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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Jun 21. 2020

해안도로

이탈리아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낮에 뚜껑이 없는 컨버터블을 타고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 했다. 드론으로 찍은 것 처럼 나는 새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도 있었다. 어쩐지 나의 표정은 무척 젊지만 오래 산 사람처럼 보인다.


처음엔 그림을 보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절벽 아래에도 집들이 알록달록 색채감 넘치게 지어져 있었고 바다의 정경이 짙고 장엄했다. 물빛은 지중해의 빛깔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짙은 네이비였다. 하지만 그 꿈 속의 현실을 곧 받아드렸다. 나는 이미 그 풍경에 속해 있었다. 이미지들을 찍어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시내에서는 빵과 치즈를 사왔고 기다란 나무 식탁에 앉아 와인과 함께 단촐한 식사를 한다. 내가 사는 집은 장미 넝쿨이 창가에 드리워져있고, 하얀 몸통에 주황색 지붕의 아담한 모양새이다. 그 집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으며, 창틀과 벽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누군가 함께 있는 듯 했는데 얼굴이 보이진 않고 책을 읽고 있는 듯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가까이에서 울리는 파도소리와 함께 겹쳐 들렸다. 실내는 토분에 담긴 식물처럼 다정하고 시원했다. 눈을 감으면 나는 나를 잊고 지우고... 그 순간 그 집 혹은 바다의 포말, 식탁에 놓인 둥근 유리 물병과 같은 정물 등 어느 것이 될 수도 있을 만큼 마음 속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이 생에 마땅히 해야할 일들을 모두 해 놓고 쉬는 평온한 자의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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