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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소민 Mar 06. 2017

기일

불도 끄지 않은 채로 기절잠을 자다

새벽에 일어나서 어제를 정리해보았다.

금연 3일 째이지만, 흡연 욕구는 생기지 않는다. 내게 욕구를 단절 시키는 스위치가 머리 속 어딘가에 있나보다. 한번도 켜지 않은 스위치도 어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것을 생각한다.

누군가에 대해 품고 있는 진정한 마음은 그가 곁을 떠나고 나서 더 잘 알게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오늘 누가 할아버지를 살아서도 돌아가셔서도 끝까지 사랑하고 따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들의 켜켜이 쌓였던 원망과 울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을 지 혹은 행복한 삶이었을 지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고기를 낚아서 아이들에게 구워주며 '참 행복하다'고 말하시던 분이었다, 불쌍한 걸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입던 옷을 벗어 걸쳐 주던 착한 분이기도 했다.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고, 재기하지 못하셨을 때. 그때의 충격과 공포를 이겨내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다 헤아릴까?

허나, 용초 섬에 계실 때 찾아뵈었던 여름날, 옆방에서 악몽을 꾸셨는지 비명을 지르시던 할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절규 속에 든 그 마음을 나도 느껴보려 애썼다. 내가 몰랐던 할아버지를 더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했다. 모두가 아쉬워했던 이별이었다. 간절한 위령의 기도를 한 몸에 받고 편히 떠나실 수 있었던 작년 이맘때.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할아버지는 나와 우리 모두를 몹시 사랑했다. 가족들은 1년이 지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깨달았다.

우리 가족들이 가야할 길은 '내가 먼저 참는 것, 서로 보듬어 함께 가는 것, 할아버지처럼 사랑하는 것.'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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