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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소민 Mar 02. 2017

Camel

170302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피곤한데,

그래도 희망처럼!

치맥만은 좋아서 깡총거리며 사러간다

(그렇다고 매일 치킨을 먹을 순 없지. 몸매 생각도 해야하고, 매일 한마리씩 드신다는 BBQ회장님 같이 닭을 사랑하는 건 아니니깐)


며칠 전, 깐부에 가서 후라이드 한 마리

주문해두고, 편의점에서 블랑 한 캔과

클라우드 나인을 사들고 파라솔 밑에 서서 작은 범죄를 저지르던 중이었다


60대 아주머니 한분이 어둠 속에서

성큼 다가왔다

마치 친구처럼 대뜸,


'아가씨 그거 하지 말아요.'


그녀의 말인 즉슨...

본인은 설암 말기 환자인데, 얼마전 임파선까지 암세포가 전이돼 혹 49개를 떼어냈다고 한다.

목에 사선으로 빗겨나간 한뼘 길이의 수술 자국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분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어쩌다가...' 하며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게 되었다. (참으로 못 말리는 공감력...)

대학시절부터 줄곧 펴왔다는 그분은

몇년 전부터 속상한 일이 생겨서

흡연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한다

(저런 무슨 일 때문에-나 아무래도 직업병일지도?)

하지만 몇달 전 도통 입맛도 없고

체중이 줄어서 혹시나 하다가, 이가 안좋아

임플란트 시술 차 치과에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엑스레이를 찍다가 다수의 설암 덩어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사실 그날 삼성병원에 가서 수술 경과를

봐야했는데, 두려워서 못가셨다고 했다.

...삼성병원이라면 나도 익숙한 곳이라 잠시 숙연해졌다.


'아직 젊으니까 지금부터 끊어요.

내가 후회돼서 이러는 거니까. '


우리는 다음에 길에서 또 보게 되면 인사를 주고 받자는 약속을 하고 돌아섰다.


치킨은 날 애타게 기다리다 조금 식은 상태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담배를 하나 피려다가 방금 만난 아주머니를 또 마주치는 시트콤이 발생할 것 같아 조용한 골목을 찾았다.


'음, 나 곧 끊을 것 같은데?'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어제 돈암동에 무용을 하려 가서 명희 언니랑 사이좋게 나눠폈더니 클라우드는 모두 피고, 이제 금연 돌입 지점에 왔다.

껌과 사탕을 많이 마련해 두어야 겠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거니까.  

검찰청 영상 작업을 좀 하려면 자료도 보고 해야되는데 도통 오랫만에 일을 하려니,

마음이 안잡혔다.

밖으로 나가 맛있는 카페라테를 한 잔 마시고 교보에 가야겠다. 뭐 이렇게 다짐을 하고도 허전했다. 마치 아주 재밌는 일을 아직 못한 듯 찝찝함.

집에 Camel 몇 개피가 남아있다!

고민 없이 불을 붙였다. 독한 것이라 금방 현기증이 났다. 상율 선생님이 텐션 줄 때와 릴렉스 하기를 알려주실 땐, 내게 텐션이 너무 많고 릴렉스가 안된 몸이라 했는데... 낙타 한 마리로 발끝까지 이완된 느낌이었다. 화장실 벽에 기대서 Woodkid 의 Iron을 들으며 천천히 불을 껐다.


한 존재의 얼굴이 떠올라서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왜죠? 내 생각 하나요?


그는 어둠 속에 온전한 모습으로 있었다.

모습은 뚜렷히 떠올랐지만 나는 그를

아직 잘 모른다.

야자수를 등지고, 낙타를 타고,

뒷걸음으로 내게 천천히 오는 듯한,

혹은 멀어지는 듯한,

그는 나보다 더한 미스테리이다.


당신 좀 아무 말이라도 좀 해봐요

낙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울었다던가,

혹은 낙타의 눈물이 모래에 닿아 핀

꽃에 대해서 라도

밤 하늘을 올려다보니 전갈자리와 물고기 자리가 은하수를 버리고 여행을 떠나더군요. 같은 것 처럼 아무 말이라도.


참 말 없다

다음 생에 또 보던가요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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