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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Feb 19. 2020

기일.

20170306

외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은 밤.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내보이던 시간이 있었다. 몇 명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은 두 친척 간의 욕심냄과 억울함이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많은 음식들이 사방 벽까지 튀었다.

놀라운 것을 많이 보고 산 덕분에 많이 놀라진 않았다. 경황이 없는 모두가 하나둘 떠날 때, 상황을 종료시키고, 바로 수습에 들어갔다.

남동생도 야무지게 잘 도와줬다.


수습은 말하지 않아도 항상 맏이의 몫이었다. 의식한 건 아니었으나, 외할머니가 덜 수고롭도록 끝까지 남김없이 치우고 또 치웠다.

큰 숙모는 끝까지 제일 많은 일을 단숨해 해치우면서, 현명하게 모두를 이해하려 애쓰고 챙기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난 큰 숙모를 처음 봤던 어린 시절이 생생하다.

'너무 예뻐서 선녀 같다.'라고 말한 날 귀여워해 주시더니, 64색 크레파스를 문구점에서 사 와서 건네주셨다. 아까워서 잘 쓰지도 않고 가지고 있던 그 크레파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첫 만남 중 하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숙모를 늘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돌아간 뒤 외할머니, 큰삼촌, 큰 숙모와 나는 둘러앉아서 연도와 위령기도를 드렸다. 그 시간을 위해 오늘의 수고가 있었다고 느껴질 만큼 좋았다.


좋은 아버지 좋은 삼촌 좋은 형제이자

좋은 남편. 그리도 좋은 할아버지였던 분.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항상 웃으시던 얼굴이 선명하다. 바로 일 년 전만 해도 우리 옆에 계셨는데.  '내가 항상 너희 곁에 있겠다'라는 할아버지의 묘비명을 기억한다.

힘들 때면, '할아버지 도와주세요'라고 한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면서.


바로 곁에서 내게 생전에 해주시던

말들이 생생히 들리는 것 같다.


길에서 동냥을 하는 걸인들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동네 걸인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주고 옷까지 벗어서 입혀주고 오셨다는 일화를 떠올린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을 닮은 할아버지 -

평안한 영혼으로 맑고 깨끗한 곳에서

좋아하시던 낚시도 하며 잘 지내세요.

저는 언제 가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를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바라시던 대로 훌륭한 작가가 되어서 돌아갈 수 있도록,

제게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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