍색 빛깔로 튤립 모양 잔에 담긴 차이를 보며 몽글몽글 올라오는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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